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반 만에 만난 친구의 말이었다. 하긴 허구한 날 인스타에 우울하다, 죽고 싶다 이런 말만 던지는 나였으니깐. 굳이 저렇게 '제 살 파내듯' 힘들어할 이유가 있을까 했을 것이다.걱정은 당연지사 의문 아래 전제되어있는 것이고 말이다.
왜 억울했을까. 분명 난 억울했었다. 질문을 듣자마자상대가 오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아니랬지만, '조금 유난 떠는 것 같은데?'라고만 물어보는 것 같았다. 그런 억울함은 아마 나의 힘듦이 내 나이 또래 군대 간 남성들이라면 겪을 흔한 고통으로 쉬이 설명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 나아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아프고, 더 깊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 결국 그녀 말이 옳았다. 제 살 파내기였다. 나의 힘듦이 자꾸 관심을 못 받자, 나는 자꾸 내 안에 상처를 뜯었다. 어련히 둬도 쓰라린 상처를 자꾸 뜯으며, '봐. 이젠 피나지?', '봐봐. 이젠 덧나서 연고를 발라도 아프잖아'라고 호소 섞인 자랑을 했다.
"난 너네들과 달라"
이 한마디를 위해서 상처는 어느새 처음과 달리 심각해져 있었다.
어쩌면 비련의 남주인공에 심취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힘들면 힘든 것이고, 외로우면 외로운 것이지. 그 감정에 온갖 이유와 설명을 붙이다 보니 점점 상처는 커져갔다. 그렇게 본다면 난 힘들고 싶어서 힘들었던 것 같다.물론 그렇게만 본다면 말이다.
그런데 사실은 말이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단순하다. 아니, 적어도 이론만큼은 단순하다. 제때제때 먹고, 자고, 운동하면서 무언가에 꾸준히 열중한다. 열중하는 일에 성취감을 느끼는 것 역시 중요한데, 명확한 목표를 세워 이룰 때마다 스스로를 칭찬한다. '행복 일기'를 쓴다거나, 거울을 보며 자신은 행복하다며 자기 암시를 하는 것 역시 큰 도움이 된다. 만나면 기분 좋은 친구와 일주일에 1~2번씩 만나고, 하루 정도는 자신에게만 주어진 시간을 갖는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하다면, 영화나 춤같이 자신만의 해소 방법을 통해 해소한다. 이런 행동을 다 하면서, 우울한 사람이 있을까? 난 없다고 본다.
뭐 그렇게 치자면, 공부 잘하는 방법도 단순하지 않겠는가. 개념 익히고, 문제로 확인하고. 틀리면 왜 틀렸는지 고민하고, 맞았다면 비슷한 유형 문제들은 다 맞히리라 한번 더 바라보면 된다. 더 잘하기 위해서 걸으면서도, 밥 먹으면서도 연구하며 그렇게 해서 얻은 영감을 확인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만 하면 된다. 학원이나 인강을 통해 좋은 수업과 좋은 자료를 받고, 그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 열정만 투자하면 된다.
그게 쉬웠다면, 개나 소나 서울대 학생이었겠지. 단순함과 쉬움은 별개의 단어다. 누구나 공부 잘하는 법을 알지만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어렵고, 귀찮기 때문이다. 할 때 고통스럽고, 조금이라도 더 누워있고 싶은 유혹을 이기지 못해서다. 달리 말하면, 그 길이 행복하지 않아서이다.
행복해지는 법도 마찬가지로 어렵고 힘들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내 스스로가 길 끝에 놓여있는 행복이 진짜 행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것이다. '행복 알약'을 먹어 온종일 기분 좋은 사람이 과연 행복한 사람일까. 모든 것이 즐겁고 세상 핑크빛인 사람이 과연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냥 미친 사람이지. 나에게 있어 행복해지는 법은 그런 알약과도 같다. 사람 심리와 기분을 좌지우지하는 호르몬을 모두 과학적으로 연구해서 얻은 결과물과도 같단 말이다.
무엇이 행복이다, 아니다 왈가왈부하려는 게 아니다. 행복해지는 법을 알면서도 속으로 꺼려지는 이유를 말한 것뿐이다. 실제로 나 역시 그런 루틴한 삶과 성취감을 통해 우울한 군생활 중에서도 행복을 느낀 적 있다. 하지만 그런 행복은 마치 자전거와 같아서, 그런 생활이 멈추는 순간 넘어지고 만다.
이젠 넘어지기 싫다. 가만히 있어도 넘어지지 않는 자동차 같고 싶다. 나도 그냥 속 편히 아무것도 안 하면 "삶이 너무 공허하다."란 말보단 "아~ 지루하네."란 말이 먼저 나오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우울함과 무기력감에 쫓겨 톱니바퀴처럼 루틴한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루틴하더라도 내 의지로,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닌, 내 자유의지로 살아가고 싶다. 결국, 매 순간 나로 살아있으면서 예측 불가능한 행복을 맛보고 싶단 말이다.
바라는 건 또 하여튼 더럽게 이상적이지. 그래, 나만 잘난 놈이고, 세상 다른 행복한 사람은 열에 아홉은 거짓된 사람이지. 이제는 그냥, 건강해지고 싶은 것 같다. 화도 나고, 우울하고, 기쁘기도 한 건강한 사람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알약'이 필요한 거겠지. 난 지금 그렇지 못한 사람이니깐 말이다. 먹다 보면 언젠가 건강히 행복한 사람이 돼있겠지알면서도 이게 맞나, 싶다. 이러한 잡념이 멈추는 순간, 난 쭉쭉 나아가겠지. 군대니깐 이런 잡념에 시간 쏟고 멈춰있겠지. 근데 그렇게 해서 나아간다면 그건 자전거일까, 자동차일까. 자전거라면, 그게 진짜 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