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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f Apr 11. 2021

2. 제 눈에는 안 보이지 말입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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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 : 목표물을 명확하게 식별할 수 있는 최대 거리.

예를 들어 집 베란다를 열고 밖에를 봤더니, 저 멀리 산까지 보인다면 시정이 좋은 날이고, 바로 앞 아파트도 희미하다면 시정이 안 좋은 날이다. 전투기 착륙은 물론 운행에 있어서 구름만큼이나 중요한 지표이기에, 기상관측병의 주요 업무 두 번째라고 할 수 있다.

자다 일어나서 봐도 7 mile(시정 최곳값)

시정은 가장 멀리 보이는 사물까지의 거리로 정의된다. 자세한 예시는 군사보안에 해당하기에 말할 순 없지만, 가령 부대를 중심으로 식별 가능한 지점 중 그날 가장 멀리 보이는 것까지의 거리가 4 mile이라면 시정은 4 mile이 되는 것이다. 보통 식별 가능한 지점들을 우린 '시정 포인트'라고 부르고, 산, 강, 들과 같은 자연물에서부터 다리, 건물, 도로와 같은 인공물까지 다양하다. 단, 정면, 북단처럼 나눠서 부르기도 하며, 이런 경우 우시정이라 하여 대푯값 역시 같이 불러줘야 한다. 보통 중간값을 우시정으로 부른다.


'보인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주관적이다. 관측자들마다 기준도 제각각이고, 같은 관측자여도 날씨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기준이 바뀌곤 한다. 보통 시정이 점점 좋아지는 날이면, 시정을 현황보다 조금 높여(긍정적으로) 부른다. 어차피 곧 시정의 최댓값인 7 mile 찍을 건데, 굳이 6 mile을 그대로 부르지는 않는다. 그래도 6 mile을 7 mile이라 할 수 없으니 보통 이렇게 말한다.

"필승! (계급) (이름)입니다. 지금 시정 흐릿한 7 mile 내지는 6 mile 나오고 있습니다. 시정이 점차 좋아짐에 따라 곧 7 mile 될 것 같습니다."


악시정에선 시정 변화에 모두가 예민하다. 그렇기에 전자기 유도 법칙처럼, 변화량을 줄여 지원하곤 한다. 예를 들어 5분 만에 남단 시정이 1 mile에서 1/2 mile 정도로 급하락 했다면

"필승! (계급) (이름)입니다. 지금 남단 시정이 3/4 mile 정도로 아까에 비해 떨어졌습니다. 곧 1/2 mile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사실 더 나아가, 1/4 mile에서 1/2 mile로 올라갈 때 부르는 "1/2 mile 시정 기준"과 1 mile에서 1/2 mile로 내려갈 때 부르는 "1/2 mile 시정 기준"은  차이가 있다.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관측반과 우리가 주로 지원하는 예보반, 두 부서의 업무 사이 미묘한 관계 때문이지만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다.


아주 희미하게 보이는 물체는 교본 상으로는 보이는 물체이다. 깜깜한 밤, 안경을 책상 위에 올려놨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더 금방 찾는 것처럼 시정 포인트들의 위치를 이미 다 파악한 관측자가 당연히 일반인보다 훨씬 더 먼 포인트까지 볼 수 있다. 또, 한 곳에 딱 자리 잡고 숨을 고른 채 원하는(?) 곳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안 보이던 포인트가 보일 때도 많다. 그렇게 보인 시정 포인트가 4 mile이라면  "교본 상으로는" 시정이 4 mile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부르면, 실상과 괴리가 심하다. 특히 그렇게 내 눈에 보인 게 실상인지 머리가 만들어낸 허상인지 구분도 힘들다. 가끔 악시정에 나가 시정 관측을 하다 보면, 내 눈에 보이는 저 윤곽이, 진짜 보여서 보이는 건지 아니면 그곳에  있다는 걸 확신하는 내 뇌가 만들어낸 환상인지 아리까리할 때가 많다. 그렇기에 나에게 '보인다'의 기준은 '모르는 사람이 봐도'란 말이 앞에 숨겨져 있다. 관측자 중에서는 조금 깐깐한 편이다.


