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더블린에서,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더블린 사람들 2018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워홀러, 어학연수 유학생 ; 아일랜드 더블린 한국인 청년 인터뷰 프로젝트
아일랜드 문학가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소설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거나 무시하고 싶거나 부정하고 싶은 우리 마음속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비춰준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게 뭐니?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 속에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리하여 『더블린 사람들』을 읽을 때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이다. 아니, 더블린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스무 살에 읽으면 스무 살의 우리 자신을, 마흔 살에 읽으면 마흔 살의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더블린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반질반질한 거울이니까. 누가 앞에 서든 마음 깊은 골짜기까지 비추는 절대거울이니까.
출처 _ 김경욱 작가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
"지금 여기 더블린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더블린 사람들 2018>의 네 번째 인터뷰이는 해맑음으로 더블린의 먹구름마저 날려버릴 것 같은 청춘이다. 정말로 해맑음이 먹구름을 비켜나갔는지, 아일랜드 어학연수 6개월 차 지선(23)을 더블린 외곽 주거 단지 노클리온에서 만나보았다.
지선의 음악 Stevie wonder - Someday at christmas
Q.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지선 : 안녕하십니까. 학생비자로 온 23살 지선입니다.
Q. 언제 아일랜드에 오셨나요? 온 지 얼마나 되셨는지?
지선 : 17년 8월 3일에 왔고, 6개월 정도 넘었어요.
Q. 아일랜드에 오기 전에는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지선 : 학교에 살았죠. 전공이 애니메이션, 컴퓨터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하는 디지털콘텐츠학과예요. 3D, 2D, VFX 작업을 해요. 욕심이 많은 편이라 인정받고 싶어서, 2학년 때부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학과 동아리에 들어가서 열심히 하고 일주일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3학년이 되고 너무 지치는 거예요. 게다가 저는 휴학 생각이 정말 없었거든요. 무조건 스트레이트로 졸업하고, 취직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아일랜드로 도망쳐온 거죠. 누군가는 도망쳤다는 표현을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좋아요. 나쁜 게 아니니까요. 나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은 거니까. 무엇보다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크게 겪은 것 같아요.
Q. 어떤 문제를 겪으신 건지?
지선 : 대학교 2,3 학년 때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다들 많이 느낀다고 해요. 저도 마찬가지였죠. 특히나 저는 남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편이였고 어디에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 마음이 편했어요. 무리라고 하죠. 친구에 대한 소유욕도 있었고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도 있었어요.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해결을 하려고 하지 않고 피하기만 했죠. 문제의 발단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더 외롭고 그랬던 거죠.
혼자 있는 건 좋아하는데 외로운 걸 싫어해요. 누군가가 저를 싫어한다는 느낌을 못 견딜 만큼 싫어하고 무서워했어요. 모든 인간이 그런데, 친한 친구들이 저를 꺼려 하는 게 느껴지니까 너무 힘든 거예요. 저 혼자 빙빙 돌고, 더 외로워지고, 혼자 못난 짓을 한 거죠.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친구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성숙하지 못했기도 해서, 잠시 멈춰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기댈 곳이 없으니까.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우정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있잖아요. 제가 많이 성숙하지 못하고, 부족했죠.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적어도 전처럼 그러지는 않을 것 같아요. 관계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게 되기도 했고, 저를 깊게 알아가다 보니 친구들을 더 이해를 할 수 있게 됐고요. 아일랜드로 유학 와서 많은 일을 겪으면서 성숙해져서 깊게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상황에 흔들리기보다는. 타인의 시선보다는 저를 더 우선시하게 됐고요.
Q. 그렇다면 왜 아일랜드를 선택한 건지?
지선 : 3학년 되기 전에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언니를 만났는데, 아일랜드로 어학연수를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막연하게 부러웠어요. 유학이라니! 하면서요.(웃음) 아일랜드는 그때 처음 들어본 나라였어요. 유학박람회랑, 어학원이 혼자 다 알아보고 언니한테 조언도 많이 구했죠.
