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사람들 2018 ,세 번째 이야기

지금 여기 더블린에서,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by 장채영


더블린 사람들 2018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워홀러, 어학연수 유학생 ; 아일랜드 더블린 한국인 청년 인터뷰 프로젝트





아일랜드 문학가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소설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거나 무시하고 싶거나 부정하고 싶은 우리 마음속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비춰준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게 뭐니?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 속에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리하여 『더블린 사람들』을 읽을 때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이다. 아니, 더블린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스무 살에 읽으면 스무 살의 우리 자신을, 마흔 살에 읽으면 마흔 살의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더블린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반질반질한 거울이니까. 누가 앞에 서든 마음 깊은 골짜기까지 비추는 절대거울이니까.
출처 _ 김경욱 작가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






"지금 여기 더블린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더블린 사람들 2018>의 세 번째 인터뷰이는 아일랜드의 한국인 버스커다. 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한국인 청년들은 저녁만 되면 어김없이 길에서 나오는 한국 노래에 반가워 마지 않았더랬다. 버스킹의 성지 아일랜드에서 꿋꿋하게 한국어 노래를 부르는 그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아일랜드 어학연수 10개월 차 성찬(26)을 아일랜드 버스커들이 사랑하는 헨리스트릿에서 만나보았다.





성찬의 음악 Hyukoh - Tomboy











Q.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성찬 : 안녕하세요. 학생비자로 온 어학연수 중인 26살 성찬입니다.




Q. 언제 아일랜드에 오셨나요? 온 지 얼마나 되셨는지?

성찬 : 17년 1월 24일에 와서 10개월 좀 넘었습니다.




Q. 아일랜드에 오기 전에는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성찬 : 전자과이고 과 학생회 부회장을 했었어요. 과 내에서 활동도 하고 기타 동아리도 하고, 수학 영어 과외 선생님도 했어요. 영어는 문법 위주로 했었어요.(웃음) 정말 바쁜 생활을 했었죠.




Q. 오기 전 상상했던 아일랜드의 모습 어떤가요?

성찬 : 그렇게 큰 기대는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영어를 배우러 온다는 게 가장 큰 목표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아무래도 바쁜 생활을 했으니까 충전시키는 시간을 갖자 하고 왔죠.





Q. 왜 아일랜드에 오셨나요?

성찬 : 여러 가지 조건이 있었어요. 우선순위는 치안, 영어 그리고 음악. 사실 음악이 제일 커요. 취미가 많은 편이 아닌데, 유일한 취미가 음악이라서요. 취미를 하면서 즐길 수 있는 음악이 있는 지가 중요했어요. 그리고 여행할 때 메리트가 있는 나라인지도 중요했죠. 마지막이 경제적인 부분인데 물가가 괜찮은지. 그런 조건을 봤을 때 제일 이치에 맞더라고요.




Q. 취미가 음악이라 함은요?

성찬 : 음악은 다 좋아요. 듣는 것도 좋아하는데 부르는 것을 조금 더 좋아해요. 사실 음악은 가족의 피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할머니, 아버지, 친가 쪽이 흥이 정말 많으세요. 어머니는 전공은 아니신데 취미로 성악을 하셨어요. 집안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저도 흥이 많은 편이고, 자연스레 음악을 좋아하는 분위기였어요. 좋아요.




Q. 아일랜드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요?

성찬 : 일단 유럽이니까 정말 색달랐어요. 개인적으로 유럽에 대한 동경이 컸거든요. ‘내가 유럽에 왔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사실 가장 친한 한국 친구가 제가 오기 일 년 전에 아일랜드를 왔었거든요. 그 친구가 가자마자 스파이어를 찾으라고 하더라고요. 엄청 높게 솟아있는 건물이 있다면서요. 오자 마자 숙소에 짐을 놓고 그냥 나갔어요. 그런데, 다 높고 솟아 있으니까 다 스파이어 같은 거예요.(웃음) 지금 보면 꽤 흔한 건물인데, 그땐 처음이니까 신기해서 사진 찍고 그랬던 것 같아요.





