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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Sep 25. 2015

#30 친구가 오다

죽마고우와 같이 살기

 

비수기 3개월 동안만 할 수 있었던 운동

여유가 생기니 마음도 넉넉해지다


비수기가  시작된지도 한 달이 넘었다. 입사 3주차가 지나고 나서는 일을 마치고 체육관을 다니기 시작했다. 운동을 시작하니 몸이 더 무거워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가벼워진다. 뭉친 근육들이 풀리는 기분이다. 그래도 하루에 8시간 일하니 운동을 오래하진 못한다. 1시간 정도 하면 적당하다.


친구 재겸이한테 다시 연락이 왔다. 재겸이도 호주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타즈매니아 있을 때도 연락을 주고, 받았지만 내가 여유가 없었던 때라 계속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었다. 여유가 생기니 재겸이와 연락도 자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내가 있는 나라쿠트 고기 공장은 대기만 하면 누구라도 일을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재겸이에게 내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했다. 다른 지역으로 가더라도 일단 여기서 적응 좀 하고 움직일 돈 좀 모아서 가라고 말했다. 재겸이도 알겠다며 준비하고 연락을 준다고 했다.


7월 초 재겸이에게 연락이 왔다. 12일에 호주에 떨어지는 비행기를 예매했다고 했다. 나는 픽업하러 갈 생각에 들떴다. 아마 재겸이도 내가 처음 호주에 왔을 때처럼 들뜨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워킹홀리데이가 뭐라고 호주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 벅차고, 설레고, 불안하고, 기대되고 온갖 감정이 뒤섞인다. 그 감정을 즐기라고 재겸이에게 말해주었다.


죽마고우 재겸이를 픽업하고

12일은 일을 하지 않는 토요일이었다. 재겸이를 데리러 애들레이드로 갔다. 애들레이드는 내가 있는 나라쿠트에서 350km 정도 떨어진 호주 SA주에서 가장 큰 도시다. SA주에서는 가장 크다고 하지만 시드니, 멜버른에 비하면 그렇게 큰 도시는 아니다.


애들레이드 공항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놓고 입국장으로 갔다. 날은 점점 추워지고 있었지만 낮에는 따뜻했다. 재겸이가 탄 비행기가 애들레이드 공항에 도착했다는 전광판 표시가 나왔다. 비행기 도착 40분 후 입국장으로 나오는 사람들 중 익숙한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재겸이었다.


나와 재겸이는 뜨거운 포옹으로 만남을 기념했다. 타지에서 만난 친구의 얼굴이 왜 이렇게 반갑던지 우리는 백팩커에 짐을 풀고 시티와 가까운 해변가로 갔다. 나도 오랜만에 나온 시티여서 그런지 마냥 좋았다. 친구와 함께 외국을 여행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인가 싶었다. 


애들레이드 시티에서 가까운 Henley비치를 갔다. 해질 무렵 수평선의 걸쳐있는 해는 장관이었다. 오랜만에 예쁜 노을을 보았다. 노을을 바라보며 재겸이에게 나의 워홀을  이야기해주었다. 100인의 워홀러가 있으면 100가지의 워홀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재겸이도 재겸이만의 워홀 이야기를 써갈 것이라 생각했다.


Henley 비치 일몰과 재겸이

집이 있는 나라쿠트로


1박 2일의 애들레이드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나라쿠트로 돌아왔다. 애들레이드에서 나라쿠트로 오는 길에는 애들레이드 힐이라는 곳을 지나온다. 애들레이드 힐은 마치 텔레토비가 사는 꼬꼬마 동산처럼 생겼다. 푸른 잔디가 여러 개의 큰 동산을 덮고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보는 풍경은 마치 세트장을 달리는 기분을 들게 한다.


호주의 고속도로에는 휴게소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휴게소는 있지만 한국의 휴게소 같진 않다. 한국의 휴게소는 아주 잘되어 있는 편이다. 호주의 휴게소는 고속도로 중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지나는 타운에 있는 주유소에 딸린 편의점이 전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거리 운전을 할 때에는 항상 기름을 여유 있게 넣고 가는 것이 좋다.


4시간 동안 달려서 나라쿠트에 도착했다. 재겸이 짐을 차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갔다. 집을 본 재겸이는 실소를 터뜨렸다. 자신의 생각보다 집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을 본 많은 사람들의 첫 반응은 놀라움이다. 어떻게 여기서 살지라는 느낌을 느낀다. 정작 지내는 사람들은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는데도 말이다. 재겸이가 오기 전에 룸메인 영하에게 방을 옮기도록 부탁해 내 방을 재겸이와 같이 쓰기로 했다. 재겸이는 짐을 옮겨 놓고, 나는 사람들에게 재겸이를 소개했다. 밝은 인상의 재겸이를 모두들 반기는 분위기였다. 나 역시 마음이 놓였다.


공장에서 들어가 돈을 벌 생각이었던 재겸이는 곧 인덕션이 있을 것이라는 메이 이모의 말에 맞춰서 호주로 온 것이었다. 곧 인덕션이 있을 것이었기에 굳이 농장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나는 농장일을 경험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고, 마스터인 성준이에게 부탁해 농장일을 알아달라고 했다. 나 역시 예전에 일했던 사과 농장 슈바에게  연락해보았다.


