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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Oct 17. 2015

#8 방황의 아이콘, 술(2/3)

과음은 병이다

술에 관한 에피소드는 믿기지 않을 만큼 무궁무진하다. 한 번은 막 스무 살이 되어 주민등록증을 마패처럼 꺼내던 시절이다. 학교와 동네를 벗어나지 않던 내가 친구와 홍대를 나갔다. 같이 간 친구는 그 나이에도 술에 도가 튼 친구였는데 나와 함께 신나는 노래가 나오는 bar에 가서 테킬라를 마시자는 것이다. 나는 그 날까지 테킬라란 아주 쓴 술이고 나와는 동떨어진 술이라 생각했다.


테킬라 세트 5만 9천 원 짜리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워낙 센 술이라 잔으로 시켜 먹거나 칵테일을 만들어 먹는 술인 테킬라를 친구는 한 병을 시켰다. 소주 도수의 2배가 넘는 40도 술을 마치 소주처럼 한 잔씩 따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처음엔 워낙 독해 어떻게 마시나 싶었는데 데낄라 특유의 향과 깔끔함 때문인지 계속 넘어갔다. 한 병을 다 비워갈 즘 친구는 한 병을 더 시켰다. 나는 놀라 친구를 바라보았지만 친구는 술꾼들이 하는 인사말과 같은 “오늘 먹고 죽자”를 외쳤다. 나는 말릴 수 없었고, 내 이성도  마비되었다.


우리는 두 명이서 테킬라 한 병 반을 마셨다.  그때까지도 난 내가 술이 세다 생각했고, 자리에 앉아서 시끄러운 노래를 들으며 마셔서 그런지 취한 줄 몰랐다. 자리에서 일어나 바를 나와 홍대 길거리는 걷는데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하더니 블랙아웃이 되었다. tv전원이 꺼지듯 내 뇌도 꺼진 것 같았다. 그 뒤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을 떠보니 호텔방에 옷을 입은 채로 누워있었다. 머리는 1000조각 퍼즐처럼 산산조각이 난 것처럼 아팠다. 방엔 아무도 없었고, 토가 묻은 내 겉옷만 의자에 걸쳐져 있었다. 술값으로 모든 돈을 탕진한 나는 주머니에 있던 만 원짜리 한 장 덕분에 집으로 오는 택시를 탈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해 숙취에 고생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잠이 들었고, 몇 시간 후에 깨어 정신이 돌아와 친구에게 연락했다. 친구는 이제야 정신이 드냐며 어젯밤 일을 설명해주었다. 테킬라를 마신 바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인사불성의 취객이 되었고 그대로 길거리에  주저앉았다고 했다. 그리곤 몸을 가눌 수 없는 나는 그대로 홍대 길바닥에 침대처럼 누웠다고 했다. 온갖 사람들이 나를 보며 지나쳐갔다고 했다.


일어나지 않는 나를 깨우기 위해 내 친구는 물을 사서 먹이기도 하고, 때려보기도 했지만 내가 꿈쩍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던 중 친구가 그런 것인지 내가 잘못해서 찢어진 것인지는 몰라도 내 오른쪽 눈밑에 2cm가량이 찢어져 있었다. 결국 상처는 성형외과로 가서 1cm에 10만 원씩 주고 총 20만 원을 들여 예쁘게 꿰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모든 것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뭐하며 사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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