Q. 아일랜드에서 버스킹을 하는 한국인이세요. 어떤 계기로 버스킹을 하셨는지?

성찬 : 아일랜드가 버스킹의 성지라고 하잖아요. 처음에 도착했을 때, 거리에서 음악이 끊이질 않는 거예요.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음악을 원래 좋아하기도 하니까 버스킹을 하고 싶었는데, 그 당시에는 아는 노래도 많이 없었고, 무엇보다 처음엔 영어도 못했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그래도 그냥 막 부딪혔어요. 처음에는 구체적으로 계획을 하고 한 것은 아니고요. 그냥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계획을 많이 안 하고 정말 마음 가는 대로 ‘그냥’ 했어요.(웃음) 그렇게 하다 보니까, 조금 지나니까 더 하고 싶은 게 많아졌다고 해야 하나, 조금 더 깊이 있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필요한 건 연습과 준비였어요. 더 잘하고 싶어서 집에서 연습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아일랜드 버스킹 하시는 분들 보면 정말 음악적 수준이 높아요. 그래서 제가 그분들을 음악적으로 따라잡는다기 보다, 즐기자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Q. 아일랜드에서 버스킹을 하려면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데, 그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실 수 있나요?

성찬 : 지금은 조금 바뀌어서 확실하진 않지만. 제가 할 때는 시청에 가서 얘기를 하고, 거주 증명서가 필요했어요. 비용은 앰프 없이 하는 건 30유로, 앰프와 같이 하면 60유로. 지금은 가격이 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17년 2월 등록 기준)




Q. 버스킹을 하면서 많은 일이 있었을 것 같은데, 몇 가지 소개해주시자면.

성찬 :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었죠. 제일 좋았던 추억은 아일랜드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날이었어요. 저랑 한국인 친구 2명 포함 총 3명이서 아일랜드가 마지막 날인 친구를 집으로 그냥 보내기는 아쉬우니까,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했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더블린은 가게들이 일찍 문을 닫으니까 할게 없더라고요.(웃음)


그냥 “노래나 하자” 하고 영화 원스 첫 장면에도 나왔던 버스킹으로 유명한 그라프튼 스트리트에 갔어요. 그날 유독 몸도 지쳐있는 상태고 처음엔 다들 쑥스러워해서 그렇게 재밌지는 않았어요.(웃음) 그런데 갑자기 친구 중 한 명이 쓰레기통 옆에 버려진 박스를 하나 가져오더라고요. 그리곤 드럼을 치는 것처럼 박스를 쳤어요.(웃음) 다른 친구도 길에 있던 도구를 가져와서 쳤어요. 그런데 그때 저랑 가장 친한 멕시코 여자사람 학원 친구 마리아나가 제 앞을 지나가는 거예요. 마리화나 아닙니다.(웃음) 마라아나도 흥이 정말 많은 친구라 옆에 앉혀서 넷이서 같이 노래를 불렀어요. 그날 꽤 추웠는데 2시간 넘게 버스킹을 했어요. 한국 노래를 주로 부르는지라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같이 부르는 마리아나 친구한테도 고마웠어요.


아일랜드가 버스킹의 나라인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일반적인 버스킹과는 다르니까 신선했나 봐요. (웃음) 멕시코 여자 1명, 동양인 3명이 땅바닥에 앉아서 쓰레기 박스를 드럼으로 치고 특이하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보였어요. 제가 기타도 치고 공연의 수준도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어요. 그렇게 버스킹을 하고 있는데, 풍채가 좋으신 중년 남성분이 오셔서 어디 나라에서 왔는지 여쭤보시는 거예요. 버스킹을 하면서 늘 있는 일이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어요. 그런데 갑자기 정말 잘 들었다고 하시면서 50유로를 주시는 거예요.(웃음) 처음에는 5유로를 착각하시고 50유로를 주신 거 아닌가 하면서, 잘못 주신 거 아니냐 하고 여쭤봤거든요. 그런데 친구들끼리 술을 사 먹으라고 하시는 거예요. 아마 젊은 남자애들이 즐겁게 노래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그분의 젊은 시절이 떠오르시면서 영감을 받으신 것 같아요. 너무 감사했죠. 그날이 제가 아일랜드에서 버스킹을 하면서 가장 많이 번 날이에요.(웃음) 100유로는 넘게 벌었어요. 맛있는 것도 사 먹고(웃음) 돈을 떠나서 가장 재밌던 기억이에요.








