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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f Jan 10. 2021

(단편) 글 잘 쓰는 법 - 시작

소설과 수필 사이 어딘가

소설과 수필 중간 어딘가에 있는 이 글.


시작. 글을 처음 배울 때 그렇게 글의 시작을 강조하곤 한다. 자고로 시작은 다음 문장이 궁금해지도록 하는 유능한 바람잡이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마땅한 문장이 없으면 질문처럼 읽는 사람의 관심을 확 끌 수 있는 형식으로 글을 여는 것을 추천하곤 한다. 그래, 시작은 마치 식당의 간판 같은 것이라 그들은 말한다. 식당의 메뉴나 분위기를 유추할 수 있어야 하며, 당연히 뛰어난 가시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손님들이 오니깐.


하지만 그렇게 무거운 네온사인을 간판으로 달았다가는 너가 원하는 글을 쓸 수는 없을걸, 하고 자존심이 말한다. 처음 글을 쓴다 했을 때부터 세웠던 나만의 목표. 소설 속에나 등장할 법한 찻집 같은 글을 쓰자. 소박한 식사메뉴에서부터 대학 새내기들은 처음 보는 술도 팔며, 방문한 사람에게 향기로운 찻잎으로 점을 찍어주는 찻집. 그런 바람 모두 동경과 선망에서 나온 것이겠지. 어느 날 아침과 점심 사이, 애매한 시간 식사를 해결하러 급히 들어간 카페. 그저 그런 카페인가 보구나 하며 빵과 함께 시킨 아메리카노. 색, 맛, 온도 무엇하나 다른 것이 없어 보였지만, 그만 같은 듯 오묘한 향에 커피는 자신의 특별함을 들켜버리고 말았다. 커피를 내린 바리스타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이는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는 동경으로 바뀌었다.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숨길 수 없는 깊음과 향기로움을 가진 커피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런 과거였기에, 내 앞에 놓인 커다란 간판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커다란 간판을 달아버리면, 뒤에 글들이 다 꼬여버린다. 간판은 기껏해야 식당의 분위기 정도만 바꾸겠지만, 첫 문장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자면 갈림길, 돌탑 가장 아래 돌, 첫 단추, 세 살 버릇, 첫인상 같은 것이어서, 꼭 그러리란 법은 없지만, 첫 문장은 뒤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들을 구체화시키며 한정시킨다. 그렇기에 손가락들이 머뭇거리고 있으면, 그건 적당한 표현이나 글자가 없는 것이 아닌 시작부터 글러먹은 거지. 어떻게든, 참신한 표현으로 모면하려 해 봐도 여의치 않아 결국 뭉탱이를 지워내기 일쑤일 뿐이다. 마냥 자극적인 시작으로 판만 벌려놓았다가는, 오히려 실망만이 쌓일 것이다.


개인적인 선호는 가벼운 시작이다. 경험, 세간에 알려진 사실들, 넋두리보다는 처음 영화 내레이션과 비슷한 느낌처럼 부담스럽지 않은 시작 말이다. 길이와 무게는 직관이 말해주듯 상관관계가 있다. 그렇기에 짧게 시작을 가져가려 노력한다. 시작뿐만이 아니라, 글이 점점 무거워지면, 명사로 문장을 끝내며 글 사이사이 생각할 수 있는 공기를 마련해둔다. 빈 공간은 결국 독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이미지로 채운다. 소설 원작 영화가 호평받기 힘든 이유와 마찬가지겠지. 이마저도 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면 일부러 믹스 매치한 문장들을 많이 쓴다. 소설에서나 쓸법한, 시에서나 쓸법한, 논문에서나 쓸법한 표현들을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에 억지로 꼬며 배치한다. 맥락이 존재하지 않는 처음이기에 나름 신선한 느낌을 준다. 눈 가리고 아웅 하며 겉멋을 부리는 것 같아 기분이 일그러지지만, 더 나은 방법이 없는 자신을 탓할 뿐이다.


미처 감추지 못한 풍미를 가진 가벼운 문장. 그래, 자고로 시작은 읽었을 때 독자 머릿속에 크든 작든 느낌표/물음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꼭 첫 문장은 아니어도 되지만 적어도  세네 문장 안에는 성공해야 하는 시시한 게임.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 건 결국 참신함이겠지. 하지만 사탕을 고르랬더니 카라멜을 고르는 건 안된다. 그건 반칙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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