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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Oct 18. 2015

#9 방황의 아이콘, 술(3/3)

나의 술 사랑은 스펙터클한 에피소드에도 그치지 않았다. 황망하게 떠난 친구에 대한 죄책감과 현실 도피에 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모든 것을 잊고, 웃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다들 걷는 길에 대한 회의가 나를 자꾸 술로 밀어냈다. 내 것을 찾는데에 집중하지 않고, 현실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스무 살 초반의 나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나는 너무 나를 아끼지 않았던 것 같다.


수 많은 술자리, 수 많은 술잔, 수 많은 술친구들을 겪으면서 나는 말로는 설명하기는 부족한 나만의 무엇인가를 얻게 되었다. 그 무엇인가는 바로 사람을 보는 안목이다. 나는 사람을 관찰하기를 좋아한다. 술자리에서 사람이란 자신의 본모습을 잘 보여주는 자리가 되기 쉽다. 이성의 힘은 풀리면서 릴랙스 되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술자리를 즐기면서도 사람들의 행동과 말, 말투, 태도들을 보았다. 왜 저 사람이 저런 말을 했을까? 왜 저 사람은 저런 태도를 취할까?를 생각하다 보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에 이 사람과 내가 맞는다 혹은 안 맞는다를 판단하거나 내가 조금 더 유한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은지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 것이다.


모든 일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나는 그것을 깨닫게 되었다. 무조건 나쁜 것도, 무조건 좋은 것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방황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런 것이다. 나쁜 일을 경험했다 하더라도 그 속에 긍정적인 면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도박에 빠져 돈을 잃었다면 도박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닫고 다시는 하지 않을 수 있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술을 많이 마신 나는 건강도 잃고, 내 생활을 잃었지만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배울 수 있었으며 적당한 술은 삶에 활력소가 된다는 나름의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었다. 


방황하는 자에게 술은 동반자일  수밖에 없다. 방황할 때는 술만이 위로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길고, 어둡고, 축축한 터널을 지날 때 진실로, 진정으로 삶의 의미를 고민한다면 저 멀리 방황의 터널 끝 빛 한 줄기가 보인다. 그 희망의 불을 보며 터널을 나오면 더 밝고,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방황하는 시간을 겪지 않으면 결국엔 언젠가 겪게 되어있다. 방황은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기간과 때가 다르지만 누구든, 언제든 겪는다. 흔히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 2~3년 하면 오는 어른 사춘기와 같은 맥락이다. 자신은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취업을 위한 준비를 했을 뿐 진정으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 무르 익지 않았다면 서른에 찾아온 사춘기에 고생할 수밖에 없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나 늦은 시기에 겪는다고 해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 시간을 견뎌내고, 자신만의 길을 찾게 되면 더 없이 큰 행복과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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