Q. 이외에 아일랜드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 있다면요?

성찬 : 버스킹 이외에는, 너무 많지만 꼽자면 제가 처음에 더블린에 왔을 때같이 살았던 친구들이랑 집에서 있었던 소소한 기억이 많이 남아요. 브라질 친구 1명, 방글라데시 1명, 멕시코 2명. 국가가 많이 다르니까 영어로 대화했어요. 일단 친구들이 활발하기도 했고 오픈 마인드라 저를 정말 많이 챙겨줬어요. 여자랑 남자랑 섞여있는데 성별을 떠나 흥들이 많아서 걔네 방에 가면 같이 얘기하고 놀았어요. 제가 클럽을 싫어하는데, 클럽을 만드는 것은 좋아해요.(웃음) 방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놓고 새벽에 윗옷을 벗고. 말도 안 되는 춤을 췄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사실 버스킹이 중점적인 부분이에요. 혼자 버스킹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와서 춤을 춘다던가, 서서 본다거나 그런 순간들이 좋았어요. 지금은 그래도 팝송을 조금 부르는데, 예전에는 K pop만 했었거든요.




Q. 한국 노래를 하면 호응을 해주나요?

성찬 : 많지는 않지만 간간이 해주세요. 혁오 노래 부를 때는 따라 부르는 외국인들도 있었어요. 행복했죠. 제가 다 뿌듯하기도 했고요. 또, 제가 버스킹을 하고 있으면 친구가 와서 같이 한다던가. 한 번은 집안에서 혼자되게 따분해 하다가 나가서 그냥 ‘노래나 하자’ 하고 늦은 시간인데도 구석진 곳에서 노래를 하고 있었어요. 거기가 펍 앞이어서 밤 12시쯤 되니까 꽤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더라고요. 그 무리들 중 한 명이 친구가 곧 결혼을 하는데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마다하지 않고 브루노 마스의 Merry You를 불러줬어요. 그때 거기 있던 외국인들이랑 다같이 부르고 진짜 재밌었어요.

또 다른 추억은, 스테판 그린 공원 앞에서 단체 버스킹 플래시몹을 한 적이 있어요. 저는 한국에 대해 자부심이 강한 사람인데, 그중에 가요에 대해서 굉장히 자부심도 있어요. 왜냐하면 팝송과 비교했을 때 자기 색깔도 강하고 트렌디 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케이팝 중에서도 가장 한국적인 음악이 무엇일까 하다가 아리랑으로 정했어요. 사람들을 모아서 가장 유명한 거리 그라프튼에서 노래를 부른 거죠. 호응도는 아무래도 한국말이다 보니 따라 하진 않았는데, 8명 정도 되는 인원이 단체로 노래를 하고 영상도 찍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구경을 많이 하더라고요. 뿌듯했어요.




Q. 아일랜드 생활을 즐겁게 보내신 것 같은데. 그래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요?

성찬 : 솔직히 말하면 정말 없지만, 굳이 꼽자면 관계에 대한 것? 한국인들은 한국에 가면 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헤어져도 슬프고 안타깝긴 하지만 슬픔의 깊이가 깊지는 않은데. 외국인 친구들은 특히 브라질, 멕시코 친구들은 그러기가 너무너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헤어질 때, 서로 말은 안 해도 기약 없는 미래에 속이 많이 상했던 것 같아요. 또, 그 집에서 처음에는 분위기가 좋았는데, 하우스 홀더인 주인 남자애가 청소 문제로 어떤 친구를 내보내려고 했었어요. 양쪽 입장이 이해가 되지만, 정말 친한 5명이 깨진다는 게 속이 상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우정과는 별개로 생활하는데 있는 문제니까요.

이런 작은 사건들에 의해 기분이 나쁜 건 순간이라 솔직히 괜찮아요. 하지만, 제가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이 있어요. 저희 할머니 연세가 95이세요. 정정하시지만 아일랜드 오기 전에도 걱정이 돼서 오는 게 맞는 일일까 고민했어요. 힘든 건 아니었지만 정신을 되게 건드는 부분이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바쁘시고, 4살 차이 나는 형도 학업에 바빴기 때문에 제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그 시간을 할머니랑 보냈어요. 그래서 할머니랑 각별한 사이거든요. 할머니를 만나면 소년이 되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할머니 걱정은 지속적인거라 정신이 편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것 이외에는 정말 없어요. 죄송해요.(웃음)




Q. 아일랜드에서 나만의 장소가 있다면요?

성찬 : 거리죠. 버스킹으로 그라프튼이 유명하긴 하지만 저희 집이 북쪽이라 꽤 멀어요. 헨리 스트리트가 의미가 큰 거리죠. 버스킹을 많이 했으니까요.




