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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Sep 19. 2015

#22 워킹 or 홀리데이

타즈매니아 여행을 하다


타즈매니아 데본포트 앞바다에서 바라본 일출

현실 속에 꿈이 있다


많은 워홀러들은 ‘워킹홀리데이 비자’의 이름처럼 호주에 와서 높은 임금을 받고 일하고, 여행하며, 다양한 체험을 하는 것을 상상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는 사람이 호주에 있으니 금방 정착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 '시급이 높으니 돈을 금방 모아 여행을 갈 수 있겠지'라는 성급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두 달 동안 변변찮은 일자리를 전전해가며 생활비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먼저인지 생각하지 않고 장밋빛 미래만 상상하는 일은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워홀은 출발하기 전에는 꿈일지 몰라도 호주 땅에 떨어지는 순간 현실로 바뀐다. 현실이 있고 그 안에 꿈이 있어야 한다. 꿈이 없는 현실은 팍팍하고, 현실이 없는 꿈은 공허하다.


타즈매니아 여행을 끝으로 타즈매니아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니 많은 생각들이 뒤섞였다. 내가 고생한 일들은 어쩌면 당연히 겪어야 될 일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안일한 생각이 나를 정신적으로 깊은 수렁에 빠지게 했다. 당연히 잘 풀릴 줄 알았던 착각이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타즈매니아 생활 정리가 되었다. 기분 좋게  마무리한 것은 아니지만 브로콜리, 파, 무, 포도 농장 등에서의 농장 경험을 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연어, 닭 공장을 체험할 수 있었다. 앞으로 내가 가게 될 소공장이 상상되지 않지만 어려움이 있더라도 견뎌낼 자신감이 생겼다.     


동선을 표시한 타즈매니아 지도(출처-구글맵)

타즈매니아 여행을 하다


워킹을 제대로 하진 않았지만 앞으로 워킹은 많이 하게 될 것이니 그 전에 홀리데이를 해야 하지 않겠냐며 여행을 권유한 재익이형의 말을 따랐다. 재익이형, 제리형, 상준이, 나 이렇게 여행자는 총 4명이었다. 타즈매니아는 그렇게 크지 않은 섬이라 차로 돌기에 충분했다. 재익이형의 차를 가지고 데본포트를 출발해 타즈매니아에서 가장 큰 도시인 호바트로 출발했다.


우리가 있는 데본포트, 여행할 도시 호바트, 공항이 있는 론세스톤을 지도에서 선으로 이으면 역삼각형의 모양이 된다. 호바트가 역삼각형의 아래 꼭짓점이다. 나와 상준이는 여행을 마치고 바로 멜버른으로 갈 수 있게 비행기를 예약했고, 데본포트에서 모든 짐을 싸서 여행을 출발했다. 재익이형과 제리형에게는 호바트에서 여행을 마치고 공항이 있는 론세스톤으로 올라가 우리를 내려주고, 집이 있는 데본포트로 가는 동선이 합리적이었다.

떠나기로 마음먹고 출발한 여행이라 그런지 마음이 홀가분했다. 이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위해 마음을 다잡기에 좋은 여행이었다. 아마 재익이형도 그것을 염두 해두고 여행을 제안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호바트에서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브루니 아일랜드’로 한 번 더 들어갔다. 호주 육지사람들도 타즈매니아 여행 가는 것을 흔하지 않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브루니 아일랜드는 배 타고 한 번 더 들어가야 하는 곳이니 얼마나 특별한 것인가. 타즈매니아 섬에서 브루니 섬까지는 배로 30분 정도면 들어갈 수 있었다.


전망대에 올라 바라본 브루니 아일랜드의 모습

작은 섬인 브루니 섬은 양식 석화가 유명하고, 전망대에 올라 바라보면 풍경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우리는 먼저 전망대에 올라 브루니 섬의 자랑인 자연풍경을 감상했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은 표시판 하나 있는 유별나지 않은 곳이었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은 나무 계단으로 만들어 놓았고 한 200~300m 정도 되는 높이었다. 정상에 올라 바라보니 장관이었다. 정상에 올라 계단 쪽을 바라보면 계단 방향을 따라 일직선으로 쭉 낮은 산 능선이 있고, 양 쪽으로는 물이 있다. 왼쪽은 바다, 오른쪽은 호수다. 마치 물 사이에 길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느끼는 감정은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내가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파도는 매번 모양을 바꿔 가며 출령였고, 바람은 내 걱정을 씻어주는 것 같았다. 돈 걱정하고 여행을 올까 말까 고민했던 것이 바보스러울 정도로 그 곳에서 느끼는 감정은 나에게 힘을 북돋아 주었다.


환상의 조합, 흑맥주와 석화

석화&기네스를 즐기다


한동안 풍경에 빠져있을 때 내려가자는 재익이형의 말을 듣고 내려갔다. 이제 브루니 섬의 자랑인 석화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마트에서도 종종 석화를 보긴 하지만 꽤 비싼 가격 때문에 항상 보기만 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많이는 먹지 못하겠지만 오랜만에 석화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갔다.


한적한 섬에 비해 식당에는 몇 테이블의 손님이 이미 석화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12피스짜리 석화 2접시를 시켰다. 그리고 석화와 궁합이 잘 맞는다는 흑맥주 ‘기네스’를 시켰다. 석화는 즉석에서 손질하여 바로 나오는데 그 과정을 유리창 너머로 지켜볼 수 있어서 깔끔하고, 재밌었다.


