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의 강한 수축을 통해 떨림을 만들어내는 'pop(팝)'이란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 스트릿 댄스 장르 중 하나
번외로 많은 사람들이 팝핀으로 부르곤 하지만, 팝핑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팝핀현준이나, 각기춤이란 이름을 통해서 어렴풋이 팝핑을 알고 있었다. [로봇처럼] 움직이는 팝핑댄서들에 많은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유튜브에서 팝핑 영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었고
대학교 들어가면 꼭 댄스 동아리에 들어가서 팝핀을 춰야지
다짐했었다. 대학에 합격하자마자 신입생 때 대학교 스트릿 댄스 동아리에 들어가서 팝핑을 시작했고, 아직까지도 열심히 추고 있다. 햇수로는 벌써 3년이지만, 팝핑은 아직까지도 나에게 미지의 대상이자 도전의 영역이다.
팝핑의 진입장벽은 타 스트릿 댄스에 비해서 많이 높은 편이다(그래도 비보이보다는 낮지만). 높은 진입장벽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은 "pop"이다. 팝핑의 A to Z인 "pop"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동작 중심이 아닌 근육 중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선배들의 설명은 대게 1) 해부학적으로 근육의 위치와 기능을 알려준 다음 2) 어떤 느낌, 이미지로 팝을 주는지를 알려주는 식이었다. 예를 들자면...
1) 삼두근은 팔 바깥쪽에 붙어있는 근육이야.
2) 팔꿈치가 바깥쪽으로 돌아가다가 벽을 만나서 멈췄다고 생각해봐.
명확한 동작 없이 느낌과 이미지를 강조하는 팝 설명은 다 좋았지만 따라 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비단 pop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많은 팝핑의 기본기들이 동작 그 자체보다는 이미지와 느낌이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연습의 핵심은 정확한 동작을 구사하는 것이 아닌, 개인마다 최적의 각(angle)과 춤 선, 그리고 느낌을 찾는 것이다. 실제로도 (글 첫 사진의 주인공인) 유명 팝핑 크루인 World FameUs의 5명(Poppin' J, Boogaloo Kin, Hozin, Jaygee, Hoan)의 팝핑은 다 제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연습 목표는 이처럼 명확하지만, 구체적인 길과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기에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연습 방향을 잡는 것만으로도 큰 고민인 셈이다.
처음 듣는 음악 안에서 자신만의 춤을 추기 위해 연습하는 것. 이 난제를 대하는 프로 팝핑 댄서들의 접근법은 다양하다. 대부분의 팝핑 댄서는 새로운 걸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도 '기본'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팝핑의 다양한 동작을 하나하나 연습하며, 팝핑 스타일에 대한 이해도를 차근차근 쌓는 것. 팝이나 아이솔레이션, 롤처럼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퀄리티가 나빠지는 기본기를 매일같이 연습하는 것. 웨이트나 맨몸 운동을 통해 원하는 동작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 놓는 것.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고 지루할 수도 일이지만, '뻔하고 멋없는' 춤을 갈고닦기 위해서 흘려야 할 것은 '뻔한' 땀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땀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있는 그루브(groove)는 팝핑댄서에게 간절했던 아이덴티티를 선물해준다. 가수에게 발성, 축구선수에게 드리블처럼 그루브는 남들과 같은 동작 속에서도 남들과 다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Hozin님이 새로 낸 티셔츠 #GROOVEISTHEKEY에서도 그루브의 중요함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분명 그들은 무대마다, 춤을 출 때마다 무언갈 보여줘야 하는 사람이다. 기존의 것을 자신 색깔에 맞춰 재해석한 것이든, 아예 새로운 것을 가져오든 무언갈 보여줘야 한다. 어떤 프로댄서들도 자신의 무대를 본 사람들이 "아 또 똑같은 거 하네."라는 생각이 들기를 원하지 않는다. (물리학도의 시선으로는) 표현의 다양성을 넓히기 위해 프로댄서들은 '좌표계 변화'를 필요로 한다. 데카르트 좌표계를 극좌표계로 바꾸는 것처럼기존의 것을 재해석하기 위해 집중하는 대상을 바꿔본다거나, 새로운 춤을 가져오기 위해 기존 공간에 차원을 하나 추가하여 공간을 '넓어지게' 하는 식의 좌표계 변화 말이다.
미안해요. 천생 물리학과인가 봐요. '좌표계 변화'를 '새로운 언어의 습득'으로 바꾸고, 밑줄을 각각 '한국어 대신 영어를 익히며 영어권 사용자들의 생각의 양식을 배우는 것처럼', '새로운 음운의 추가로 발음할 수 있는 단어를 히며'로 치환하면 대략 의미가 비슷할 것 같아요.
말이 변화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천장에 날아다니는 파리를 보든, 구(sphere)를 백날 그려보든, 결국 필요한 것은 영감(inspiration)이다.(실제로 팝핑 댄서뿐만 아닌 많은 스트릿 댄서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흔히 찾을 수 있는 말이 inspiration이다.) 영감을 얻기 위해서 그들은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룹스터디처럼 여러 명이 같이 모여 연습하며 서로에게 영감을 찾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주목하고 싶은 것은 움직임에 제약을 걸고 춤을 추기도 한다는 것이다. 가령, '팔 쓰지 않기', '다리 쓰지 않기', '4박자당 한 번씩 레벨(level, 높이) 변화주기' 같은 조건 속에서 연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습관처럼 하는 움직임을 고칠 수 있기도 하고, 제약 속에서 다양함을 주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보다 섬세한 고민과 시도를 많이 해볼 수 있다. 천천히 걸으면 평소에 보이지 않던 풍경을 볼 수 있어 좋다는 말처럼, 제약이 선물해준 한정된 공간을 가득 채우려고 노력하는 시간 속에서 그들은 새로움의 실마리를 찾곤 한다. 제약과 비슷한 맥락이지만 새로운 이미지/키워드를 가져와 연습하기도 한다. '직각', '원', '직사각형', '평면', '고정', '손목', '상하좌우', '회전', '일정한 규칙과 변화' 등 다양한 키워드로 연습하며 각 키워드가 선물해준 바를 깨닫게 된다. 물론, 같은 키워드 속에서도 각자가 깨닫는 바는 다 제각각이지만 말이다. 최대한 많은 다양성에 자신을 노출시키며 그들은 차근차근 춤을 잘 추기 위한 단서들을 모은다.