Q. 아일랜드에 오기 전과 후 스스로가 느끼는 변한 점이 있다면요?


성찬 : 사실 저는 몰랐는데, 아일랜드에서 친했던 형이 바르셀로나에서 한인 민박 스태프로 일을 하러 가셨어요. 그래서 제가 놀러 갔었는데 형께서 저에게 행동을 조심해야 할 것 같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 당시에는 이해를 할 수 없어서 왜인지 여쭤봤는데, 여기는 바르셀로나지만 한인 민박이라 한국이라고 하셨어요. 저는 너무 외국 마인드여서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어요. 두 가지 상황을 예로 들어주시면서요.


첫째는, 9-10시 정도였는데 거실에서 형이 자고 계신 걸 보고 그냥 그렇구나 생각하고 불을 켜고 제 할 일을 했거든요. 제가 생각했을 때, 거실이니까 불을 켜고 일을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뭐라 하시진 않았는데, 제가 들어오기 몇 분 전에 한국인이 들어오셔서 저와 같이 불을 켰는데 형이 있는 것을 보고 불을 끄셨다는 거예요. 그러고 이제 조심스럽게 방으로 가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저는 이제 제 할 일을 한 거죠.(웃음) 근데 그 당시에는 리빙룸이었기 때문에 그게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또, 아일랜드였으면 전혀 문제 될게 없으니까. 그런데 형께서 여기는 한국이라고 하셔서, 형 말이 맞으니까 하고 죄송하다고 했죠.


그리고 두 번째는 그 민박에서 만난 남자분을 처음 봤을 때 허그를 했어요. 유럽에서는 허그로 인사하는 게 자연스럽잖아요. 그런데 초면에 그러니까 당황스러워하시더라고요. (웃음) 아일랜드에서 만난 한국인들과 허그 인사는 자연스러운데, 한인 민박은 완전 한국인 마인드니까 문화가 이질적이더라고요. 그걸 잊고 있었죠.


가장 크게 느끼는 유럽과 아시아 차인데, 자유와 배려의 경계예요. 불을 켜고 제 할 일을 하는 것은 제 권리고 자유지만. 타인에게 피해가 되는 거잖아요. 제 자유를 깎고 배려를 할 것인지. 아시아에서는 자유보다는 배려가 우선순위이고. 유럽 마인드는 배려를 하는 것이 제 권리를 뺏기는 것이니까. 이게 참 뭐가 맞는지 단정할 수 없지만. 제가 아일랜드에 살면서, 나를 먼저 생각하는 마인드가 조금 더 강해지지 않았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국에 있을 때도 친한 친구들한테도 자유롭다는 말을 많이 듣긴 했는데, 행동도 자유롭고, 남들 신경 안 쓰고, 친해지는데 스스럼이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아일랜드와 너무 잘 맞았어요. 그래서 고삐가 풀려서 이제 행동을 조심하라는 소리도 듣고(웃음) 근데 다 이해가 되는 부분이에요. 뭐가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다른 문화니까. 존중해야죠.






Q. 앞으로 아일랜드 생활을 어떻게 할 건지. 계획이 있다면요?

성찬 : 사실 이제 2 주면 여행을 하러 아일랜드를 떠나요.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요. 앞으로 아일랜드 생활은 다른 건 없지만. 제가 워낙 아일랜드에서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라 밖에서 노래도 부르고 하니까, 한국인들과 하는 일도 많고 친한 사람들도 많아서 2주 동안 계속 사람들을 만날 것 같아요. 똑같이 영어 공부하고.


Q. 여행은 어디로 가시나요?

성찬 : 70일정도 여행하는데 버스킹 여행을 떠날 거예요. 에든버러, 런던, 포르투갈 밖에 생각 안 했어요. 나라는 대충 정해놓긴 했는데, 아직 일정은 구체적으로 안정했어요.


Q. 현재 꿈꾸고 있는 일이 있나요?

성찬 : 장래 희망적으로는 수학선생님을 하고 싶어요. 제가 수학을 단순히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서 좋아하는 거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예를 들면 수학을 하고 싶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모의고사를 풀고 있는 거예요. 최근에는 수능도 풀었어요. 오랜만에 푸니까 다 잊어서 어렵더라고요. 제대로 공부를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을 했어요. 애들을 가르치는 일도 재밌고. 원래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좋아하는구나라고 아일랜드에서 깨닫게 되었어요. 시간이 많으니까 저에 대해 깊이 생각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고, 제 미래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것. 자연스러운 부분인 것 같아요.