첫째로, 친한 언니가 여기 와있었기 때문에 정보가 많았다는 점. 둘째는, 한국인이 적다는 점. 셋째는, 유럽여행하기가 좋다는 점. 그게 큰 메리트가 돼서 다른 나라는 생각도 안 하고 선택했던 것 같아요. 고민은 했었죠. 비가 되게 많이 오고 우울하다고 하니까(웃음) 우울한 것을 못 참기도 하고, 혼자 연고 없이 가는데 너무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와보니 나쁘지 않았어요.
Q. 아일랜드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지선 : 우중충할 거라고 생각하고 내렸는데, 생각보다 정말 좋았어요. 8월에 왔는데, 여름이잖아요. 날씨도 너무 좋고, 한국은 끈적끈적한 여름이라 싫은 거잖아요. 부산에 사는데 그전 날 공항 오겠다고 땀 뻘뻘 흘리면서 끈적끈적했다가 더블린 공항에 내리니까 상쾌해서 너무 좋았죠. 첫날에 비자 연장할까? 생각했어요. 그만큼 너무 좋았어요.(웃음) 그리고 꿈꾸던 티브이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집들이 있고. 여름엔 해도 10시까지 안 지니까. 그런데 이제 한 3주 맛보고 끝났죠. (웃음) 그때 볼 수 있는 해 다 봤고, 푸릇푸릇 한 초록 다 봤고 도착한 뒤 3주 뒤부터 이제 상상하던 더블린이었죠.
Q. 아일랜드에 오기 전 상상했던 모습 어떤가요?
지선 : 별생각 없었어요. 해외는 일본이랑 대만밖에 안 가봐서 유럽은 처음이었거든요. 막연했어요. 그냥 자연이 예쁘겠다 정도? 오기 전에 Jtbc에서 비긴 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을 했어요. 온기 전에 방송이 돼서 운명인가? 생각했죠. 가족들이랑 다 같이 봤었어요. 신기했죠.
런던에서 경유해서 왔는데, 히드로 공항이 크기도 하고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 비행기 타고 오는 사람 중 한 명이 저랑 똑같이 더블린을 가는 거예요. 그분 도움을 많이 받았죠. 그분은 비긴 어게인 보고 여행을 더블린으로 온 거예요. 미디어의 힘이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웃음) 과연 그 비긴 어게인에서 보던 더블린과 실제 더블린이 비슷하실지는 잘 모르겠지만.(웃음)
Q. 아일랜드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 있다면?
지선 : 할로윈 때요. 아무래도 할로윈 원조가 아일랜드이다 보니까 기대를 엄청 했어요. 게다가 학원에서 파티도 한다고 하니까, 더 신났던 것 같아요. 학원 친구들이랑 별로 친한 편이 아니었거든요. 친구들이 저녁에 다x시스나 같이 놀자고 해도 그냥 집 가거나, 정말 잠시 갔다가 기 빨려서 집으로 다시 온다던가(웃음) 친해질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그 당시에 이제 학원의 한국인 언니들이랑 친해져서 같이 갔어요.
팀별 미션을 했어요. 첫 번째 미션은 코스튬을 다하고 저녁에 모이는 거예요. 외국 와서 처음 파티이기도 하고 게다가 할로윈 이니까 신나서 일찍부터 친구네 가서 분장도 했어요. 두 번째 미션이 보물 찾기였어요. 밤에 정말 웃으면서 뛰어다녔어요. 최종 미션은 근처 bar에 모여서 맥주를 마시면서 즐기는 건데, 저희 팀이 미션 1등을 한 거예요. 너무 좋았어요. 선물은 학원 후드티긴 했지만.(웃음) 잠옷으로 잘 입고 있습니다. 기념품으로 한국에 가져가려고요. 그리고 맥주 2잔 무료로 받았어요. 어렸을 때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땀 뻘뻘 흘리면서 웃으면서 논거라 좋더라고요. 성인이 되고 그렇게 놀아본 적이 없으니까. 또, 칠레, 한국인, 터키, 대만, 멕시코, 브라질 등등 각국의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랑 으쌰 으쌰 해서 미션 수행하고 게다가 1등까지 하니까 너무 신났죠. 코스튬도 너무 재밌었고요. 서양 친구들이 분장하니까 많이 무섭더라고요.(웃음) 이 친구들은 정말 작정하고 이날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 같아요. 어떤 한국 남성분은 덩치가 좀 있으신 분인데 에나벨 분장을 하신 거예요. 최고 인기 스타였어요.(웃음) 피카츄, 광대, 어떤 분들은 가면 쓰고, 모자 쓰고, 원피스 입고. 땀 뻘뻘 흘리고 있고. 가오나시 친구도 귀여웠고, 저는 상처분장 정도 하고 예쁘게 꾸몄어요. 코스튬 1등은 할리퀸이었어요.