날씨는 물론 상황에 따라서 기준이 달라질 때가 있다 했는데, 그중 하나가 관측자들이 서로 교대할 때이다. 전 근무자가 3 mile로 불러놓은 시정 상황을 내가 4 mile이라고 생각하더라도 교대하자마자 4 mile을 부르진 않는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난 그렇다. 그렇게 4 mile을 부른다고 해서 시정이 더 좋아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서로의 '기준'이 달랐을 뿐인데, 내가 4 mile로 지원한다면 예보반은 '시정이 좋아졌다'라는 오해를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난 보통 절대적 시정 값보다는 시정 값의 변화(좋아지는지, 나빠지는지)에 집중하여 지원을 한다. 예컨대, 3 mile로 부르던 상황보다 더 좋아졌다면 4 mile을 부른다는 식으로 말이다.


시정 역시 하늘 상태처럼 휙휙 바뀐다. 예보를 자세히 알고 있다면 그 시간대를 예상할 수 있고, 그때만 3~5분에 한번 정도로 바쁘게만 일하면 충분히 잘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병사가 예보를 안다면 얼마나 잘 알겠는가? 예보는 대부분 간부의 업무이며, 병사는 이에 대해서 배우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가한 시간(비행이 다 끝난 주말 오후)에 한가히 관측하다 급락한 시정 보며 당황할 때가 더러 있다. "아니..? 이게 뭐야? 왜 안 보여?" 그러면 이제 마음속 천사와 악마가 싸운다.


천사 측 : 지금 말해야 해. 그냥 조금 혼나면 되지, 이거 놔두다가 다른 데서 먼저 발견하고 전화 오면 큰일 난다 아주.
악마 측 : 음.. 20분 뒤에 정시 관측(정시마다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관측) 때 부르는 건 어때? 나빠지긴 했지만, 작전상 중요한 시정도 아니고, 무엇보다 밤인데... 그냥 조금조금씩 낮춰 부르자. 귀찮아~


당연히 FM은 천사다. 천사처럼 해야 한다. 특히나 작전 상으로 중요한 악시정이라면 무조건 말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악마 측이 훨씬 설득력 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내가 근무를 제대로 서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일시적인 시정 저하인 경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보 맹신 주의자는 아니지만, 예보에도 안 나올 정도면, 국지적인 시정 악화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단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괜히 낮추면서 귀찮은 거 다 했는데 별일 없이 다시 회복하면 좀 그렇지 않은가. 아이가 열이 좀 나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에 새벽에 응급실 갔는데 가서 재니깐 37.4도 인 느낌이랄까?


시정은 주관적이고, 모두가 휙휙 바뀌는 걸 알다 보니 변명이 너무 쉽다는 장점 아닌 장점이 있다.

"지금 현 1) 남단, 정면, 북단 시정은 3, 4, 흐릿한 3.5 mile정도로 우시정 3.5 mile 나오고 있습니다. 2) 지금 정면, 북단도 그렇지만 특히 남단이 아까보다 많이 안 좋아졌습니다. 지금 시정 A 포인트가 보이긴 하는데, 3) 윗부분만 보이고 아랫부분은 보이지 않아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시정이 4) 전반적으로 빨리 악화되고 있습니다."

식의 말에서 꾸며낼 수 있는 부분들(1~4 항목)이 너무 많기에 그렇다. 대부분이 주관적인 잣대로 이루어지는 말이고, 딱 골라 무엇하나 집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원래 부르던 시정이 4 mile이었는데 3 mile로 떨어졌다고 해도, 북단 시정을 3 mile에서 3.5 mile정도만 올려 부르면 우시정은 3.5 mile이 된다. 그렇기에 지금은 전역한 선임 중에서는 전혀 관측을 하지 않고도 술술 지원하던 사람도 있었다.


거짓으로 지어내는 사람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적어도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깐. 보통 병사가 군생활에 큰 뜻이 없는 경우도 많고 말년쯤에는 틀린 걸 알면서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원칙적으론 병 사이에는 명령을 할 수 없다는 조항만 봐도 그렇다. 그러니깐 병장이 이등병한테 청소를 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경우가 많지 않은가? 물론 우리 부대는 (포장이 아니라 진짜로) 그런 경우가 없어도 너무 없다.


