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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f Feb 25. 2021

회색이 이끈 글

비유적으로 묘사하기

회색 벽. 회색 창문. 회색 키보드. 회색 바닥.

회색으로 둘러싸여 있다. 갈색 책상을 제외하곤 대부분 무채색이니깐 할 수 있는 말이다.

무채색이라 하면 흰색과 검은색 닫힌 구간 안에 임의의 한 점이란 뜻이다. 희거나, 검거나 아님 애매모호한 그 사이 어딘가던가. 완벽한 원은 상상 속에나 있는 것처럼, 흰색이나 검은색 따위는 없기에, 흰색과 검은색은 그저 밝은 회색, 어두운 회색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기계 작동 소리가 회색 방을 채운다. 회전과 진동의 소리가 거슬리지만, 곧 배경에 녹아 의식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마저 집중한다. 회색도 처음에는 검다 말할 만큼 검거나 희다 말할 만큼 희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다른 회색을 만나고 본인의 존재성을 잃어버린다. 옅어지는 뚜렷함만큼 짙어진 회색은 다른 회색과 만나며 자신의 몸짓을 키워나갈 것이다. 그렇게 하나둘씩 모인 결과가 내가 마주한 회색 세상 아닐까.


알게 모르게 꽉 찬 배경을 가진 무인(無人)의 공간에선 일부러 소리를 내어 숨을 쉬고자 하는 충동이 든다. 입으로 굳이 숨을 쉰다거나, 짧게 코로 숨을 내뱉는다거나, 숨을 참다 한숨을 내쉰다거나. 회색뿐인 공간에 파동을 만들고 균열을 만들고 그것들이 다시 회색으로 녹아들어 가는 걸 보는 것이 재밌어 자꾸 장난을 쳐본다. 내뱉어진 흰색 한숨이 생명력을 잃고 회색이 되는 걸 보고 있노라면, 나도 어느 순간엔 활기를 잃고 공간에 녹아버리진 않을까 망상한다.


언젠간 잃을 흰색과 검은색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기록하는 것이다. 하얀 종이에 어떤 회색이 묻어도, 백지가 하얗다는 것을 아는 까닭은 우리가 하얗던 과거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희고 거멓던 순간들을 기록하고 기억하지 않으면 우리 삶이 회색일 뿐이라는 회의적 결론에 도달하고 말 것이다. 쓰자. 또, 읽자. 분명 내 삶도 희고 검었으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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