축제를 위해 사는 사람들 같았어요. 확실히 잘 즐기는 거 같아요. 신기한 게 할로윈 2주 전부터, 못 보던 코스튬 가게들이 생기는 거예요. 분명히 이 가게가 아니었는데, 근데 또 핼러윈 끝나니까 원래 가게로 되어있더라고요. 크리스마스 전에는 크리스마스 전용 가게로 바뀌어있고. 보통 있으면 한두 달 전부터 즐기는 느낌? 준비과정부터 축제인 거예요. 친구랑 공원에 갔는데 아기들을 위한 핼러윈 파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너무 귀여웠죠. 밖에서 뿐 아니라 가정적으로 집안에서도 잘 즐기는 느낌이에요. 축제를 즐기려고 태어난 사람들처럼요.
Q. 집 안에서는 어떻게 축제를 즐기나요?
지선 : 셰어 하우스에서 아이리시 할머니와 함께 사는데, 집에 왔는데 할머니가 집안 전체를 다 꾸며 놓으신 거예요. 그리고 동물 잠옷을 입으라고 주셨어요.(웃음) 하나가 고양이고 하나가 마녀인데 고양이를 입었어요. 그리고 저녁이 되니까 아기들이 초인종을 누르고 trick or treat이라고 사탕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정말 ‘아. 외국이구나 느꼈어요.’ 아이리시 가정집에서 사니까 그런 것을 더 잘 느낄 수 있던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 두 달 전부터는 시티에서 11월 초부터 시티 거리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더라고요. 11월 말에는 카운트다운을 하면서 정말 큰 트리의 점등식을 하는 거예요. 이 친구들에게는 새해 설날 느낌이구나라고 느꼈어요. 되게 좋았어요. 제 개인 SNS에 동영상을 올렸는데 여행 커뮤니티에서 퍼가기도 했어요.
또, 3주 -4주 전부터 집 근처에서는 진짜 나무들을 파는 거예요. 그리고 집에 왔는데 저보다 더 큰 나무가 있는 거예요. 할머니께서 손수 다 장식하시고, 미니 전구도 많고 밖에도 설치하고. 저희 집 뿐 아니라, 집집마다 산타도 보이고 너무 좋았어요.
Q. 아일랜드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요?
지선 : 제일 힘들었던 건, 처음 도착하고 한 달이에요. 3월이랑 9월이 집 구하기 힘들다고 듣긴 했는데 그렇게 힘들진 몰랐죠. 다프트라고 집 구하는 앱에 이메일을 서른 개 보냈는데 답장 오는 건 2-3개 비싸고, 아유모(아일랜드 유학생 모임) 통해 더 구하고 결국 한집을 구했는데 분명 계약까지 했는데, 하우스 홀더 분께서 갑자기 다른 분이 들어오신다면서 안된다는 거예요. 집 나가기 3일 전이였는데. 안 되려니 안되는 거죠. 홈스테이를 연장할까 했는데, 너무 비싸서 포기했죠. 그리고 한국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지금 집이 올라왔길래 간절하게 연락을 하고 뷰임을 했는데 너무 좋은 거죠. 생각해보면 그 집에서 살았으면 불편했을 것 같거든요. 트윈룸이었는데, 한방에 2명이 살고 대만 친구랑 사는 건데 그때는 마음이 너무 급하니까 그것도 너무 좋았거든요. 생각해보면 이 집에 오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어요. 좋아요.
그리고 원래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땐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해요. 새로운 곳을 혼자 돌아다닌다던가, 카페에서 하루 종일 종이에 생각을 끄적인다던가, 그런데 이렇게 혼자 멀리 타지에서 강제?로 엄청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 거잖아요. 처음엔 되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혼자라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가족, 친구, 우리 집 모든 게 너무 그리워요.