내 기준, 더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은, 일관성 없이 온갖 주관적인 부분들을 마음대로 정해버리곤 실제가 그렇다고 믿어버리는 사람들이다. 차라리 어떤 의도를 가지고, 예컨대 상부의 지시라든가, 곧 다가올 예보를 의식한 움직이라든가, 그렇게 주장하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오랜 경험을 통해 효율적인 일처리를 할 수도 있고, 중간자의 어쩔 수 없는 입장이란 게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들은 일관적이지 못하게, 당시에 내키는 설명과 기준을 근거로 정을 결정한다.

 

그저 자신의 답을 가장 뒷받침하는 설명만 고르고 검증하지 않는 그들은 어쩌면 불완전한 환경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과학에서도 그렇고, 교육에서도 그렇겠지만, 적절한 피드백이 있어야만 가설을 바꾸든 행동을 바꾸든 할 수 있다. 하지만 관측에 있어서 피드백은 '간부의 꾸지람'말고는 없다. 관측자들은 혼자서 근무하기에 서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도 없을뿐더러, 시정의 시작부터 주관성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정확한 값보다는 자신감 있는 태도가 훨씬 꾸지람을 덜 듣고, 그렇기에 관측자들은 자신의 관측값에 자신감을 가지는 방법만 익히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할 근거만 찾게 되고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다. 서로 상반되는 근무  규칙에 있어서 의문을 품는 대신, 자의적으로 선택하여 자신의 주장을 강화한다. 국 예보반이 원하는 결괏값에 어떻게든 도달하고, 설명만 잘 해내면 '좋은 관측자'로 인정받는다. 이 공간에서 자신이 틀렸다는 의심은 무덤만 팔 뿐이다.


피드백이 부족한 공간에서 형성된 가치 체계 중 일부는 헛소리가 되겠지만, 일부는 지혜(군대에서는 '짬')가 된다. 주위에 에코(레이더에 나타나는 예상 강수)가 하나도 없어도 구름이 두꺼우면 비가 내릴 수 있다는 주임원사님의 말은 처음엔 내가 열심히 관측하기를 바래서만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았다. 하지만 관측 도중 결재판에 빗방울이 찍히는 것을 보면서 '역시 짬은 짬이구나' 생각했었다. 군생활 오래 하신 분들의 사고 과정을 보다 보면 '도약'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중간과정은 애초에 생략된 매우 비과학적인 도약 말이다. 그저 성큼성큼, 방법이 합리적이든 아니든 기가 막히게 자리를 찾아가는 도약을 가진 그들이 신기했다. 저런 지혜가 생길만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맞든 틀리든 수많은 시간과 사건을 통해서 형성된 짬이란 걸 알았다. 군대 밥의 은어인 짬처럼 맛있든 맛없든 그저 하루하루 먹다보면 차는 것이었다. 최상의 방법으로 형성됐다기보다는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틀릴까 봐 아무런 설명도 못한 채 우물쭈물하느라 시정 변화를 예상 못하는 것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이 아님을 말이다. 그저 누군가의 비판을 받을 용기가 없었던 것일 뿐이었지, "No."만을 말하는 것이 과학은 아니었다. 물론 개똥가설을 세워가면서 나름의 개똥철학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더더욱 과학은 아니지만 말이다. 결국 나도 그만 물리 텃세를 부리고 걸어가야 할 길이었다. 그래야만, 직관들이 생기고, 예보와 과학이 말해주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저 과학적이게 해결하기엔 시정은 너무 불명확하고 복잡한 세상이었다. 명확하다는 기준마저도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만큼 주관적이었다. 물론 몇몇 정형적인 상황도 있었지만, 어떤 변수가 생길지도 몰랐고, 보는 사람마다 머릿속 정답은 제각각이었다.


"과학은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은 좌절됐지만 마냥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럼에도 설명할 방법이 있다는  옥상에서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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