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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Oct 24. 2015

알코올에서 카페인으로

중세인들은 알코올로 견뎠다

‘중세인들은 알코올로 견뎠다.’고 니체는 말했습니다. 최면제인 알코올이 각성제인 커피로 바뀌면서 근대가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신영복씨의 『담론』에 나오는 구절이다.

니체의 말대로라면 나는 중세인이었다. 알코올로 견뎠었다. 친구의 황망한 죽음, 지리멸렬한 현실, 보잘 것 없이 느껴지는 나를 잊기 위한 방법으로 알코올을 선택했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그 시절 마시고, 웃을 때는 몰랐다.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래를 손으로 한 움큼 쥐면 손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내 청춘들이 흘렀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 때의 내가 참 가엽다. 염세의 웅덩이를 빠져나오는 방법을 몰랐다. 그저 취하고, 웃어야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 길고, 어두운 터널을 같이 걸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제 밝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나는 그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내 길은 국도다. 그들보다 조금 느리게 도착할 것 같다. 하지만 난 목적지로 가는 길에 낙엽도 보고, 석양을 느끼고, 국밥도 한 그릇하며 갈 것이다. 그것이 고속도로를 탄 사람들 눈에는 조금 뒤쳐져 보일지 모르겠다.

인생의 1/3 중 의식이 깨어 있는 시간을 알코올로 보냈으니 앞으로의 시간들을 카페인과 함께하고 싶다. 나를 각성시키고, 나는 쓸 것이다. 내가 겪고, 읽고, 느낀 것들을 써내려 갈 것이다. 아마 그대들의 의심과 관심이 나를 더욱 키울 것이다. 내가 알코올로 견딜 때처럼 말이다.

이제 커피를 타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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