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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Sep 29. 2015

#37 호주에서 떡국을 먹다

구정맞이 떡국

자주 해먹었던 닭볶음탕과 소불고기

한식이 그리워지는 호주 생활


2월로 접어들면서 호주는 점점 뜨거워졌다. 1월과 2월이 호주의 한 여름인데 그나마 우리 집은 돌로 지어진 옛날 집이어서 시원한 편이지만 요즘 집들 중 컨테이너 같은 형식의 집 또는 나무로 된 집들은 더위 때문에 잠을 깨는 열대야를 느끼기도 한다.


내가 있는 SA주의 나라쿠트 지역은 호주의 북부보다는 덜 덥고 4계절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겨울엔 춥고, 여름에 더운 한국과 비슷한 계절현상을 보인다. 다만 여름엔 습하지 않고, 겨울엔 눈이 오지 않는다. 호주는 남반구에 위치해 날씨 패턴이 반대이긴 하지만 우리랑 비슷해서인지 날씨로 인한 고생은 딱히 하지 않았다.


외국에 나오면 고생스러운 것이 날씨보다는 음식이다. 한국 식재료를 조달할 수 있는 곳이면 그나마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현지식으로 먹어야 하는 것이 타향살이기 때문이다. 호주는 다른 나라들 보다 한인 교민들도 많고, 한국음식에 대한 수요도 많은 편이다. 웬만한 대도시에는 코리안마트가 있고, 종종 작은 타운에도 이름 각기 다르지만 가칭 아시안마트라는 곳에서 아시아 각국의 식재료들을 판다.


나라쿠트 역시 울월스 마트가 있는 상점에 아시안마트가 있다. 거기에서는 한국 양념, 과자, 라면, 튀김가루 등등을 팔았다. 고추장, 된장, 간장만 있어도 웬만한 한국음식은 할 수 있기 때문에 식재료는 문제가 없었다. 더불어 가끔 나가는 큰 도시인 멜버른이나 애들레이드에서는 동네에 있는 아시아 마트보다 조금 더 싼 가격으로 각종 한국음식들을 살 수 있다. 대도시 한인마트에 가면 한국 마트와 똑같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구비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꼭 한국음식을 먹어야 하는 워홀러가 있다면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에서도 자취를 했었지만 라면 이외에 음식을 해 먹어 본 적이 없는 나는 호주 생활을 하면서 취미가 요리가 될 정도로 요리에 흥미를 붙였다. 우선 한국과 다르게 호주는 외식이 비싸다. 한국에서는 백반 한 끼에 5~6천 원이면 먹을 수 있지만 이곳에서 볶음밥이나 가락국수, 심지어 햄버거 세트를 먹으려 해도 10불이 넘어가기 때문에 내가 돈을 번다고 해도 계속해서 이렇게 지출할 수는 없었다. 필요에 의해서 시작한 요리지만 음식을 만들다 보니 재미를 느꼈다. 내가 한 음식을 사람들이 먹고 맛있다고 할 때의 뿌듯함과 희열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요리는 어머니가 해주는 것만 먹었지 직접 해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여서 처음에는 힘들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레시피를 보고 만드는데 왠지 재료가 부족해 보여서 레시피에 나와 있지 않은 양념 조금 더 넣고, 맛보고, 맛이 이상하니 또 다른 양념을 추가하고 이런 식으로 하니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이상한 요리가 되곤 했다.


처음부터 잘 되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처음에는 칼질도 서툴고 양조절도 힘들고, 간을 맞추는 것도 힘들었지만 점점 실력이 나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요리를 하게 되면서 가장 많이 한 것이 ‘빨간 양념 요리’다.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베이스로한 양념장으로 닭볶음탕, 제육볶음, 오징어볶음 등등 매콤하게 만들면 웬만하면 맛있게 느껴졌다. 레시피 대로 만들고 조금 심심한 것 같으면 마법의 가루, 조미료를 넣으면 맛깔스러운 음식이 되었다.


어머니가 해주던 그 맛은 나지 않지만 한 살을 더 먹었다.

요리에 자신이 생긴 나는 다가올 구정에 떡국을 해먹기로 했다. 매번 어머니가 해주던 사골국으로 만든 떡국만 먹다가 직접 만들려고 하니 왠지 어렵게 다가왔다. 막상 레시피를 찾아보니 어렵지 않았다.


떡국의 메인 재료는 떡국떡과 소고기이다. 호주에서 소고기는 돼지보다 싸기에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다행히 떡국떡은 아시안마트에서 살 수 있었다. 소고기를 참기름에 볶고, 물을 부어 끓인다. 소고기 육수가 우러나올 때까지 푹 끓이고, 국물이 우러나올 때쯤 떡을 붓고 끓이면 된다.


떡국이 끓는 동안 계란 지단을 만들었다. 예쁜 음식을 만들기 위해 흰자와 노른자를 따로한 지단을 만들기도 하지만 나는 흰자와 노른자를 섞어서 지단을 만들었다. 지단은 계란말이 하듯이 프라이팬 전체에 계란물을 붓고,  한쪽 면이 다 익을 때 까지 기다렸다가 다 익으면 뒤집고, 다른 한 면이 다 익으면 세로로 길에 잘라주면 된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떡국을 만들고, 같이 지내는 쉐어생들과 구정을 쇠었다. 별 것 아니지만 타지에서 떡국을 먹는다는 느낌이 새롭게 다가왔다. 쉐어생들 역시 이제야 한 살을 먹는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와서 어디 한 곳에서 정착하고 일한다는 것은 몇 개월 동안 일 위주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일은 고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외로움을 달래기도 한다. 이런 생활에서 한국음식은 큰 도움이 된다. 매일 빵과 시리얼만으로는 달랠 수 없는 한식만의 깊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에 와서 너무 한식만 고집하는 것도 문화를 이해하는데 제약이 될 수 있다. 새로운 음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시도해보고, 음식을 즐겨보는 것도 워홀러로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라 생각한다.