Q. 여행은 어디 다녀오셨나요?
지선 : 벨기에, 체코, 독일, 런던 , 북아일랜드, 덴마크, 폴란드, 파리, 헝가리, 앞으로는 모로코, 이탈리아, 포르투갈이요.
여러 일들이 있었어요. 우선 벨기에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돼요.(웃음) 벨기에 갔을 때, 날씨가 안 좋았어요. 그랑 플러스라는 광장의 야경이 빛나야 하는데 다른게 빛났어요. 번개라고.(웃음) 저게 왜 빛나지 했죠. 9월이었는데 너무 추웠고, 힘들고 심지어 토도하고 난리였어요. 일몰을 보려고 겐트 운하에서 추워서 떨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외국인 커플이 말을 거는 거예요. 알고 보니 남자분이 국제 태권도 심사위원인 거예요. 춘천에 왔던 사진을 보여주셨는데 옷에 올림픽 로고가 있었어요. 심지어 본업은 치과의사이고 태권도는 취미라고 하시더라고요. 신기했죠. 저희가 초콜릿 맛있는 곳이 어디인지 여쭤보니까 구경도 시켜 주시고, 바를 갔는데 벨쥼스타일 이라면서 맥주도 사주셨어요. 그때 느꼈죠. ‘아 이게 여행의 묘미고, 외국인이 말을 걸었을 때 적대적으로 안 해도 되겠구나. 이래서 영어를 해야 하는구나’ 했어요. 정말 나이스했거든요. 이제 외국인이 말을 걸면은 웃으면서 맞이해야겠다. 생각을 하고 체코를 간 거죠.
체코에서 외국인이 종이 지도를 가지고 저희한테 은행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는 거예요. 여행객이라 잘 모른다고 했더니 자기는 폴란드 사람이라면서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대화를 주고받다가 헤어졌어요. 스마트 시대에 종이 페이퍼 들고 다니면서 불쌍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10분 뒤에 다시 마주쳤어요. 갑자기 너무 반갑게 맞이하는 거예요. 자기가 아직 은행을 못 찾았다고 하면서, 우리 보고 혹시 유로 있네요. 일단 없다고 왜 그러냐고 했더니. 급하게 공항에 가야 하는데 환전을 해야 하는데 은행을 못 찾겠다 이거죠. 그러면서 500자리 4장을 줄 테니 1000자리 2장으로 바꿔줄 수 있냐는 거예요. 같이 간 언니가 그랬던 게 단위가 높을수록 취급을 해준다길래 그때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바꿔줬죠.
뒤를 돌아서 가는데 느낌이 세한 거예요. 저희가 가지고 있는 돈이라 비교해 봤는데, 그림이 다른 거죠. 소름이 돋았지만 현실을 부정하면서, 유로도 나라마다 그림이 다르니까 그런 건 줄 알았죠. 체코어로 쓰여있어서 모르겠는 거예요. 지인들한테 물어봤는데 답장도 안 오고 불안했어요. 그 사람은 이제 사라진지 오래고. 민박 사장님한테 연락했더니 사장님께서 ‘아이고..’ 이러시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도 현실을 부정하면서 어느 나라 돈이긴 하겠지 하면서 교환소에 갔더니. 매우 안타까운 표정으로 당했냐고 이거 못 바꾼다고 하시는 거예요. 알고 보니 0두 개가 사라지고 하나 짜리 가치가 된 거예요. 벨라루스 화폐인데, 쉽게 말하면, 10만 원이랑 200원이랑 바꾼 거죠. 사기를 당한건데 흔한 수법이래요. 기사도 많이 났더라고요. 또 동양인들이 잘 구별을 못하니까 많이 당하는 거죠.
