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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Oct 11. 2015

엄지와 검지

군입대를 추억하며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친구 2명과 논산으로 가던 차 안은 신났다. 소녀시대 Gee는 최고였다.


입대날 아침까지 간을 혹사시켰기에 아직 간은 3끼 꼬박 주는 곳으로 가고 있음을 모르고 있었을 테다. 22살의 봄은 무척이나 추웠지만 그만큼 뜨거웠던 때가 있나 싶다. 이 세상이 끝날 것처럼, 마지막인 것처럼 하루 하루를 태웠다.


친구 형준이와 동반입대는 아니었지만 같은 날 입대하게 되어 각자 따로 논산까지 갔다. 대학 생활 2년을 같이 했지만 그 날은 달랐다. 우리 사이엔 묘한 긴장감이 있었다. 입대를 기다리는 다른 청년들처럼 말이다.


2009년 3월 2일은 그런 날이었다. 많은 청년들과 그의 가족들이 매주 있는 뻔한 행사에 참여하는 날, 자식을 의무라는 이름에 맡기는 날, 부모님의 눈물을 볼 수 있는 날, '호국요람'이라고 적힌 논산훈련소 입구에 적힌 문구의 의미를 되새길틈도 없이 시계와 깔창을 파는 아주머니들에게 둘러 쌓이는 날, 연병장까지 걸어가는 길에 있는 탱크 혹은 포 앞에서 기념사진들을 찍는 날이다.


논산훈련소는 입영장병과 가족들로 매우 붐비었고, 곳곳에선 웃음과 울음이 뒤섞였다. 나는 웃었지만 그곳에서의 모든 웃음은 눈물의 승화였다. 나와 같은 20대 청년들이 있었다. 그들은 마음껏 울고 싶지만 울지 않았다. 자신이 울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울 것이란 걸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다.


연병장에서 입대장병들을 호명하기 전 같이 온 지인들과 인사를 나눈다. 나는 그렇게 슬프지 않았다. 외롭지도 않았다. 하지만 2년이 그렇게 길 줄 알았더라면 친구들을 한 번이라도 더 안아 볼걸이란
 생각이 문득 든다.

"입영장병들은 연병장으로 집합해주십시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입영장병들은 연병장으로 나와주십시오"
사무적인 조교의 말투는 많은 어머니들의 눈물을 짜낸다. 그렇게 단숨에 여자를 펑펑 울릴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싶다.


그리곤 우린 갔다.

엄지와 검지만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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