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하지 말거라!
검은색 머리카락이 잘 어울리시던 아버지의 머리카락은 흰 머리카락과 검은 머리카락이 물감 섞여있듯 서로가 서로를 물들이고 있다. 흰 머리카락이 조금만 더 노력하면 스포츠 머리를 하신 아버지는 알비노 고슴도치와 매우 흡사해질 듯하다.
나의 자의식이 생기고 나서는 한 번도 맞고 자라지 않았다. 다만 부모님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 집은 어릴 적에 이불집을 했었는데 초등학교 입학 전 내가 라이터를 가지고 놀다가 불이 휴지에 옮겨져 그 불이 이불에 옮겨졌다고 한다.(예전엔 가게와 집이 붙어 있는 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다행히 낮잠을 주무시던 아버지가 깨셔서 큰 화재로 이어지진 않았다고 한다. 그때 화나신 아버지가 나를 옷걸이에 뒷덜미를 걸어놓고 혼내셨다고 한다. 그것이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자유분방함 속에서 자랐지만 경상도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인 아버지와의 교류는 대부분의 아들만 있는 집과 다를바 없었다. 끼니를 잘 때우는지, 이번엔 학교 성적이 조금은 올랐는지 등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히 근심,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셨을 텐데 무던히 이해하고, 바라봐주신 것에 대한 존경을 보내고 싶다.
대학에 진학 후 학교생활 한다, 군대다 해서 마주하는 일은 더욱 적어지고 대화도 더 적어졌지만, 소설에서만 보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점점 왜소해짐은 내가 더 커서일까? 아님 아버지가 점점 작아지시는 것일까?
오랜만에 아버지와 단 둘이 술 한 잔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매우 솔직하고, 진실하셨다. 그래서 더 편했다. 하지만 나는 불과 5년 전만 해도 밥 먹는 자리가 어색하고 힘들다고 느꼈는데 말이다.
아버지와 두 눈을 마주치며 하는 술자리에서 나는 어떠한 안주도 필요 없어졌다. 아버지의 눈 속에는 감사함, 미안함, 사랑스러움, 걱정, 용기, 측은함 등 부모의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눈 속에 있는 많은 사랑의 안주들을 골라 먹다 보니 술은 취하지 않았지만 점점 목메고 있었다.
용민아, 굴하지 말거라 그리고 항상 용기를 가져라
아버지의 눈은 따뜻했다. 그리고 포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