벨기에에서 외국인이 다가왔을 때 기억이 너무 좋아서 마음을 열었더니 이런 일을 당한 거죠. 그 당시에는 돈을 잃어서 슬프기보다는 내 눈앞에서 웃으면서 당했다는 게 화나는 거죠. 나쁜 사람들! 그래도 프라하가 가장 좋았어요. 잘 이겨낸 거죠. 유학 와서 여행하면서 모든 걸 잃어봤어요.(웃음) 그 다음 여행은 덴마크였는데 지갑을 털렸어요. 친구들한테 그랬죠. 나 이제 세 개 남았다고, 핸드폰, 여권 그리고 나. 셋 중 하나 털리면 한국 간다고 그랬죠.(웃음)
덴마크에서 그런 일이 있을 거라 상상도 못했어요. 행복지수 1위나라잖아요. 저도 그 행복을 느끼러 간 건데, 기대도 엄청 했거든요. 일단 3박 4일 내내 비만 왔고요. 12월 말 블랙프라이데이 때 갔거든요. 아마 그게 문제였던 거 같아요. 사람들이 돈을 많이 쓰는 것을 아니까 동유럽 쪽 애들이 훔치려고 온대요(웃음).
여행할 때, 다른 나라는 걸어 다녔는데, 덴마크는 거리가 좀 있고, 잘 모르니도 하니까 코펜하겐 카드를 사면 무제한이라길래 그걸 끊어서 탔어요. 분명히 지하철 자리가 있는데 어떤 여자가 저를 미는 거예요. 밀길래 밀렸죠. 흔들리니까 잡고 있었는데, 한 정거장이여서 금방 내리고 신나게밥 먹고, 계산하려고 지갑을 꺼내려고 보니 없는 거예요. 장난이겠지했지만, 눈앞이 막막한 거예요. 여태까지 살면서 제 물건을 잃어버린 적이 별로 없거든요. 돈도 연필도 지갑도. 잃어버린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적이 처음인 거죠. 심지어 외국에서요. 현금은 없었지만, 아일랜드은행 체크카드, 한국체크카드, 국제학생증 등등 심지어 아일랜드 신분증까지. 다 있었거든요. 울면서 숙소로 돌아왔어요.
진짜 걱정되는 거예요. 체코에서 돈 잃어버렸던 게 차라리 나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돈을 받을 수단이 다 끊긴 거잖아요. 여행 동안 친구가 계산해주고, 살면서 처음으로 외국 경찰서도 가봤어요. 그런데 늘 있는 일이라고 경찰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어요. 웃긴 게 갔을 때 2-3명이 더 온 거죠. 경찰분이 이럴 시즌이래요.(웃음) 그리고 아일랜드 집에 다시 왔는데 의욕도 없고, 너무 무서웠어요. 덴마크 여행이 끝나면 파리를 가야 했거든요.
파리가 처음으로 혼자 가는 여행이라 더 무섭고 가기도 싫었어요. 정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털린 거잖아요. 내 손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심각하게 엄마한테 한국 갈까 여쭤보기도 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지금 이렇게 돌아가버리면 지는 거 같은 거예요. 지기 싫은 거죠. 악착같이 건뎠죠. 그리고 확실히 털려보니까 더 조심하게 되더라고요. 파리 갈 때 복대도 차고, 가방에 핀 5개 꼽았어요. 파리에서 신분 검사를 할 때 ‘잠시만’ 하고 복대안에서 꺼내니까 검사하는 사람도 웃고, 그랬죠.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많이 힘들었어요. 또, 아일랜드 여행할 때는 50년 만에 온 허리케인을 고속도로에서 맞이했어요.
Q. 많은 교훈을 얻으셨을 것 같아요.
지선 : 네 그렇죠. 이런 경험들이 저를 확실히 성장하게 하더라고요. 저 스스로 한테 칭찬하고 싶기도 하고, 멘탈이 강해졌다고 생각해요. 해냈다는 느낌.(웃음) 얻은 교훈은, 외국인들이 말을 걸면 마음을 열지만, 단순한 친절인지 아닌지 구별을 하게 됐죠. 인종차별도 많이 겪었고, 멘탈 공부하고 인생 공부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운명이겠거니 하게 됐어요. 무소유 하면서요. 액땜을 했다고 생각해요.
Q. 아일랜드 신분증을 잃어버렸는데 귀국은 어떻게 하셨는지?
지선 : 경찰서에 가서 스톨른 당했다고 말하면 리포트를 주시는데, 입국심사 때 보여주면 입국이 가능하더라고요.
