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되는 길
나는 나다워야 한다. 나는 누구의 아들, 누구의 친구, 누구의 제자가 아니라 나용민이다.
언젠가부터 내 정신은 줄에 묶인 개 마냥 끌려 다녔다. 내 정신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인이 흔드는 대로 흔들렸다. 내 정신이 흔들리는지도 모르는 채 짖으라면 짖고, 먹으라면 먹고, 앉으라고 하면 앉았다. 그렇게 줄에 의지해 살다 보니 힘든지, 안 힘든지, 재밌는지, 재미없는지 조차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육체가 병드는 것은 두려워 하지만 영혼이 죽는 것은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영혼이 죽은 육체들은 그들의 정신을 밥그릇에 팔아 버린다. 그리고 걸으라면 걷고, 앉으라면 앉고, 짖으라면 짖는다. 그것이 영혼 없는 육체의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영혼이 죽은 삶을 경계한다. 아니 두렵다. 이제야 내 정신을 단단히 묶었던 줄을 풀고 세상에 나왔다. 이 세상이라는 들판에는 꽃도 있고, 나무도 있고, 독사도 있고, 하이에나도 있다. 두렵다. 하지만 책을 읽다가 “두려움은 곧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고 무엇이랴.”라는 카릴 지브란의 글을 보았다. 카릴 지브란이 날 살렸다.
그렇다. 두려움은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다. 나는 어쩌면 꽃향기에 취해 독사가 나에게 다가오는지 모를 수 있고, 나무가 선물하는 그늘에 누워 있다가 하이에나의 공격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다행히도 독사와 하이에나는 무섭지 않다.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을 두려워할까 봐 무서울 뿐이다.
우주는 날 작고, 하찮게 만든다. 반면 하늘과 구름, 바람과 잔잔한 호수는 날 위대한 철학자로 만든다. 나는 a4용지의 수많은 마침표 중 하나지만 내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마침표이기도 하다.
가끔 마음속 호수 밑에 가라앉은 불안감은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을 만나면 폭포가 되어 내 눈으로 쏟아져 내린다. 맑고, 짭짤하게 쏟아져 내린 불안감은 금세 증발되고 내 마음은 한결 가볍다.
나는 나용민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