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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f Mar 22. 2021

기상관측병의 A to Z, 구름

구름 같은 사람을 꿈꾸며

파란 하늘 파란 하늘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
아기 염소 여럿이
풀을 뜯고 놀아요,
해처럼 밝은 얼굴로.

"야, 1시간에 1번 하늘 보고, 구름 얼마나 있는지만 쓰면 된다니깐? 꿀도 이런 꿀이 없다."


자랑 섞인 친구의 추천에 오랜 고민을 끝낼 수 있었다. 전문연 말고, 그중에서도 의경이나 육군 말고 굳이 공군을 신청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2년의 치이듯 달려온 대학생활을 잠시 내려놓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어차피 치워야 할 군 문제라면 땅 보며 삽질하는 것보다는 팔자 좋게 하늘 보는 게 낫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많은 휴가와 잦은 외출, 도심지와 가까운 자대를 성적에 따라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메리트는 덤으로 공군을 더 매력적으로 해주었지만, 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의미가 없어져 참 아쉬울 따름이다.


구름 하면 여러 이미지들이 떠오르지만, 그중 제일은 하얗고 몽글몽글한 구름이다. 어렸을 때 비행기 창밖으로 가득히 깔린 구름은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했었다. 솜사탕을 연상시키는 비주얼에 손으로 만지고 싶다는 생각은 전 세계 어린이 모두 해봤을 것이다. 그렇게 커다란 것이 공중에 떠 저리 유유히 하늘을 누비고 다닌다니. 이제는 구름이 하늘을 뜰 수 있는 이유 정돈 아는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까진 하늘 속 구름을 보며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곤 한다. 우아하고, 느긋하게. 하얀 고래와도 같은 구름이지만 다 제각각인 모양 때문에 보고 있으면 시간이 어느새 훌쩍 지나가 있곤 한다. 그들이 풍기는 한적함과 신비로움에 흠뻑 젖을 즈음이면 새삼 내가 얼마나 작은지 놀라게 된다. 넋 놓고 고개 들어 바라보아도 그런 무상함에 취할 수 있다니 참 근사하지 않은가.

기상 관측병의 주된 업무는 항공기상관측 중에서도 구름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하늘 상태에는 전체 운량(구름양), 운고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구름 층이 어느 높이에 형성되어있는가이다. 이를 실링(ceiling)이라 부르며, 실링의 높이는 전투기 착륙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기에 작전 수행 여부를 결정할 때 중요한 지표가 된다. 이는 안개가 가득한 고속도로에서 전방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것처럼, 너무 낮은 높이에 실링층이 형성되면, 전투기 착륙 시 지면 확인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기상 관측병의 업무는 실링과 같이 작전 수행에 있어 중요한 기상상황을 즉각적으로 확인하여 적재적소에 필요한 지원해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신병 때는 숙련된 선임들과 같이 근무(복근무)를 서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하늘을 마주한다. 특기학교에서 이론으로 배우면서도, 실제로 업무 들어가면 어렵겠다 짐작하긴 했었다만 정작 하늘을 마주하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우선 너무 넓다. 몸과 고개를 두서 번 휙휙 돌려가며 관측해야 할 정도로 '넓다'를 넘어 '광활하다'. 도심 속에서는 키 쟁이 빌딩들이 하늘을 가려주어 느끼지 못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넓지만 또 어쩜 그리 다른지. 서쪽, 동쪽, 북쪽, 남쪽 제각기 다른 하늘 상태에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아 어버버 하기 일쑤다. 다른 것도 다르지만, 초심자 입장에서 하늘상태는 너무 어렵기만 한 과목이다. 하늘상태는 크게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단층/복층 유무와 각 층의 운량과 운고인데 백 문여 불여일견이니 사진과 함께 간단히 소개하겠다.


