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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Oct 12. 2015

#5 현실과 이상의 괴리(1/2)

나를 만나자

방황을 할 때는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이 길의 끝이 어딘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르고 방황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방황의 본질이다. 다만 방황할 때에 자신을 놓아버려선 안된다.


머릿속 청사진은 좋다. 무엇인가 내 일을 하고 싶고, 얽매이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왔으면 하는 꿈은 있다. 현실은 당장 이번 달 자취방 월세나 밀리지 않으면 다행이고, 500원이라도 싼 밥을 찾아다니는 대학생일 뿐이다.


현실이 무거워 나를 짓누를수록 나는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생각보다는  먹고살기 위한 것에 집중하게 된다. 나를 찾는 것이 아닌 먹고살기 위한 악순환의 생각의 고리에 빠지게 되면 헤어 나오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먹고사는 문제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이 전부 취직을 하고 싶어서 안달 난 것 같지만 취직하지 않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무엇인가를 하기에 두렵고,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겁부터 먹게 되는 일을 개인의 일로 치부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선택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부족하다.


구조적인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구조적 문제만을 탓하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오늘의 해는 뜨고, 지기 때문이다. 어김없이 현실과 마주해야 하고, 하루를 살아내야 한다. 꿈과 희망이 있어도 눈 앞에 당면한 과제부터 처리해야 살아남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을 때 별다른 고민 없이 해야겠다라고 마음 먹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많은수록 그 사회는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실패해도 손가락질보단 실패에 박수를 보낼 줄 아는 성숙한 시민사회가 있을 때 우리 사회는 조금 더 발전적인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선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진정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철저한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이 시간을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혹은 '나와의 독대'라 부른다. 이 시간은 무척이나 난감하고, 어색하다. 난 나 자신에게 묻는다. “너는 뭐가 좋아?”, “너는 무슨 일을 하면 힘들어도  계속할 것 같니?” 처음에는 당장 답이 나오지 않는다. 어릴 적 꿈을 물어보던 선생님의 질문에 “파일럿이요!”라고 대답하던 것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나에게 물음으로서 진짜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나와의 독대는 거짓이 없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은 실수라고 볼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을 속이는 행위는 치명적인 실수다. 치명적인 실수란 돌이키기 힘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고, 하고 싶은지 물을 때는 철저히 진실되고, 솔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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