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집' 생각나는 아침
라면은 점심, 저녁, 야식 모두와 어울리지만 어째서 아침과만은 거리가 있다. 그건 '부지런함'과 '게으름'이 각각 아침과 라면의 키워드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침 메뉴라고 하면 간단하면서도 알차야 한다 생각한다. 아침 하면 보통 빵, 수프, 우유나 간단한 국과 밥, 그리고 밑반찬으로 이루어진 식탁이 상상된다. 영양적으로도, 조리방법으로도 간단하지만 알찬 음식들 말이다.
하지만 그건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에게 있어서 아침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보다도 '맛'이다. 특히 짠맛. 고등학생 때 아침을 먹는 습관이 성적에 중요하다는 말을 듣고, 어머니와 나 모두 아침 먹기에 도전했었다. 하지만 둘 모두에게 아침은 너무 바쁘기만 한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일하시는 약사셨고, 7시 반까지 등교해야 했던 나는 전날 12시나 1시 즈음이 돼서야 독서실을 나오곤 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집안 구성원들의 아침까지도 모두 책임지셨기에 너무 바쁘셨고, 유튜브를 기어코 보고 자던 나는 언제나 밥 한 숟갈보다는 잠 10분이 훨씬 중요했었다. 어머니는 그래도 아들을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아침을 해주셨고 맛있는 밥상이었지만 입맛은 정성과 별개의 일이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먹는 쌀밥은 마치 모래알 같아 씹을 때마다 밥알이 이를 피해 돌아다녔고, 맛보다는 까끌 텁텁한 식감이 느껴져 어색했었다. 김, 스팸, 소시지처럼 입맛을 돋우는 반찬들이 없으면 얼렁뚱땅 몇 숟갈 뜨고 밥을 남긴 채 학교까지 태워달라고 부탁했었다.
우리 가족에게 '아침'은 부지런한 사람이 되겠다는 작심삼일 같은 것이었다. 꽤나 많이 도전하고 연구했었지만 일주일 이상 아침 먹은 적은 없다. 시간이 여유로운 주말엔 가족 모두 10시, 11시는 돼서야 일어나곤 했고 아점(brunch)이 늘 우리의 첫 식사였다. 이제 와 되돌아보면 강한 정신력만이 다짐을 이룰 수 있다는 착각이 실패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 정신력은 곧게 뻗은 대나무와 같아 하늘 위로 솟아오르겠지만, 한번 부러지면 다시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의지로부터 파생된 연습과 시행착오가 더 중요하다. 아침 시간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싶다면, 어떻게든 일어나겠다는 강한 의지보다는 졸음을 이기는 연습, 전날 저녁 폰을 내려놓는 연습, 무엇보다 더 자고자 하는 자신을 달래고 일어나는 연습이 선행되어야 한다.
수많은 '아침 연구물_최종' 중 하나는 라면이었다. 어머니께서는 비가 오는 주말이면 혼자 조용히 일어나서 라면을 끓이셨다. 어머니는 물이 조금 많은 한강 라면을 좋아하셨다. 한번 나에게도 소개시켜주셨었는데 짜지 않아 부담스럽진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마지막 혀를 찌르는 조미 맛이 아침에는 그럭저럭 괜찮았었다. 무엇보다 아침에 라면을 먹는다는 시덥지 않은 일탈감이 재밌었다. 평소와는 다른 하루를 맞이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라면보다도 나에게 힘을 줬었다. 그렇게 무기력하고 입맛 없던 오늘 아침, 해가 뜰 때쯤에 라면 먹던 기억이 떠올랐다. 군대 와서 하루에 평균적으로 1.5개씩 먹는 컵라면이었지만, 아침에 먹었던 적은 없었다. 물을 버리고 먹는 비빔 형식이어서 그런지 생각 외로 엄청 짜고 자극적이어서 혼났다. 소스를 조금만 넣을 걸 그랬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