     

깔끔한 친구들과 함께 멜버른 여행

친구들과의 이별


구정 후에 재겸이는 여자친구가 호주로 놀러 왔다. 재겸이는 퍼스트 비자가 끝나는 것과 맞물려 여자친구를 초대한 것이다. 더불어서 재겸이 어머니도 어머니 친구와 시드니로 놀러 오신다고 했다. 재겸이는 여자친구와 멜버른 여행을 한 뒤 시드니로 가서 어머니를 만날 생각이라고 했다. 이렇게 총 일정이 3주 일정으로 재겸이는 휴가를 갔다. 물론 자신의 슈바에게도 이야기 하고 HR(Human Resource) 매니저에게도 말하고 갔다.


3주가 지난 뒤 재겸이는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왔다. 세컨 비자도 나왔고 바로 일만 하면 되었다. 나는 오전반이고, 재겸이는 오후반이기 때문에 평일에는 볼 수 없고, 주말에 볼 수 있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일을 다녀왔는데 재겸이가 있는 것이다. 재겸이는 공장에서 잘렸다는 것이다. 여러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HR 매니저가 따로 체크를 해놓지 않고 시간이 오래 지나서 자동적으로 잘리게 된 경우였다. 재겸이는 너무 황당하고,  안타까워했다. 재겸이는 내일 다시 공장에 나가서 슈바와 HR 매니저랑  이야기해보고 안 되면 그만 둬야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일을 다녀오니 재겸이는 집에 있었다. 다시 복직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거기에다가 HR 매니저의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행동 때문에 기분이 무척 상해서 다시 일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갑작스레 일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전개되니 재겸이도 나도 당황스러웠다.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은 재겸이 뿐만 아니었다. 재영이도 슈바와의 관계가 썩 좋지 못했고, 일을  힘들어했다. 나는 돈을 벌러 온 재영이에게 조금 더 참아볼 것을 권유했지만 이미 마음이 확고해진 재영이는 마음을 굳혔었다.


나이트 클리너를 했던 재영이는 같이 일하던 친한 한국인 동료들이 다 그만 두고 떠나는 상황에서 버틸 수 있었던 힘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공장일이 어디든 나름 고충이 있지만 나이트 클리너는 특히 힘들다고 소문난 보직이었다. 클리너도 보닝과 킬플로어 따로 나뉘어 있었는데 킬플로러 클리너는 굳은 피딱지를 수세미로 문질러 지워야 하는 작업이 많았고, 새벽 2~3시까지 하는 작업에 몸이 많이 힘들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일이 끝난 재영이와 재겸이는 나라쿠트에서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알아보았다. 포도가지치기, 양파공장 등을 알아보다 재영이가 먼저 양파공장에 가서 일을 했다. 양파 공장에서는 양파를 망에 담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것이 남자들의 주 업무라고 했다. 클리어 일만 하던 재영이는 다른 근육을 써야 하는 양파공장 일에 적응하기  힘들어했고, 미세한 흙먼지가 많은 작업환경 또한 천식이 있는 재영이에게는 힘든 곳이었다. 재겸이 역시 양파공장 일을 다녀온 재영이를 보고 달갑지 않은 눈치였다.


쉐어메이트들과 함께 김밥과 라면으로 이별 식사를 했다.

며칠 후 재영이와 재겸이는 나라쿠트 생활을 정리하고 멜버른으로 가야겠다고 했다. 나는 끝까지 같이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이별 또한 워홀이고, 지금 못 본다고 영영 못 보는 친구들도 아니었기에 친구들의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멜버른으로 간 친구들의 희비도 엇갈렸다. 2~3개월만 일하고 싶다던 재영이는 적당한 일을 구하지 못해 멜버른으로 간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으로  귀국했다. 재겸이는 나라쿠트에서부터 알던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육가공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재겸이는 돈을 더 벌고 여행을 하고 싶어 했는데 잘 된 것 같았다.


불확정성과 상대성 그리고 불확실성 이 세 가지가 버무려진 것이 워홀이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확정적이라고 믿고 있던 것도 내 의지와 노력과 상관없이 어느 순간 뒤집히고, 어떤 이에게는 힘든 일이 어떤 이에게는 할 만한 일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풍문들은 확실한 것을 없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 얼마나 행동을 빠르게 하느냐로 워홀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선배 워홀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꼭 필요한 방법이다. 어떤 것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라면 그것은 이미 많은 경험자들에게서 전체적으로 나쁜 피드백이 나왔기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이지 좋은데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이건 괜찮다라는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많다면 그것이 일이든, 여행지든 뭐든 간에 좋은 확률이 높다. 하지만 결국 선택은 자기 몫이고 자신의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 다른 사람 말을 듣고, 자신의 생각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그 사람 때문에 지역 이동을 했다가 낭패를 보면 그 사람에게 탓을 돌릴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왜냐면 워홀은 각기 개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을 보내고 다시 한 번 목적과 목표 설정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생각이 든다. 정해진 기간 내에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많은 워홀의 경우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목적과 목표 설정만이 자신이 원하는 워홀과 가깝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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