Q. 아일랜드에서 나만의 장소가 의미가 있다면?
지선 : 집이예요. 아일랜드에 오기 전에는 의지를 불태워서 외국인들이랑만 놀 거고. 한국인들이랑 얘기도 안 할 거라고 했지만 그게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한국에서는 나름 친구들 사이에서 말을 재미있게 하는 편인데, 영어가 안되니까 그것도 안되고, 관계 때문에 아일랜드로 왔는데 관계 때문에 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싶어서. 그냥 제 마음 가는 대로 했죠. 혼자만의 시간을 진정으로 즐기게 된 거죠. 이 집에 제 공간이 있으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아무도 방해 안 하기도 하고, 가정집이다 보니까 내 집 같고, 같이 사는 아이리시 할머니도 너무 친절하시고. 동네도 예쁘고, 날씨 좋은 날 정말 좋아요.
사실 시티에서 살 것인지, 지금의 집인 외곽의 집에서 살 것인지 고민을 했었죠. 하지만, 언제 이런 집에 살아보겠어하면서 시티와 먼 곳을 선택한 거죠. 친구들이 뭐 해라고 물어보면 그냥 집에 간다고 하고, 방에서 생각 정리하고 여행 계획 짜고, 제일 행복하죠.
Q. 집 구성원은 어떻게 되는지.
지선 : 아이리시 할머니 한 분, 한국인 여자 세명 이렇게 살아요. 홈스테이는 아니고 셰어하우스 느낌, 할머니가 정말 친절하셔서 좋아요.
Q. 아일랜드에 오기 전과 후 스스로가 변한 점이 있다면요?
지선 : 우선 살이 쪘죠.(웃음) 훅 찌더라고요. 내적으로는 아직은 모르겠어요. 한국에 돌아가야 알 것 같아요. 여기서는 익숙해지기도 했지만, 확실히 느낀 것은 제가 외향적인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그리고 그러고 싶었어요. 여기 와서 느낀게 저는 내향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사람들이랑 많이 부딪히면 기가 빨리고요.(웃음) 서양 문화가 좋은 게 우리나라에선 못 나가거나 노는 중간에 간다 그러면 '아 왜~ 가지마' 라고 하잖아요. 저도 물론 그랬지만요.(웃음) 여기서는 왜 가냐 물어보면 정말 '그냥'이라고 답하는데도 잘 가라고 해줘요. 다음에 보자라고. 개인주의가 이럴 땐 좋은 거 같아요. 그리고 혼자 잘 다닐 수 있다는 점? 한국에서 혼자 다닐 때는 위축되는 느낌도 있었고 다 쳐다본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전혀 신경을 안쓰니까요. 물론, 외국이여서 아는 사람이 없어서 더 가능한 것도 있고. 제가 의식을 많이 안하게 된 것도 있고요.
Q. 앞으로 아일랜드 생활을 어떻게 할 건지. 계획이 있다면요?
지선 : 3개월 정도 남았는데, 학원을 마치고 시험을 보고. 여행을 이탈리아, 모로코, 포르투갈 갈 예정이에요. 그리고 남은 시간을 잘 정리해야겠죠.
Q. 현재 꿈꾸고 있는 일이 있는지.
지선 : 저를 조금 더 알게 됐다고 했잖아요. 바쁜 생활이 좋긴 한 거 같아요. 여기서 충분히 쉰 거 같아요. 가서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취직도 하고 일하고 싶어요. 가자마자 졸작을 해야 해서, 겪었던 이야기들로 스토리를 구성해서 2D 애니메이션 멋있고 엄청나게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가 힘들어지면 또 도망치는 거고.(웃음)
Q. 꿈을 위해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혹은 계획이 있다면?
지선 : 여기서는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을 풀 수 있도록 쉬고 여유를 즐기는 게 저의 목표였어서 아직 별다른 생각은 없어요. 여러 가지 경험하고, 다양한 사람 만나고. 아직은 쉬고 싶어요. 남은 만큼 푹 쉬다가 가고 싶어요. 한국에 있는 친구들한테 이런 얘기하면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저도 나름대로의 힘듦이 있고 그러지만, 사람 만날 거 안 만나고 돈 아껴서 여행하고 그런 거니까. 한 번은 이 집에 와서 처음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아팠어요. 병원에 가면 병원비가 많이 나오니까. 약으로만 버텨야 되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예요. 타지에서 너무 서러운 거예요. 여기 와서 왜 이리 아픈 건지 모르겠어요. 아마 햇빛이 없어서 그런 거 같아요. 너무 우울해서 울다가도 울고 나면 마음 괜찮아지고. 여기 있는 게 정말 감사하고. 한국 가면 다 꿈 같을 것 같아요.
