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일어나는 일의 원인이 되는 선하거나 악한 행동
우리 집은 개신교집안이다. 어머니는 내가 아기일 때 유아세례를 받았다고 하는데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중, 고등학교 시절 엄마의 압박에 못 이겨 몇 번 나간 교회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나에게 썩 달갑게 남지 않은 것 같다. 그 이후로 고등학교 때 성당에 나가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교회보다는 좀 더 좋은 느낌을 받았으나 꾸준히 다니지는 못했다. 그것이 나와 종교와의 마지막 인연이라 생각하고 지냈었다.
호주에 올 때 어머니가 항상 정직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며, 교회 나가기를 부탁하셨지만 교회 나가는 일은 지키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youtube에서 법정스님의 즉문즉설을 본 적이 있다. 엄마가 알면 표정이 썩 좋진 않겠지만 나는 엄마 생각과 달리 종교의 참의미는 모두 사랑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하기에 별다른 거부감 없이 시청했다.
법정스님의 즉문즉설은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들 중 사연을 말하고 그것에 대한 답을 듣는 것이다. 수 백 가지의 사연들이 있고, 그와 관련되어 법정스님의 투박하지만 정직하고 깔끔한 답은 내 얼어버린 머릿속 호수에 금을 가게 만들어 준다.
법정스님이 어떤 사람의 질문에 즉설을 하시는데 '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업이란 카르마(Karma)의 번역어로, 불교나 힌두교에서 말하는 미래에 일어나는 일의 원인이 되는 선하거나 악한 행동을 말한다.
현재로 보자면 지금 하는 내 행동 하나하나가 미래에 일어나는 일에 원인이 되는 것이다. 내가 지금 내 주변 사들에게 잘하면 미래에 그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내가 그 사람들에게 잘 못하고 해코지를 한다면 나중에 그들에게서부터 해를 받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더불어 불교에서는 윤회 즉, 다시 태어남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생을 잘 살지 못하면 다음 생에 고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의 계율 중에 살생을 금하는 것이 있다. 윤회사상에 따르면 내가 다음 생에 나방이나 해충으로 태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법륜스님이 말하길 이 업은 쉬운 마음으로는 고치기 힘들다고 한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마음을 먹어야지만 고칠 수 있을까 말까 하는 것이 업이라고 설명하셨다. 몇 년 전이었으면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텐데 요즘에서야 이 말이 공감이 된다. 내가 아무리 변하려고 노력해도 한계가 느껴지고 쉽게 포기하려는 나 자신을 볼 때마다 이게 내 업인가?라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업이라는 관념에서 바라보았을 때 나는 무한히 노력해야 하는 존재임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끊임없이 어제보다 나아지려는 노력을 해야만이 겨우 보통의 삶을 살아나가는 것 같다. 이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얻으려면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행동했던 것과는 다르게 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으면서도 실행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업을 바꾸려면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이 새삼 와 닿는다.
인생이 참 아이러니 한 부분은 이런 노력을 수반하지 않아도 살아진다는 것이다. 나름 안정적인 직장과 유대관계를 지속하면서 아무런 탈 없이 살아진다는 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안주하게 만들고, 변화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나는 인생이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의 마라톤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어떤 사람 눈에는 이성적이고, 차가워 보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 눈에는 참 열심히 살고, 부지런하게 비칠 수 있겠다. 그런 시선들은 전혀 중요치 않지만 내가 내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오늘 하루 잘 보냈는지를 되물을 때는 항상 반성하는 날이 기쁜 날보다 많은 것 같다.
나의 업이 힘든 시기는 길고, 행복의 순간은 짧은 것들의 합이라면 난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다. 상황과 주변인 탓을 하지 않고, 내 힘으로 내가 설 수 있는 그런 사람. 누에게나 당당하며 공손한 사람, 사랑을 받으면서 줄 줄도 아는 사람, 오늘보다 내일이 더 괜찮은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