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작가 Sep 20. 2015

#23 멜버른에 빠지다

짧은 멜버른 체류기

브루니 아일랜드의 조용했던 해변

타즈매니아 생활로 얻은 교훈


40일 간의 타즈매니아 생활은 나에게 여러 교훈을 주었다. 첫째, 스스로 일어날 것. 내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고 누군가에 도움을 받게 되면  그때부터 계속 의지하게 되는 경향이 생기는 것 같다. 도움을 받을 때는 고맙고 감사해서 도움의 뒷면을 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더라도 반드시 내 자신이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 오기 때문에 혼자 일어서야 나중에 더 큰 화를 막을 수 있다.


둘째. 워홀에서는 먹고사는 것이 먼저다. 한국에서 편하게 용돈 받아 생활했던 것이 전부였다. 군대 다녀와서는 알바는 했지만 육체적으로 힘든 알바는 해보지 않았었다. 그저 군대 다녀왔으니 뭐든 할 수 있겠지라는 패기는 좋았지만 현실 워홀은 만만치 않았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하는 농사일은 장사도 쓰러질 정도로 힘들었고, 비 오는 날의 작업은 나와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훗날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자신의 생활이 될 정도로의 벌이는 돼야 워홀 생활이 안정된다. 정말 돈에 연연하지 않고 1주일 방값과 생활비 정도만 벌 수 있으면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 있다 해도 타지에서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는 삶은 심신을 지치게 만든다.


셋째. 워홀은 인생의 보너스가 아니라 내 인생의 일부분이다. 워홀을 온 사람들을 보면 일 때문에 힘들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쉬러 온 것인지 70~80% 사람들이 방에서 컴퓨터만 하는 경우가 많다. 미드 시청, 블로그 작성, 게임, 한국 프로그램 시청, 영어 공부 등등 이유야 많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이 일하는 직장으로 출근하기는 싫다고 한다. 힘들기 때문이다. 일을 갔다 오면 시간이 안 간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컴퓨터를 켠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2년까지 있을 수 있는 워홀이 인생의 보너스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워홀도 인생의 일부분이다. 호주 워킹을 어떤 경로로 오게 되든 도전의식과 용기를 가지고 온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호주 생활이 한국의 생활과 별반 다를 것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인생의 일부분을 타지에서 보내면서 이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을 경험하며 자신의 지평을 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피 같은 청춘을 높은 시급에 눈이 멀어 공중에 흩뿌리지 말아야 한다.     


공항에서 시티로 가는 Sky bus

난민수용소를 연상케하는 숙소에 놀라다


비행기는 멜버른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우리는 공항에서 시티링크 버스를 타고 멜버른 시티인 CBD로 왔다. 버스는 서던크로스(Southern Cross) 역에서 우릴 내려주었다. 이제 예약한 백팩커까지 걸어가면 됐다. 스마트폰 지도는 언제나 유용하다. 스마트폰을 따라 걷는데 가도 가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분명 타즈매니아에서 예약할 때는 무척 가까워 보였는데 말이다. 그렇게 2km 정도를 20kg 넘는 트렁크와 10kg 정도 되는 백팩을 매고 걸었다.(차가 없는 백팩커들은 대중교통과 가까운 백팩커를 잡는 것이 좋다는 것을 이 때 깨달았다.)


스마트폰 지도상으로는 도착했는데 눈 앞에는 백팩커가 없었다. 지도에 나와 있는 주변을 5분 동안 돌아다녀봤지만 별다른 백팩커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지도상에 위치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펍(Pub)이었다. 펍에는 금요일 밤을 알리듯 몇 명의 손님들이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이 근처에 백팩커가 있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백팩커에 위치는 말하지 않고 내 이름을 물었다. 나는 당황해서 왜 이름을 물어보냐고 되물었다.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은 이 건물 2층이 백팩커라며 체크인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믿기지 않았다. 숙소라고 불릴만한 곳이 있을지 의심스러웠지만 일단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한 걸음 올라갈 때마다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날 불안하게 만들었다. 2층에 올라 구석진 곳에 위치한 방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 어두운 주황색 불이 켜져 있는 방은 숙소인지 피난시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고 더러웠다. 타즈매니아에서 방을 예약할 때 돈이 없던 우리는 1불이라도 아끼자며 싼 곳으로 예약했는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방에는 2층 침대 3개 6개의 베드가 있었다. 베드의 시트는 언제 빨았는지 모를 정도로 어질러져 있었다. 그곳에 머무는 친구가 있었는데 꽤 장기 투숙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20대 초반의 영국에서 온 친구였는데 그 친구는 그 백팩커가 익숙한지 낯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나와 상준이는 일단 2일 밤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에 짐을 풀었다. 잠깐 머무는 임시 숙소이기 때문에 짐을 다 풀 필요는 없었다. 짐을 정리해 놓고 우리는 배도 채울 겸 멜버른의 밤을 구경하러 나갔다. 한국의 밤보다는 덜하지만 호주에서 큰 도시에 속하는 멜버른의 밤도 붐볐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 중간부에 있는 입구에서 상준이와 기념사진을 남기다

그래, 홀리데이부터 하자


우리는 다음날인 토요일에 죽기 전에 가봐야 할 100곳 중 한 곳인 ‘그레이트 오션로드’를 투어 하기로 하고 타즈매니아에서 인터넷을 통해 예약을 하고 왔다. 타즈매니아를 떠나기 전에 멜버른에 2박 3일을 머무는데 첫째 날에는 밤에 도착하니 시티 구경하고, 둘 째날에는 무엇을 할까 하다가 그레이트 오션로드를 한인 여행사를 통해 투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상준이는 그 전에 벌어놓은 돈이 있어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돈이 다 떨어져 가는 상황이라 할까 말까 고민했다. 이번에도 타즈매니아 여행할 때와 같이 일단 기회가 있을 땐  여행하라는 재익이형의 말이 생각나 하기로 결정했다.


