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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Oct 16. 2015

#7 방황의 아이콘, 술(1/3)

속주와 폭음

대학에 진학하면서 방황하는 나에게 가장 큰 위로와 힘이 돼 주었던 것은 술이다. 술은 말이 없다. 차가움으로 날 어루만져주고 결국엔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준다. 나는 술을 마시며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순수의 상태로 돌아간 것 같았다. 술을 마시는 동안에는 사람들의 웃음만 보고 싶었다. 웃고 떠들면서 서로의 위치나 상황에 상관없이 동등한 입장에 놓여 있다고 믿었다.


내가 스무 살 초반에 과음을 습관처럼 하게 된 계기는 동아리 덕분이었다. 타이틀은 역사를 연구하는 동아리였지만 실상은 같은 과 친목 모임 동아리였다. 일주일에 2번 모임을 갖는 동아리에서 뒤풀이는 백미다. 모두 수업이 끝난 6시부터 동아리 모임을 갖는다. 동아리 모임은 2시간 정도 하고 뒤풀이로 이어진다. 뒤풀이는 정일품이라는 소주집에서 했다. 5천 원에 3개가 시킬 수 있는 안주를 두고 굶주린 배를 채우며 술을 마셨다.


우리 동아리는 술을 강요하는 문화는 없었지만 은근히 자존심을 건드리는 장난은 존재했다. 술을 안 마실 거면 이 자리에 왜 있냐는 식의 장난에 어린 새내기들은 곧잘 넘어가기도 한다.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술을 빼면 밉상으로 찍히기에  그때부터 속주와 폭음을 하기 시작했다.


술을 빠르게 그리고 많이 마시게 되면 나타나는 증상은 일단 자신이 취하는 과정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취하게 되면 인사불성이 되는 경우가 많고, 두 번 술 마시면 한 번은 꼭 속을 비워낸다. 이런 경험을 단기간에 많이 하게 되면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고르게 된다. 술이 싫어지거나 혹은 좋아지거나.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여학생들의 경우는 술을 멀리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술자리를 즐기더라도 술 자체는 많이 마시지 않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당연히 술의 매력에 빠졌다. 술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 돼버린 것이다. 어느 순간 밥을 먹으러 가서도 맛있으면 술 생각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완전히 술에 중독되었다.


나는 조금 유별나지만 보통의 대학생들처럼 내가 술을 마시는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는 유별나도 유별난 사람이었고, 술에 의존하는 대학생이었다. 현실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교 2학년 1학기까지만 해도 동아리 사람들과 점점 친해지면서 친목도모로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 2학기에 들어서 대학교에 와서 가까워진 친구를 황망하게 잃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죄책감은 나를 짓눌렀고, 군대 가기 전인 다음해 3월까지 술을 마셨다.


군 생활을 하는 동안도 죄책감은 잘 씻기지 않았다. 마치 나 때문에 친구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휴가를 나와도 술뿐이었다. 2년이 지나도 나는 변함없었다. 24살은 내가 철들기엔 무겁게 느껴지는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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