석화를 손질하는 직원

석화와 기네스 처음 보는 조합이라 어떨까 궁금했다. 석화에 레몬즙을 뿌리고 간장소스에 살짝 찍어 입어 넣었다. 크고 단단한 알맹이를 씹는 느낌이 일품이었다. 바다의 신선한 느낌과 더불어 느껴지는 약간의 비릿함은 기네스의 묵직함이 잡아주었다. 배가 고팠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 맛있었다.


양이 많지 않은 석화를 나눠 먹은 우리는 타즈매니아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갔다. 브루니 아일랜드와 타즈매니아를 잇는 배는 시간 별로 있는데 차를 가지고 가는 경우라면 서두르는 편이 좋다. 늦게 가면 사람은 탈 수 있지만 차를 싣는 공간이 부족해 못 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가 도착할 시간에 배가 출발하기 전이었고, 차를 싣기에 공간은 충분했다.


호바트 시내 주말장터 모습, 고풍스런 옛 건물들이 인상적이다

호주 온지 두 달만에 한식을 만나다


호바트 선착장에 도착한 우리는 호바트 시내로 갔다. 호바트 시내는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도시였다. 높은 건물은 볼 수 없었다. 제일 높아 보이는 건물이 5층 정도였다. 호바트 시티 구경을 마치고 호바트에 있는 한식당을 찾았다.


외국을 많이 다녀보진 않았지만 호주의 웬만한 큰 도시에는 한식당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호주가 그나마 한국이랑 가까운 나라에 속하기 때문에 식재료 공급에 큰 어려움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한식의 인기가 많아지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호바트라는 곳에 한식당이 없을 것 같은데 있어서 놀랐다.


호바트에 있는 ‘아리랑’이라는 한식당은 중식과 한식을 같이 하는 집이었다. 중식을 한식풍으로 만들어서 대만, 홍콩 사람들 손님도 많이 온다고 했다. 오랜만에 한식을 먹는 우리는 각자 취향대로 하나씩 골랐다. 나는 얼큰한 국물이 생각나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순두부찌개가 나오기 전 밑반찬으로 나온 김치, 숙주나물, 어묵볶음만으로도 공깃밥 하나를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각자 요리가 나오고 게 눈 감추듯 식사를 했다. 나는 이제 또 언제 한식을 먹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밥 하나를 더 시켜 먹었다. 배부르게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백팩커 리셉션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재익이형

타즈매니아에서의 마지막 아침


4인 1실인 백팩커는 훌륭했다. 최신식 시설은 아니었지만 아늑했다. 우리는 맥주 한 잔하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익이형은 도와준 만큼 나와 상준이가 잘 풀리지 않아서 아쉽다고 했다. 나와 상준이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내가 최선을 다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지만 재익이형이 나를 도와준 것에 대해서는 의심이 들지 않는다. 일하면서 그렇게 많은 도움을 주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리 잡지 못하고 타즈매니아를 떠나게 되어 더욱 미안했다.


재익이형은 미안하다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잘 하면 된다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나 역시 지나간 일보다는 앞으로의 생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장거리 운전에 지친 형과 맥주에 몸이 노곤해진 우리는 자정이 되기 전에 잠 들었다.     


멜버른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날 아침이 밝았다. 한국에서는 국내에서 이동할 때에 제주도 빼고는 비행기 탈 일이 많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호주에서 타즈매니아로 올 때 한 번, 타즈매니아를 나갈 때 또 한 번 비행기를 타니 외국을 드나드는 기분이 들었다. 설레고, 기대됨과 동시에 다시 혼자가 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도 있었다.


비행기 값이 비싸진 않다고 하지만 지역 이동할 때에 드는 비용을 잘 고려해 지역을 이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육지에서도 지역 이동을 생각할 때 버스나 기차가 있다고 해도 비행기 값과 별반 차이 없는 경우가 많고 혹은 더 비싼 경우도 있다. 비용을 계속 지출하면서 지역을 옮겼을 때 옮긴 곳에서 승산이 있는지 여부가 확실치 않다면 난감해지는 경우가 있다.


브루니 아일랜드, 왼쪽부터 상준이, 재익이형, 제리형, 나

100% 확실한 것은 없다. 고용주가 뽑는다고 했다가 안 뽑는 경우도 종종 있다. 워홀에서는 최선책을 준비하는 것보다 차선책을 준비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인 것 같다. 만약 내가 a지역으로 이동해서 b직업을 구할 생각인데 b직업이 구해지지 않았을 때 c나 d의 직업을 구할 수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는 것이다. 이런 조사 없이 움직였다가 농장이나 캐시잡 같은 일이 없어 방값, 지역 이동 비용만 날리고 피해를 입은 사례들은 인터넷에 수없이 많이 볼 수 있다.


나는 새로 가게 될 나라쿠트란 곳에서 일자리를 못 구하고 체류비만 날릴 경우 최후의 경우에는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나에게 차선책을 강구하는 것조차 힘든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다. 론세스톤 공항에 도착하니 적막이 흘렀다. 재익이형과 제리형과 작별인사를 했다. 재익이형은 혹시라도 가서 돈이 부족하면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빌려줄 테니 일단 가서 잘 적응하라고 했다.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가는 곳이 좋은 곳이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는 타즈매니아 땅을 떠서 날기 시작했다. 타즈매니아는 곧 점처럼 작아졌고, 비행기는 속력을 내 구름 위로 올라왔다. 설렌다. 이 느낌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불안과 걱정보다는 설렘과 기대를 안고 타즈매니아를 떠날 수 있었다.


타즈매니아를 떠나며 비행기에서 바라본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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