지금 왼쪽 그림에서 크게 구름은 두 가지 종류이다. 몽글몽글한 적운과 새털 같은 권운. 적운은 하층운, 권운은 상층운이기에에 하늘은 두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복층임을 알 수 있다. 하층운은 대략 전체의 2/8 정도 있으니 2 옥타(okta, 1 okta는 하늘의 1/8를 일컫는다.)이고 그 뒤로 상층운이 대략 7 옥타 정도 있다. 운고계에 찍히는 운고를 봐야 하겠지만, 대략적으로 하층운은 3000ft, 상층운은 20000ft니깐 지금 하늘 상태는 2 okta 3000, 7 okta 20000이다. 현재 실링층은 20000ft에 형성되어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담으로 저 정도 날씨면 하층운의 운량만 크게 가변적이지 않다면 상당히 좋은(꿀인) 날씨다. 


하늘상태가 어려운 이유는 모두 이 두 가지 요소에서 비롯된다. 먼저 그림처럼 상층운, 하층운들이 '나 높은/낮은 구름이에요~'라고 광고하지 않는 이상 복층 여부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여름처럼 저기압이 발달하여 구름이 많은 시기에는 같은 하층운임에도 복층이 형성되기도 한다. 그럴 때에도 두 하층운을 분리하여 지원해주어야 하는데 구름과 구름 사이가 제법 먼 경우 골치가 아프다. 가까이 있어 서로 포개어져 있으면 모를까 거리가 멀면 포개어지지 않아 어떤 구름이 위층인지 쉽게 판단이 안 서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 운고 파악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신병의 경우 도드라지는데, 실전 경험이 적은 신병 특성상 구름을 봐도 얼마나 높은지 감을 못 잡기 때문이다. 사진에서는 속 편히 하층운이 3000ft이라 했지만, 실제로는 200ft에서부터 6000ft까지 제각각이다. 그렇기에 운고계에 찍힌 데이터와 구름을 직접 비교하며 하늘을 분석해야 한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저 구름이 운고계에 찍힌 3000ft와 5000ft 중 무엇인지, 아니면 3000~5000ft에 걸쳐 넓게 형성된 층에 속해있는 구름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애매한 하늘을 보면 신병의 머리는 구름처럼 새하얘진다. 사실 신병뿐 아니라 나 역시도 500ft에서 2000ft까지는 '낮긴 낮은데...'라는 인상만 받을 뿐 뚜렷이 구별하긴 어렵다. 운고계에 찍히지 않더라도 낮은 하층운이 들어오는 비상(?) 상황에는 즉각적으로 보고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구름의 높이를 어림짐작할 수 있는 능력은 기상 관측병에게 필수적이며 가장 얻기 힘든 능력이다.


물론 이를 대처하는 선조 장병들의 수많은 노하우들이 있다. 그리고 선임과의 복근무는 이런 노하우들을 배울 수 있는 최적의 기회다. 병아리 신병들은 선임들과의 근무를 함께 서며 햇빛, 이동 속도의 차이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하늘상태를 파악하는 기술들을 배워간다. 병사들마다 주로 사용하는 방식들이 다 다르기에, 여러 선임들과 함께 근무를 서며 개개인의 팁을 배워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도 그렇게 배웠었지만, 융통성 따위는 개나 줘버린 물리학과여서 그런지 배우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각 방식들이 과학적인지 아닌지 하나하나 검증하는 것은 물론 나만의 방법을 만들고 싶어 했었다. 그렇게 맑은 날만 되면 옥상으로 나가 근무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열정 아닌 고집으로 말이다.


원 없이 바라보다 보니 내가 구름에게 가졌던 이미지들 중 상당수가 오해였음을 깨달았다. 첫 번째 오해는 구름이 느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동쪽에 있던 것이 10분 만에 서쪽으로 넘어가 있을 만큼 구름은 빠르고, 특히 하층운인 경우는 더더욱 빠르다. 신병 땐 은근히 빠른 구름에 자주 혼이 나곤 했었다. 분명 5분 전만 하더라도 하늘에 구름 몇 점 없었길래 안심하고 있다가, 간부님이 먼저 실링층을 발견하곤 관측 똑바로 안 하냐는 꾸지람도 몇 번 들었었다. 반대로 이제는 단골 변명 소재이기도 하다. "구름이 좀 빠르게 차서, 아까 관측했을 때는 괜찮았었습니다."는 식처럼 말이다. 두 번째 오해는 구름은 다 밖에서 들어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생성되는 구름도 많다. 바람도 없고, 구름도 없는데 시간에 걸쳐 아무것도 없던 하늘에 뭉게뭉게 구름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가장 흔한 예시는 안개 낀 날, 햇빛으로 열을 받은 안개가 떠오르며 하층운을 형성하는 것이다. 조금씩 몸집을 불려 나가며 피어오르는 구름들을 보면 뭔가 구름이 태어나는 것 같고 그래서 기분이 묘하다.


