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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f Dec 01. 2020

'애매한 시간'

그 속에서 행복해지는 방법

군대 크루 근무 생활하면서 마주친 '애매한 시간'. 노는 것도, 그렇다고 일하는 건 더더욱 아닌 이 시간.

무언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는 짧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 군대뿐만이 아닌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던 시간. 강의와 강의 사이 비어버린 2시간의 공강 시간처럼 흔하지만 썩 반갑지 않은 시간. 사회에서는 그저 핸드폰을 보면서 애매함을 달래곤 했는데, 핸드폰 사용이 자유롭지 않은 군부대에서는 그마저 자유롭지 못하다.


 이 시간의 가장 끔찍한 것은, 수식어가 말해주듯 '애매하다'는 것이다. 그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워낙 애매해서, 기껏해야 한 가지나 두 가지 일만 해버려도 시간이 동나버릴 거야. 가치 없는 일로 시간을 보내버려 슬퍼져도 너에게 그 슬픔을 매울 시간은 없을 거야. 그러니깐, 별 다른 시도하지 말고 그냥 폰 켜서 유튜브나 보지?"


는 그의 말이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느낌이다. 떨쳐내려고 다짐해도, 남아버린 찝찝함이 집중을 무너뜨리고 엉켜버린 기분 덩어리를 바닥에 흩트려 놓는다. 의지가 여간 강하지 않으면, 운 좋게 집중에 성공한다 한들 옆에 있는 핸드폰이 내 손까지 오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지금도 이도 저도 아닌 시간에 글을 쓰고 있는데, 지금도 케이스 속 라이언의 반가운 인사만이 눈에 밟힌다. 마치 핸드폰 알림이 왔으니 확인해보라고 말하는 듯한 인사를 애써 무시하려고 하니, 집중 대상이 많아서 그런지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누가 양쪽 뒤통수와 옆통수 사이에 고춧가루를 뿌려놓았나.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는 것도 분명 즐거운 일 같아 보이지만, 사실 나에게는 그저 유혹에 가깝다. 오후에 먹은 달달한 치즈케이크가 저녁 식사를 방해하는 것처럼, 달콤한 유혹만을 취하다 보면 정작 심적으로는 텅텅 비어버리고 만다. 허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는 공부나 운동처럼 과정은 힘들고 귀찮지만,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나름의 재미와 소소한 성취감만이 꼭 필요하다.


언제나 애매함한테 놀아나는 이유는 그가 나에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를 주기 때문이다. 그가 제시하는 선택지는 나의 의지를 온전히 반영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확한 반대의 역할을 한다. 내 마음속 의지가 약한 부분을 찾아내어, 그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도록 선택의 저울에 손을 댄다. 그의 논리는 유혹을 대변하는 똑똑한 변호인인 셈이다. 그는 내가 뭘 좀 해보려고 하면, 어느새 옆에 자리를 잡고 지금 가는 길이 행복을 향한 길이 아니라며 빨리 포기하라고 설득한다. 설득을 듣고 있으면,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 더 고통스러우지는 것은 덤이다. 그가 제시한 선택지가 추가된 객관식은 선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짜증과 싫증을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선택이 끝난 후에도 지루함과 무기력감을 남겨놓는다.


수차례의 행복을 향한 삽질과 절망 끝에 나는 배수진을 치듯 '하고자 하는 건 끝내겠다'라는 단호한 마음이 언제나 내 행복에 더 많은 기여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라리 별생각 없이 재미없어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을 가져다줄 때가 많았다. 뭐가 더 재밌고 이로울지 앞뒤 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당장 하고 싶은 능동적 활동에 집중하는 것.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 나 자신을 그려나가는 것.


여태까지는 왜 그러지 못했나 생각해보니, '의미 없이 삽질만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내 마음속 걱정 때문이었다. 나쁜 것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더 행복해지고 싶고, 더 가치 있는 일로 시간을 채우고 싶은 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능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걱정에는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까'는 고민이 아닌, '혹시 지금 내가 하려는 행동을 나중에 후회하지는 않을까'는 의심이 가득 차 있었다. 나도 모르게 결여된 자신감은 여태껏 잘 포장되어 날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재미와 행복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제일 잘 설명하는 이미지는 숨바꼭질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능동적으로 찾으러 다녀야 한다. 그럴 의지가 없다면 결국 해는 저물 것이고 내가 잡지 못한 행복들이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놓쳐버린 행복들이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도 잡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기 싫다면 지금 당장 일어서야 한다. 그들을 찾으러 다닌다 마음먹어도 무작정 찾아지는 것도 아니다. 없을 것이라 확신했던,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행복은 조용히 키득커리며 숨어있기 마련이고 남이 찾은 걸 보고 나서야 '아, 저곳을 찾아볼 걸' 후회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음 숨바꼭질 때 그 자리에 숨어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분명한 것은, 찾으러 가지 않는다면, 절대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어진 '애매한 시간'속에서 내가 해야 했던 것은 그들을 찾지 못할까 하는 걱정 위에 앉아있는 것이 아닌 그들을 찾으러 떠났어야 했던 것이다. 비록 시간이 조금은 촉박할지언정 말이다.


사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오늘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행복이 여기 숨어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냐는 말이다. 그래도 다음번에는 이곳부터 찾아봐야지. 혹시 모르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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