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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f Apr 29. 2021

처음으로 '내 생각'으로 산 주식

벌써부터 500원 떨어졌네

시작부터 난 이과였다. 언제나 소설보다는 가설에 더 흥미가 끌렸었기에 문과 과목들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뉴스를 챙겨본 적도, 기사를 찾아 읽어본 적도 없었다. 주식을 시작하리라 마음먹기 전까지는 말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란 명언을 제일 싫어하며, 시사나 경제 용어를 모르면 무식하다 손가락질하는 세상은 불공평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자존심과 자부심은 돈을 벌어주진 못한다. 가뜩이나 돈 안 되는 '물리'하고 살 거면 그래도 있는 돈이라도 잘 굴려야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실은, 주식으로 성공한 다음 물리를 하든, 여행을 다니든 누구보다 솔직하게 사는 삶을 꿈꿔보니 더 강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여기저기서 주식 대박 이야기가 들린다. 이상한 잡주 들고 있지 말고, 든든한 우량주 들고 존버 하면 무조건 번다는 말도 있고, 차트 분석만 제대로 해도 매도와 매수 타이밍을 알 수 있다는 책들도 많다. 하지만 설마 시장이 그렇게 호락호락할까. 차근차근 공부하며 투자하면 벌 거라는 무근본 희망으로 무작정 검색부터 해본다. 하지만 글을 이해하긴 커녕 용어 하나하나가 고비다. 증권, 채권, 금리 등 국어 비문학에서나 볼 것 같은 단어들이 쏟아진다. 경제 뉴스나 시장분석글 역시 초보자가 읽긴 너무 전문적이다. 그래서 '주린이'란 키워드로 유튜브, 책, 몇몇 게시물들을 보며 공부를 시작했다. 책도 벌써 두 권이나 샀고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 중이다.


처음에는 주식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엔 주식의 실질적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남이 인정해주는 가치가 있을 뿐, 매도하기 전까지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것이 어떻게 돈을 벌어다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예를 들자면 스마트폰이나 자동차는 가치와 대응되는 객관적 특성(편리성)이 있지만, 주식은 '나중에 다시 팔 때' 가치가 있냐 없냐로 가격이 결정된다. 그걸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0원에 사도 아무런 이익이 없다는 생각에 개념이 헷갈렸었던 것 같다.


모든 사회과학이 물론 다 그렇겠지만, 경제 특히 주식에서도 너무 많은 해석과 예측이 존재한다. 지지선을 찍었으니 다시 올라온다, 내려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등등 서로 상반되는 해석이 너무 많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갈팡질팡하게 된다. 누구 말이 맞는지, 틀린지도 정확히 분간할 능력이 없으니 공부를 시작하는 것조차 어렵다. 이럴 땐 이과 과목들은 참 쉬운 것 같다. 유명한 도서 하나 잡고 공부하면 되니깐 말이다. 


주식으로 나름 재미 좀 본 어머니는 아들의 주식 시작 소식을 반가워하신다. 언제나 가족 내 남자 셋이서 물리만 주구장창 밥상머리에서 잡고 있으면 "도대체 밥 먹고 그런 소리를 왜 해? 밥이 아깝다."라며 어머니께서 핀잔을 주시곤 했다. 형과 나는 그러면 학원, 성적 이야기를 하느냐고 반문하며 마저 하던 이야기를 이어가곤 했다. 어머니께서 반가우신 이유는 드디어 아들과 같은 관심사로 대홧거리가 생겨서라고 생각하니 괜히 불효자가 된 것 같아 마음이 찜찜했다. 어머니는 스윽 주식 판을 보시더니, 돈이 없는 내가 살만한 건 대한항공이라며 일단 한번 사보라고 하셨다. 그다음 날에는 동전주를 하나 캡처하시더니 장난 삼아 100주 정도만 사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산 두 개의 주식은 어째서인지 잘 들여다보지 않게 되었다. 뭐 조금 잃어도 한번 BX에서 아이스크림 안 먹고 말지란 생각이 있어서였을까.


하지만 이번에 산 주식은 달랐다. 물론 앞선 주식들에 비해 조금은 비싼 8만원대에 형성된 주식이었지만 사고 난 직후부터 주가가 궁금해서 근무하면서 혼났다. 비록 1주지만 단타는커녕 5년 이상을 바라보고 산 주였는데도 초조해하는 자신이 신기했다. 앞서 산 주식들과의 차이는 단 하나였다. 


이번에 산 주식은 오로지 내 판단과 내 생각으로 구매를 결정했다. 가격이 떨어져도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 것이고, 가격이 올라도 열매는 나의 것이었다. 부대 내에서 주식으로 꽤 돈을 번 사람과 근무하면서 주식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나보다 나이도 많았고 무엇보다 경제학과 출신인 그 사람에게 주식 공부하면서 궁금하던걸 물어봤었다. "결국은 '좋은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귀결되는데, 좋은 기업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2시간 정도 가르침(?)을 들었을까. 그 모든 걸 요약하자면 '마치 기업 경영인이 되었다 생각해라.'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이 뻔한(?) 이야기는 예전에도 들었었지만, 그전까지는 '그저 기업에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라'정도로만 받아들였다. 하지만 애정의 수준을 넘어서, 현 사회 상황이 어떻게 매출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많이 고민하며 과연 어떤 세상이 우리에게 찾아올 것인지를 예측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내가 추구하던 내 모습이었다. 주식을 시작할 때부터 돈은 '물론'이고 사회와 경제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너무 어렵기만 한 용어들과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맹목에 잠시 까먹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번 주식은 아침에 뉴스를 보고, 나름대로 판단을 해서 주식을 사게 됐다.

판교에 한국 실리콘 밸리 비슷한 게 열린다더라 → 초기 기업들이니 알고리즘, 빅데이터로 장난치겠네 → 그래 빅데이터는 어차피 무궁무진하니깐 빅데이터 주를 사야지 → 이 회사(더존비즈온)는 코스피에 있을 만큼 우량주고 내가 생각하는 빅데이터의 가능성을 제대로 활용하는 회사구나 → 차트나 지수상으로도 지금 저평가되어있으니깐 지금 사야지!

라는 고민과 판단 끝에 사게 되었다. 물론 기껏해야 2시간 남짓한 고민의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처음 판단한 것치고는 나름 뿌듯했다. 물론 지금은 '에이 오르겠지(달달달)'하고 있는 상태지만 말이다.


그저 어떤 주식을 산다고 해서, 주식판을 관심 있게 쳐다보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오르든 말든 하며 산 주식이라면 별로 쳐다보지 않게 된다. 그렇기에 누군가 나에게 처음으로 산 주식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물론 대한항공이지만, 사실 더존비즈온이야."라 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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