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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f Jan 14. 2021

편지의 묘미

머뭇거림

새벽에 근무를 하는 일이 잦다고 처음 이야기 들었을 때부터


새벽 감성으로 편지나 써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사람들은 편지를 특별한 날에 쓴다. 어버이날 학교에서 쓰는 시간을 갖는다거나, 친한 친구의 생일 축하 편지를 쓴다거나, 아니면 애인과의 기념일에 선물과 함께 줄 용도로 적곤 한다. 나 역시 그런 평범함 속 하나였기에, 특별하지 않아도 쓰는 편지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저 안부를 전한다거나, 하고 싶었지만 그저 삼키기만 했던 말들을 찬찬히 적기 위해 쓰는 편지. 물론 전자는 메신저의 발전과 함께 의미가 퇴색되어버렸기에, 후자를 그렇지 않았기에 편지가 더 매력적으로 보였던 것이었다.


아무리 감성이 충만하고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아도 편지를 쓰는 것은 막막한 일이다. '글이 막히면 일단 쓰고 생각해라'라는 조언을 생각해봐도 쉽게 쓰고 지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틀리면 지우개로 지울 생각에 연필로 적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지우개로 편지지 위를 왔다 갔다 하면 금방 조잡해질 것 같아, 울며 겨자 먹기로 펜을 든다. 그렇게 펜을 들고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나가다 보면, 잉크 뒤로 후회가 따라붙는다.


글씨가 별로 안 이쁜 것 같은데.

아, 잘못 생각했다. 이 단어 쓰면 안 됐었는데. 어떡하지?

처음 생각했을 때는 이러한 느낌이 아니었는데... 쓰고 나서 보니 좀 구리네.


자꾸 이런 생각들은 편지 쓸 맛을 뚝 떨어트린다. 그리고 점점 한 글자 글자 조심조심하게 된다. 혹여나 비문이 아닐까 하며 되돌아보기도 하고, 글자를 깔끔하게 적으려 더 신중을 가한다. 처음 편지를 쓸 적에는, 이미 써버린 편지가 마음에 안 들면 처음 구입했을 때부터 들어있던 여분의 편지지를 다시 꺼내어 썼다. 그렇게 4장의 편지지 중 2장의 편지지가 연습장으로 전락해버리고, 남은 2장의 편지지도 언제나 마지막은 아쉬움 섞인 날짜를 적으며 마무리했었다. 아직까지도 편지를 적으면서도 써져버린 문장을 향한 아쉬움을 지워내기 힘들다.


편지의 묘미는 이러한 아쉬움에서 나온다. 아쉬움은 많은 노력을 내포한다. 문장을 앞에 두고 느끼는 머뭇거림. 스스로의 글을 적으면서도 이게 맞나라는 의심. 한 문장, 한 단어, 한 글자를 이쁘게 적으려는 애정. 맥락이 맞나 확인하려 수없이 자신이 쓴 글을 읽어보는 걱정. 그럼에도 지울 수 없는 아쉬움. 이러한 감정들은 상대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해 준다. 내가 왜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고, 상대가 어떤 메시지를 받으면 좋겠는지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다. 종이 위에 큰 마음을 담아 보내려 할수록 그러한 불편함은 커지기만 한다. 그래서 난 편지를 시작하며 느끼는 막연함과 머뭇거림이 좋기만 하다. 그만큼 상대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 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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