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부대원들에게 짧은 격려를 들으며 상번(출근)을 준비한다. 자전거를 타고 10분 정도 걸리는 근무지에 꼭두새벽 출근을 할 수는 없으니, 미리 가서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맞후임이 말한다. 군복에 체련화를 신어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하니깐, 불편한 군화 말고 신고 가라고. '굳이?'란 버릇 두 글자가 지워지지 않는다. 꿋꿋이 군화를 신어 당직사관에게 보고 후 자전거를 탄다.
저번 병사 회의에 가다가 길 한복판에서 펑크 난 자전거. 자꾸 바람이 빠지는 게 심상치가 않아 중간에 바람을 넣었음에도, 불에 기름이라도 분 것처럼 피익 바람이 빠지고 말았다. 그러한 배경에 휴가 나간 후임의 자전거를 탄다. 이것도 심상치 않은데, 손으로 푹 눌리는 앞바퀴. 낮은 탓에 무릎이 아프더라도 파견 나간 후임의 자전거를 탄다.
작은 바퀴 덕에 수월히 나아가는 후임의 자전거. 내 거는 온통 녹슬어 항상 삐걱거리며 힘겹게 나아가곤 했다. 아마 나아가고자 하는 다짐보다는 귀찮음이란 녹이 더 컸을 것이다. 두 바퀴 위에서의 10분은 또 다른 나와의 대화시간.
시원하고 좋다.
리드미컬한 페달질과 불어오는 바람, 재밌구만. 이런 게 또 묘미지.
바퀴에 바람이 빠지는 게 내 운전 습관 때문인가.
가만 보면 체련화를 신고가라는 맞후임의 말이 맞았는데, 또 고집을 피웠네.
생활적으로도, 업무적으로도 맞후임이 더 잘하는데 왜 난 아니라고만 말하고 싶었을까.
내 그릇은 여기까지 인 걸까.
또, 근거 없는 열등감에 휩싸이는 걸 보니 난 그릇이 작아.
강박성 성격장애 특징이 그렇더라고. 결국 난 강박성 성격장애가 맞나 봐.
융통성 없고, 사소한 것에 집중하느라 소탐대실하고.
이런 걸 융통성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럼 원리원칙 지키는 사람들은 다 뭐가 돼.
네가 그렇게 원리 원칙을 잘 지키는 사람은 아니지 진우야.
그냥 결국 논리적인 척,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잖아. 고집쟁이야.
아니야. 또 제멋대로 스스로를 가두지 말자.
난 가치 있는 사람일까.
남이 만들어준 학력, 사고, 생각 말고는 내 것이 없는 사람.
적으로 만났으면 참 만만한 사람이었을 텐데, 나로 만나다니 참.
헛똑똑이에, 고집쟁이에, 배우지 않는 멍청이.
도대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지?
세상 온갖 센치한 척하지만, 사실은 빈 쭉정이.
부여된 상황과 부여된 감정.
논리적인 감정이 아닌, 장애처럼 습관으로 이루어진 인과관계.
결국은 그냥.
단순히 그냥.
그냥 우울한 사람.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 화살표는 언제나 아랫방향. 어디선가 들은 말이지만, 원래 행복이란 감정은 휘발성과 같다고 한다. '그저'란 수식어가 어울리는 거지. 하지만 슬픔과 결을 같이하는 감정들은 서로가 서로를 물고 늘어진다. 슬픔은 의심을, 의심은 후회를, 후회는 억울함을, 억울함은 분노를, 분노는 좌절을, 좌절은 우울을 부르는 느낌. 뇌피셜이지만, 행복을 다룬 명작이 있을까. 무엇이 행복인가하는 철학적 질문이 아닌, 사람이 얼마나 행복할 수 있냐를 묘사한 작품 말이다. 슬픔을 애절히 다룬 작품은 봤어도, 행복을 실감 나게 다룬 작품은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 그만 생각해. 그냥 요즘 외로운 거잖아. 낙이 없는 거잖아. 뭘 그게 대수라고 인생이니 뭐니 하면서 센치를 떨어 왜. 외로움에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우주사진 마냥 화면 속엔 별들과 행성이 빛나고 있다. 전공, 취미, 여행, 친목 등 여러 가지로 빛이 난다. 뻔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그들이 부럽다. 이쁜 영희가, 똑똑한 철수가, 멋있게 사는 민수가 부럽다. 분명 가까웠던 사람이다. 나의 말에 깊게 심취했던 후배도 있었고, 같이 땀 흘리며 무대를 준비했던 사람도 있었다. 술자리마다 배꼽이든 잔이든 부여잡았던 친구들도 있었고, 해부터 달까지 한 교실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어느새 빛나며 나에게서부터 멀어졌고, 동경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같이 빛나고 싶은 마음에 많은 쪽지를 날렸지만, 부담스러워한다는 걸 알았을 때 참 외로웠다. 수백이 넘는 팔로워와 팔로잉 중 연락할 사람이 없다니. 내가 그저 우주 먼지여서 그런가.
계속 보고 있자니, 초라해지고 외로워져서 세상을 등졌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브런치에서 처음으로 감탄하며 봤던 패션 글엔 그런 말이 있었다. "옷을 잘 입으려면, 결국 고독한 혼자만의 대화를 해야 한다." 그래, 멋있어질 거야. 빛날 거고, 부러워하게 할 거야. 건강하지 않은 마음가짐이란 건 잘 안다. 타인에게 기댄 자기만족이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반쪽짜리 다짐의 남은 반쪽은 곧 의심과 확인이 채우겠지만, 순간만큼은 의기양양해지고 싶었다. 뭐라도 내 뜻대로 하고 싶었다. 내가 한 말이 바보일지언정 지키고 싶었고, 내가 나의 삶을 만들어나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기에 바보 같단 걸 알지만, 외로움에 인스타그램을 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