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던진 칼에 흘린 핏자국을 보며
미안하고 또 미안해
몰랐었다. 그냥 내가 점점 작고 초라해져서 점점 나를 멀리하는 줄 알았었다. 풀 이야기가 많고, 재밌게 풀 줄 아는 나였지만, 재밌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술자리에서 관계를 주도하던 인싸'는 '징징거리기만 하고 했던 말 또 하는 지루한 사람'이 되어갔다. 나와 오래 만난 사람들 역시 날 '재밌는' 사람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뭐 가끔 술자리 가면 텐션이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겠지.
후배의 빨리 돌린 운동 인스타를 보고 웃기다는 디엠을 보냈다. 그러다 운동을 열심히 한 계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다름 아닌 내가 던진 칼 때문이었다. 카페에서 툭 던진 살쪘다는 내 말에 집에 돌아가 펑펑 울 정도로 상처 받았었고, 그날부터 이를 갈면서 운동했다는 이야기였다. 난 미처 기억하지도 못하는데 그랬다는 말을 들으니 처음은 충격, 두번짼 미안함, 마지막은 두려움이었다.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밥맛 선배가 나였다니. 내가 아랫사람들한테 잘 못해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나 무례한 이야기를 했었다니. 2년 전의 나였지만, 여전히 나였기에 "우리 애가 그럴 리 없어요"라 말하는 학부모가 된 심정이었다. 그리고 펑펑 울었고 그로부터 2년 동안 쉬지 않고 고강도의 운동을 지속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내가 던진 칼이 얼마나 깊숙이 박혔는지 새삼 체감됐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미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웃기게도 나도 남의 지적에 자존심 상해하고 위축되는 사람이다. 팝핀을 처음 시작할 때 선배들의 지적 때문에 힘들었었고, 시험을 망친 후 찡찡거리다가 그 시간에 공부를 하는 게 낫다는 친구의 조언에 화창한 날 내 눈에서만 비 내렸던 적 있다. 언제나 피드백을 받기 전 심호흡을 하며 받았던 사람이고, 전 연애에서도 내 글에 대한 지적을 받아들이지 못해 싸웠던 기억도 있다. 그렇게 당하면서 '난 저러지 말아야지' 다짐했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애써 담담하게 말하는 후배를 보면 볼수록 낯짝이 뜨거워진다. 어떻게 그런 무례한 말을 했지? 아마 그 당시에는 무례하고 상처가 된다는 의심조차 하지 못했던 거겠지. 민감하지 않았기에, 의심하기 전까진 알아차리지도 못했던 거겠지. 그러자 덜컥 두려워졌다.
난 다른 사람에게 아픔을 주지 않을 만큼 예민하지 않다. 내가 던졌던 실수를 통해 '생각 필터'를 업데이트를 할 순 있겠지만, 언제나 그런 필터를 킬 수 없기에 둔감한 것이다. 또, 어찌나 눈치가 없는지, 남이 말해주기 전까진 내가 던진 말이 칼인지 돌인지도 모른다. 나보단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지혜도 없었던 나는 그렇게 숱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 주고 칼춤을 추며 살았겠지. 이기적 이게도,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밉게 보였을까 생각이 그들의 아픔에 대한 공감보다 먼저 떠오른다.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지. 이젠 더 이상 배워가는 20, 21살이 아닌 지금, 내 말실수는 점점 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간다. 어쭙잖은 변명은 나무토막 사이 테이프처럼 걸리적거리기만 할 뿐이다. 아직 내 말속 가시들을 다 발라내지 못했는데. 난 내가 모르는 가시들로 사람들을 찌를 거고, 그들은 아파하며 나를 돌아설 거란 생각에 너무 두렵다. 그래 마지막까지도 결국 '나'로 돌아오는 나는 너무 나쁜 사람이라니깐?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체적 예시를 듣지 않으면 그려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들리지도 않고, 이 글을 보지도 않겠지만 정말 미안해. 오늘 밤은 미안하단 생각하며 잠에 들려고. 카카오톡 선물이라도 하고 싶은데 사실 고민 중이야. 운동을 열심히 하는 너에게 치킨 교환권을 준다면 너를 약 올리는 것일까? 그렇다고 샐러드 교환권을 준다면 더 너에게 외적인 압박을 가하는 것 아닐까?하고 말이야. 센스 있는 선배가 아니어서 미안하고, 무엇보다 그 날 내가 너에게 준 상처는 어떤 말로도 치유해줄 수 없다는 게 미안하네. 그리고 그걸 딛고 일어선 널 보면 참 멋있다. 미안해, 용서는 양심적으로 바라지 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