사과 농장은 시즌이 끝나서 더 이상 일이 없다고 했고, 성준이가 포도농장에서  가지치기하는 푸르닝 작업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물리적인 힘이 드는 일은 아니지만 반복적으로 가위 질을 해야 하기에 팔이 아픈 작업이었다. 또한 야외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작업이다. 오래 일할 것은 아니었지만 호주에서의 일의 강도가 어떠한지 경험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재겸이에게 푸르닝을 해볼 것을 권유했고, 재겸이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미소가 예쁜 재겸이

혼자서도 잘해요


푸르닝 일이 며칠 후에 시작된다기에 재겸이에게 미션을 주었다. 미션은 은행 계좌 신청과 TFN 신청, 핸드폰 개통이었다. 나는 매일 일을 나가기 때문에 같이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스스로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영어가 짧더라고 부딪혀보라는 생각으로 재겸이에게 미션을 주었다.


호주에서 필수적인 모든 행정업무들은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다 알아볼 수가 있다. 이미 경험한 선배 워홀러들이 친절히 설명해 놓은 글들이 많다. 영어가 부족하더라도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을 보고, 준비물을 준비해가면 은행 계좌 신청이든, 온라인으로 신청하는 TFN 신청이든 어려울 것이 없다.


재겸이는 주어진 미션을 거침없이 해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몇 개의 영단어와 손짓을 통해 은행계좌를 신청했다고 했다. TFN 역시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고 따라 해서 신청했다고 했다. 핸드폰 개통 역시 마트에서 유심칩을 사서 끼웠다고 했다.


내가 재겸이에게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고, 고기를 잡아주면 언젠가 떨어지게 될 우리 상황상 재겸이가 곤란을 겪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재겸이에게 혼자 해낼 것을 바랐다. 먼저 시도해보고 안되면 나에게 물어봐달라고 말했다. 분명히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때 나의 마음은 오로지 재겸이를 위해서였는데, 재겸이는 조금 다르게 느꼈던 것 같다.(결국 나중에 일이 생겼다.)

     

미션을 하는 동안 며칠의 시간이 지나고 재겸이가 호주에 와서 처음으로 일하는 날이 왔다. 재겸이는 잠을 잘 못 잤는지 일어날 시간보다 1시간 전인 내가 일 나가는 시간에 깨어서 나의 하루를 응원해주었고, 자신도 나갈 준비를 해야겠다고 했다. 호기로운 재겸이를 보니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생각보다 힘든 일 때문에 혹시라도 흔들리면 어쩌나 싶었기 때문이다.


일이 터지기 전 즐거운 한 때

죽마고우에게 찾아온 위기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에 오니 아직 재겸이가 오지 않았다. 농장은 오전  7시쯤에 시작해서 4~5시쯤 끝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일터까지 출,  퇴근하는 시간도 있기 때문에 재겸이는 5시가 넘어서야 집에 왔다. 일터에서 돌아온 재겸이는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작업복으로 입고 갔던 패딩 점퍼와 청바지는 소나기 때문에 흠뻑 젖었고, 하루 만에 얼굴은 수척해졌다. 처음 농장을 다녀오면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몸살이 들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따뜻한 물로 샤워부터 하라고 했다.


샤워를 마친 재겸이는 조금 나아진  듯했다. 그래도 표정은 넋이 나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각종 운동으로 몸이 단단한 재겸이도 하루 일하고는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 것이 농장일이었다. 내일 일을 나갈 수 있을지 걱정하는 눈빛은 거짓이 아니었다. 재겸이에게 진정한 워홀이 시작되었다. 워홀은 현실이다. 워홀을 먼저 온 주변 사람들의 SNS를 보고 항상 워킹홀리데이에서 '홀리데이'만 보고서는 핑크빛 워홀을 생각했던 재겸이도 현실을 마주하니  힘들어했다.


다행히도 재겸이는 3일간 푸르닝을 나가고 바로 인덕션을 할 수 있었다. 인덕션을 하고, 큐피버 스킨 테스트와 큐피버 접종, 공장 입사까지 3주가 채 안 걸렸다. 재겸이는 보닝 팩커로 들어갔다. 보닝 팩커는 시급도 높고, 인센티브가 주에 50불 정도 나와서 오팔룸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보직에다가 일도 상대적으로 쉽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어쩌면 나보다 더 잘 된 재겸이를 보고 나는 기분이 좋았다. 마치 내가 잘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번다고 질투가 나지 않았다. 그저 잘 된 것에 감사했다.


하지만 재겸이가 잘 된 것과는 상관없이 나와 재겸이 사이는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우리 둘은 10년이 넘게 지내온 죽마고우였지만 서로 같이 살아 본 적은 없었다. 당연히 같이 살면서 문제가 생길 수 있었지만 생각보다 골은 깊었다.


먼저 호주에 온 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재겸이의 생활에 충고를 하고 싶었고, 충고를 했다. 재겸이 역시 그런 자신을 알고 있지만 내가 옆에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에  힘들어했다. 나는 조금 더 재겸이를 이해하고, 배려했어야 했지만 잘못된 방식으로 선의를 표시하려 했다. 재겸이와 의견 대립이  지속되었고 결국 재겸이는 다른 집으로 이사 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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