열심히 스스로를 갈고닦아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영감은 제한적이기에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밖'으로 향한다. 팝핑의 원류에게 그들이 어떻게 춤을 이해하고 추는지를 듣는 1~2시간이 소중해서 비행기 타고 타국으로 가기도 하고, 팝핑의 배경음악이 되는 Funk의 역사와 발달 과정을 심도 깊게 찾아보며 공부하기도 한다. 단순히 사전적인 의미나 명시적인 문장만을 알아가는 것이 아닌, 발상의 근거, 발달의 과정을 통해 장르의 흐름을 느끼려 노력한다. 춤을 추는 것과는 직접적으로 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일들이지만, 순수한 궁금증과 열망으로 그들은 매 순간 진심으로 임한다. 그렇게 어떤 춤을, 어떤 음악에, 추는지를 공부하며자신들이 놓치고 있던 것을 발견한다. 놓치고 있던 것을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과 연결시키면서 그들은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자칫 '알고 있던 것'이라는 오명을 쓸만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때로는 자신의 원래 동경하던 팝핑의 대가들에게 스킬과 기술들을 구체적으로 배우기 위해 수업을 듣기도 한다. 대가들은 자신들의 주특기 동작과 기술들을 나열해 놓은 루틴(routine)에 녹이며, 학생들은 이를 따라 한다. 학생들은 루틴을 따라가며 대가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변화와 움직임을 체험하고 이는 '자신이 알고 있었다는 착각'들을 산산조각 내주어 학생들로 하여금 다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물론, 모르던 것을 새로 알려주는 것도 수업의 순기능 중 하나이다.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그들의 모습은 바로 본질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Popping은 단순히Popping 스러운technique들의 나열이기 이전에 Dancing, 즉 춤이라는 것. 그렇기에 춤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것. 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 이미지를 남과 소통하는 방법 중에 하나라는 것. 그리고감정과 이미지는음악을 전제로 나와야 한다는 것. 감정과 이미지는 음악가가자신의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해놓은 것을 듣고 재해석된 결과라는 것. 그렇기에 동작 이전에 음악을 먼저 즐기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결국 춤이란 음악이란 상황 속에서 내가 사용하는 언어와 같다는 것. 실제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팝핑 댄서 중 하나인 Poppin J를 보고 있으면 마치 Funk와 Popping이 모국어인 원어민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팝핀 제이님. 역시 멋있으시다.
본질에 집중하면서 나는(프로댄서는 아니지만)연습에 도입할 수 있는 많은 키워드를 얻었다. 음악을 듣고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감정에 집중하여 자신 동작 하나하나에 그것들을 녹이는 연습. 음악이 전해주는 감정의 에너지가 공간에 녹아있다 생각하고 에너지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특정 인물 형태(예를들면 개구쟁이, 웨이터, 노인)에 감정을 이입해보는 것. 몸으로 음악을 연주한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연습해 보는 것. 다양한 방법으로 연습하면서 이제야 조금씩 춤을 잘 추는 방법을 이해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춤을 잘 춘다는 것은 마치 (0,1) 사이에서 유리수 점을 찍는 것과 같다. 분명 무한개의 유리수 점이 있지만, 유리수의 규칙을 모른다면 무리수 점을 찍을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분명 '춤을 잘 춘다'의 한 가지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춤을 잘 추는 것은 아니다. 무한한 가능성과 경우의 수가 있지만 생각보다 '춤을 잘 춘다'에는 훨씬 강한 rule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타까운 점은 이 rule은 말로써는 표현하기가 너무 어려워 나에게 전달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조금 답답하겠지만 여러 가지 방법과 시도로 다양한 유리수 점을 찍어가 보는 것. 그러면서도 그 사이에 있는 규칙에 대해서 조금조금씩 알아나가는 방법이 가장 좋기 때문에 많은 프로댄서들이 이러한 방법을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 무언갈 잘하기 위해서 들여야 하는 노력은 한도 끝도 없다. 단순히 열심히, 묵묵히 해내면 된다거나 글로써, 대화로써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결국 언제나 내가 흘린 땀과 고민을 필요로 한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져 있는 나는 누군가가 던져주는 것을 해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학원에서 내주는 시험이라던가, 과제 같은 것만 열심히 해도 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 물론 마냥 수동적으로 공부한 것은 아니다. 열정과 욕심으로 공부했었고,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방법론적인 고민이나 '공부란 무엇일까'라는 철학적인 사유를 안 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나의 강점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더 공부를 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춤을 대하는 예술가들을 보면 나는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좋아하는 것을 잘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보며, 언제나 스스로를 반성하고 펜을 잡고 공부하는 물리 책 위에서도 그들에게 받은 영감을 시도해본다. 놀랍게도 (물리 역시 예술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들의 방식에서 착안한 접근은 언제나 나에게 새로운 insight를 선물해준다. 처음에는 분명 가벼운 마음과 취미로 시작한 춤이었다. 하지만 난 팝핑을 연습하며 춤보다는 진정 잘하고 싶은 것에 가장 노력하는 방법을 제일 많이 배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