그레이트 오션로드는 호주 멜버른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바닷길이다. 길이는 243km이고 호주 남동쪽 해안가를 따라 이어져 있다. 그레이트 오션로드는 포경산업의 호황으로 포경선의 항로로 호황을 누렸지만 포경산업의 금지로 인해 산업기반이 흔들렸다고 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제 1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들의 자원으로 중장비도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무려 16년간이나 직접 곡괭이와 삽으로 해안도로를 만들고 관광산업으로 발전시키게 됐다.


토요일 아침 일찍 준비를 서둘렀다.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지 못하면 먼저 출발하고 투어를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백팩커에서 모이는 장소까지 시간을 예측에 넉넉하게 백팩커에서 출발했다. 촉박하지 않게 약속된 장소로 도착했다. 가이드님은 우리의 이름을 체크했고 다른 여행자분들은 이미 승합차에 타있었다.. 승합차에는 커플이 있었고 각각 오신 여자분 3분 그리고 나와 상준이 이렇게 7명이 있었다.


투어는 그레이트 오션로드를 달리면서  중간중간 뷰 포인트에서 내려준다. 차에서 내려서 사진 찍고, 구경하고 다시 승합차에 타 다른 뷰 포인트까지 가는 것의 반복이다. 가는 차 안에서는 가이드님이 호주에 관련된 역사, 정치, 사회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해주셨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하이라이트 12사도 바위 

그레이트 오션로드에 빠지다


승합차는 멜버른 시티를 빠져나와 외곽지역을 달리기 시작했다. 언제쯤 나올까 기다리던 바다가 2시간 정도 달리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과연 장관이었다. 자연풍경을 좋아하는 나는 이만한 곳이 없었다. 바닷가에 살다온 사람들은 다 똑같은 바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고 가이드님이 말해주었다. 중간에 내려주는 뷰 포인트에서는 맑은 날씨 덕분에 수평선과 저 멀리 있는 우리가 앞으로 가게 될 길도 보였다.


점심시간 때가 되자 우린 식당으로 안내했다. 식사는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따로 도시락을 쌀 수 없을 것 같아 식사를 신청하고 왔다. 햄버거 또는 피시&칩스를 고를 수 있는데 나는 햄버거를 골랐다. 햄버거와 피시&칩스 둘 다 똑같은 감자튀김이 나오고 메인만 달랐다.


배를 든든하게 채운 우리는 바로 다음 코스로 이동했다. 그레이트 오션로드에 절정이라고 하는 12 사도이다. 해안침식 작용으로 생긴 기암 절벽들이 12개가 있어 12 사도라고 불리는 곳이다. 12 사도에 도착하니 명소답게 많은 관광객들이 버스에서 쏟아졌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았고, 호주 현지 사람과 다른 여행사에서 온 한국인들도 보였다. 버스주차장에서 해안가까지는 조금 걸어 가야 하는데 걸어가는 동안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좋았다.


투어 코스 중 하나인 앵무새 먹이 주기

바다에 우뚝 서있는 12 사도의 기암절벽은 자연이 만들어낸 예술품이었다. 태양은 바닷물을 은빛으로 만들어 주었고, 파도소리는 우렁찼다. 바닷바람은 내 머리를 다 헝클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대자연속에서 날 보니 나는 작았다. 한편으로는 이런 작은 내가 하나씩 이루어 나갈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겪은 일들보다 힘든 일이 닥쳐와도 버티고,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긴 것 같았다. 


그레이트 오션로드의 모든 뷰포인트 구경을  마무리하면 멜버른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느 한 곳도 멈추지 않고 바로 온다. 멜버른 시티에 올 때쯤에는 한 밤이 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하루 종일 투어를 하는 동안 운전하시고 재밌는 이야기도 해주신 가이드님께 감사인사를 전하고 나와 상준이는 언제 먹을지 모르는 한식을 먹으러 갔다.

밥을 먹으며 나는 상준이에게 고맙다고 했다. 너 아니었으면 이 좋은 곳도 구경하지 못했을 거고, 좋은 기운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어쩌면 그레이트 오션로드가 아니어도 어느 곳에 갔어도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에 기분이 한결 좋아졌을지도 모른다.


식사를 마치고 백팩커로 돌아오는 길, 내일이면 헤어질 생각에 기분이 이상했다. 진짜 이렇게 갈 길을 가게 되는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한 편으로는 이것이 현실인가 싶었다. 일요일 아침, 미리 알아본 차 시간에 맞춰 서던 크로스 역으로 갔다. 나라쿠트로 가는 표를 끊고 상준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진정한 나용민의 워홀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 뷰포인트에서 자연을 품다
매거진의 이전글 #22 워킹 or 홀리데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