세 번째는 구름의 외형에 관한 것이다. 구름을 잘 알기 전에는 시간이 지나도 구름의 모양은 그대로일 거라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솜사탕마냥 조금 줄어들고, 늘어날 수는 있어도 크게 형태의 변동이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혹시 구름의 모서리를 본 적이 있는가? 모서리를 보면 흰색 가루들처럼 보이는 빙정들이 분주히 뭉쳤다가 흩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 오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미 형성된 구름에서도 끊임없이 생성과 소산의 과정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파란 하늘과 인접한 모서리의 특성상 더욱 잘 관측되는 것일 뿐 구름을 자세히 보면, 흰색 솜사탕들은 시시각각 요동치며 배열이 바뀌는 과정을 경험한다. 수면 아래 백조의 발처럼 여유롭고 우아한 구름 안에는 미처 보이지 못한 치열함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치열함에 처음으로 거대한 구름들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림 같은 풍경으로서가 아닌 동경으로서의 '멋있다' 말이다. 어쩌면 내가 가장 꿈꿔왔던 이미지였기 때문이었을까. 여유롭지만 열심히, 조급해하지 않으며 노력하고 마음을 쓰는 것. 말은 쉽지, 참 어려운 일이다. 어쩌다 마음에 불이 떨어져도, 얼마 안가 사그라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과도한 열정에 오버페이스로 뛴다. 턱끝까지 차오른 숨에 뛸 수 없을 때가 돼서야 무언가를 깨닫는다. 그러곤 인생은 마라톤이라며 여유롭게 하려 하지만 그러다 결국 나태해지고만 자신을 보며 자책하곤 한다. 고전적인 작심삼일 시나리오가 아닐까. 만약 내가 구름으로 태어났다면, 10분도 안가 사라져 버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마라톤 선수는 페이스를 유지하면서도 100m를 17~18초에 돌파할 만큼의 빠른 속도로 2시간을 달린다. 인생 역시 마찬가지여서 소위 잘 나가고 성공한 사람들은 일반인이라면 삼일도 유지하지 못할 만큼의 열정과 노력으로 10년, 20년 달려 나간다. 숨이 턱턱 막힘에도 다음 발을 내딛을 수 있는 건, 이 길의 끝엔 결승선이 있다는 확신과 자신은 그 선을 통과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라 짐작해본다. 건강한 치열함은 성공한 사람들이나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내가 항상 바라보는 저 커다란 구름도 가지고 있었다니. 더군다나 구름은 그렇게 치열하면서도 겉으론 티 하나 없이 저렇게 여유롭다. 노력은 안 하는 것만 같은 이미지가 더 구름을 매력적이게 만든다. 태생이 다른 것만 같은 고귀함과 숨겨진 치열함. 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인물이 너, 구름이었다니.


구름 같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 생각했다. 1분 1초를 허투루 버리지 않을 만큼 치열하지만, 겉으로는 근사하고 여유로운 사람. 광활한 하늘을 누비듯, 세상을 자유롭게 헤처 나갈 수 있는 사람.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며 동심하면 빠지지 않는 주제일만큼 이상적인 사람. 그리고, 땅의 규칙에 구애받지 않는 듯한 신기하고 대단한 사람. 실제 구름은 하염없이 떨어진다고 한다. 하늘에 그저 부웅 떠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떨어지는 중이지만 공기저항 탓에 그 속도가 느리기도 하고 끊임없이 구름을 띄어주는 상승기류가 있기에 하늘에 떠있을 수 있다고 한다. 구름이 되기 위해서 내가 얻어야 할 공기저항과 상승기류는 무엇일까 고민해보며 괜히 하늘 한번 더 쳐다본다.





10편 정도 기상관측병의 업무와 제 생각을 엮은 브런치 북을 쓸려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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