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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f Feb 21. 2021

우리도 이제 한계예요

제발 이번 고비가 잘 넘어가기를

"그래도 밑에 애들 많이 힘들어하는데, 잘못하면 무너질 거 같아서... 잘 이겨내야죠 뭐"


저녁 불을 끄고 잠깐 나눈 이야기. 맞후임의 목소리에는 단단했지만, 씻을 수 없는 씁쓸함이 묻어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단 군대 내 사건뿐만이 아닌, 개인적으로 우울하거나 마음 쓰이는 일들을 최근 많이 겪은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이제는 '선임 라인'이기에, 가족 내에서도 지지대 역할이기에 힘듦을 애써 외면하느라 툭 튀어나온 담담함이 오히려 더 애처로워 보였다.


코로나 19로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겠지만, 뻔뻔하게 군인이 그중 제일이다라고 말하고만 싶다. 특히 공군을 온 병사들은 박탈감이 심하다. 육군보다 3개월 복무기간이 길면서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 까닭은 비교적 좋은 퀄리티의 부대 내 복지 시설도 있겠지만 역시 공군의 많은 휴가와 외출, 면회 시스템일 것이다. 이제는 전역해버린 선임들의 이야기를 듣자 하니, 외출로 잠깐 사회의 공기도 마실 겸 맛있는 것만 먹고 와도 크게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하였다. 하지만 외출과 면회는커녕, 부대 내 복지 시설 역시 제한된 부대들이 많고 휴가도 부분적으로만 허용되고 있다.


코로나 통제로 인해 한번에 나갈 수 있는 인원이 정해져 있다는 점, 휴가 실시한 인원은 복귀 후 격리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 맞물려 지금의 휴가 정책은 크루 근무자들에게 많은 부담이 된다. 예를 들어 부대원이 5명이라고 했을 때, 한 명이 휴가를 나갔다 오면 정작 휴가 기간은 1주일이더라도 휴가 시행 병사는 1주일 만을 자리 비우는 것이 아니다. 2주나 3주, 길게는 한 달까지도 자리를 비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병사 TO자체가 정상적인 휴가 시행을 고려하여 배정된 것이기에, 배정된 5명 중 기껏해야 1명, 2명 정도만 자리를 비울 수 있고 그렇기에 휴가 로테이션이 많이 느려진다. 기존에는 1주일 로테이션으로 이뤄지던 일들이 2주나 3주로 이뤄지는 현재, 이미 코로나로 휴가가 많이 쌓여 미복귀 전역하는 장병들로 인한 '유령 TO'까지 생각한다면 휴가는 사실 풀렸다고 말하기에는 어패가 있다. 공군에 특히 많은 크루 근무자들에게는 지금의 휴가 정책은 답답하고 막막하기만 하다.


휴가는 현재 장기 미실시 자보다도 신병을 먼저 배려해주고 있으며, 그렇기에 신병이 들어온다면 어쩔 수 없이 휴가 순번이 밀리게 된다. 그래서 많은 상병, 병장 라인들이 휴가 순번이 밀리고 있다. 지금 나 같은 경우에도 기존에는 5주에 1번 정도 휴가를 나갈 수 있었는데, 이번 사태로 다음 휴가는 예상컨대 6월에서 7월일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갔다 온 것이 작년 10월임을 감안하면, 공군 지원 이유가 많이 퇴색되었다고 느껴지기만 한다. 신병이 먼저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큰 불만이 없는 것이 최근 코로나 우울증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신병이 있었기 때문이다.(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온다는 점 밝히고 갑니다.)


이제는 한계이다. 후임들은 무슨 회사원의 사직서처럼 마음 한 곳에 극단적 생각이 피어오른다고 이야기하고 있고, 그렇다고 코로나 19 확진자 수를 보면 이번 고비가 쉽게 끝날 것까지는 않다. 그나마 군대 내 핸드폰 보급이 되어있어서 다행이라고만 느껴지는 요즘, 내 후임들과 부대원들이 이번 고비를 잘만 넘겨준다면 얼마든지 내 휴가를 반납할 생각이 있다. 사실 애인과 헤어짐 이후 휴가가 크게 의미 없어진 것도 한 몫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 그냥 직접적으로 밝히겠다. 근처에 군인인 사람들이 있으면 따뜻한 위로의 카톡 하나라도 보내줬으면 너무 고마울 것 같다. 워낙 폐쇄적 집단이기에 겉으로 잘 표출이 안되지, 병사뿐만이 아닌 많은 부사관, 장교분들도 상상 이상의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거리두기 잘해달라, 방역수칙 잘 지켜달라 이런 말은 허울뿐이어서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으니, 그냥 오랜만에 안부도 물을 겸 따뜻한 카톡 하나 보내준다면 지금 이 글을 쓴 게 꽤나 뿌듯할 것 같다.


오늘은 군인 분들에게 따뜻한 카톡 하나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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