Q. 아일랜드에 곧 올 사람들을 위해 혹은 여행자들을 위하여.
지선 : 여행을 올 사람들에게는 아일랜드는 자연을 꼭 보셔야 해요. 근교를 가셔야 해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도 너무 좋았어요. 자연의 웅장함이라고 하죠. 골웨이에 모허절벽도 너무 좋았고. 차 타고 다니면 양이 그렇게 많고. 소도 많고. 자연을 즐기러 왔으면 좋겠어요. 더블린 시내보다는 (웃음) 펍 문화도 좋지만. 살러 오시는 분들은 너무 계획을 세우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다들 도피하러 온 거니까. 그대로 그 순간을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굳이 뭘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체코에 갔을 때 민박집 주인분이 일러스트 작가분이셨어요. 그분께 제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 공부하러 와서 공부를 안 하는 것을 아니까,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도 받는다고요. 수업 중간에 울면서 뛰쳐나간 적도 있어요. 친구들 다 보는 앞에서 계속 선생님께서 발음 지적을 하시는 거예요. 그때 추석이었는데 향수병도 너무 심하기도 했고, 서러웠던 거죠. 물론 저 잘 되라고 하는 소리셨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분께서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여행만으로도, 배우는 것도 충분히 있다고요. 굳이 뭘 하려고 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죠.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Q. 본인에게 아일랜드란? 5글자로
지선 : 나의 안식처. 부모님한테는 공부라는 목적으로 왔지만. 많이 쉬는 느낌이라 좋아요. 앞으로 돌아가서 달릴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거죠.
Q. 10년 뒤 이 글을 볼 당신에게 한 마디 하자면.
지선 : 서른세 살인가요. 10년이 금방 지나갈 것 같긴 한데. 뭘 하고 있으려나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있겠죠.? 만약에 힘들다면 도망치렴. 나쁜 게 아니니까! 다시 1년 쉬고 다시 열심히 하면 되니까. 네가 닦아 놓은 게 있을 건데. (웃음)
Q. 인터뷰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지선 : 너무 좋았어요. 제 생각도 정리할 수 있었고.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혼자서 있다 보니까. 지나온 이야기들을 생각하면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좋고. 덕분에 더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지선 : 혼자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에 대한 무거움을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좌절할 때도 많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면 이 곳에 온 것도 제 선택이고 결정이였음을 다시 생각해요! 아일랜드에 계시는 분들, 오실 분들 다들 인생의 멋진 도전이니까요. 문화도 언어도 외모도 다른 타지에서 생활하는 것이니까. 여기 오기로 마음 먹었던 그때를 생각하면서 다들 멋진 더블린 생활 하시길 바랄게요. 파이팅!
우리는 늘 곤경에 처할 때, 스스로의 존재가 한없이 작아진다. 모래알 처럼 혹은 그 보다 더. 그때, 누가 우리를 위로 해줄까? 문득 밤 하늘을 바라보았다. 쏟아질 것 만 같은 수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그렇다. 별들은 그 자리에서 항상 우리를 위로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 많은 모래알 보다 작아 보이는 별들이, 우리의 존재를 위로하고 있던 것이다. '우리도 이렇게 작지만, 항상 빛나고 있어. 너도 그래.' 라고 속삭이면서. 존재만으로 우리의 빛을 발견해준 것이다. 잠시 어둠이 드리워와도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항상 빛나고 있다는 것이다. '모래알'의 또 다른 이름은 '별'. 그리고 그 별은 몇 억 광년을 뚫고 빛나고 있다. 항상. 지금, 여기 더블린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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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터뷰, 글 : 채영(Lu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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