자세에 있어서는 저는 섹시하다는 말을 최고의 찬사라 쓰는데, 어른들이 아이처럼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 정말 섹시한 거예요. 세인트 패트릭 데이 때, 기성세대 분들이 초록색 옷으로 꾸미고 즐기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그날뿐 아니라 핼러윈 때도 그렇고요.


- 세인트패트릭데이 :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한 패트릭 성인(St. Patrick)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3월 17일에 열리는 축제. 아일랜드뿐 아니라 아일랜드계 이주민들이 거주하는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등 세계 각지에서 퍼레이드가 열린다.
- 할로윈데이 : 아일랜드가 원조인 축제로, 아메리카로 넘어가 지금의 형태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이었으면, 우리 부모님이 그러셨으면 사회의 눈으로 봤을 때 안 좋게 봤을 수도 있잖아요. 참 그런 마인드가 다르다고 느끼면서 그런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유와 연결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자신에 있어서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한국에서는 하고 싶어도 나이가 있으니까, 어떻게 그렇게 하나. 빠져야지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마인드잖아요. 여기는 내가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 같지만, 자유로운 자세로 삶을 살고 싶어요.

직업적 이외로는 언제 실현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와서 갖게 된 꿈인데요. 모든 장르를 꼭 포함하는, 제 음반을 내고 싶어요. 창, 랩, 발라드, 재즈 등등. 한 앨범에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앨범을 만들고 싶어요.

- 수학공식 노래를 만드는 것은 어때요?

성찬 : 그것보다는 제 느낌 가는 것들을 만들고 싶어요. (웃음)



Q. 꿈을 위해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혹은 계획이 있다면요?

성찬 : 자세적인 것은 느낌 같은 거라 계속 변해서 잘 모르겠고요. 직업적인 계획은 한국에 가자마자 다시 선생님 일을 할 것 같아요. 음악적인 것은 뚜렷한 계획은 없지만, 아일랜드는 펍에 가면 라이브 음악이 정말 보편적이잖아요. 아무래도 영향을 많이 받았나 봐요. 보면서 피아노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악기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작곡도 배우고. 랩도, 창도 그렇고, 배우고 싶어요.



Q. 아일랜드에 곧 올 사람들을 위해 혹은 여행자들을 위하여 아일랜드 팁이 있다면?

성찬 : 일단은 목적을 잡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일랜드에 있을 때는 한국과는 다르고, 자기에 대하여 게워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위주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것을 꼭 했으면 좋겠어요. 워킹을 하더라도 남은 시간은 최대한 자신에 대하여 고민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워킹홀리데이를 오셨다고 하더라도 돈이 목적인 것도 존중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아서 만드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저도 그러려고 노력은 했지만 잘 안돼서 그래요.(웃음) 많은 시간을 조금 더 생산적으로 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운동을 해서 몸을 만들거나, 영어 팝송도 많이 배우고 싶은데, 한국 예능이나 영화를 보는 이런 시간에 썼던 게 있으니까. 허투루 쓴 시간을 자책하는 것은 아니지만, 돌아간다면 조금 더 시간을 잘 쓰지 않을까 싶어요.



Q. 본인에게 아일랜드란? 5글자로

성찬 : 지상의 낙원. 저한테는 너무 편안하고. 저를 펼칠 수 있는 무대였어요.








Q. 10년 뒤 이 글을 볼 당신에게 한 마디 하자면요?

성찬 : 만약에 네가 이 순간을 잊고 다시 옛날 마인드로 돌아가서 틀에 박힌 세상이 다인 줄만 안다면, 이 글을 보아라.




Q. 인터뷰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성찬 : 좋네요. 유익해요. 저 스스로에 대해 정리를 해본 것 같아요. 감사해요.




Q.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성찬 : 여기 오시는 분들이 보통 20대가 많은 것 같아요. 사실 저도 말하는 것만큼 못 살아서 찔리지만, 그냥 지르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쫄지말고요. 제가 힙합을 좋아하는데, 어떤 랩퍼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네가 하고 싶은 거 다해. 그래도 그중에 해야 할 것은 꼭 해.’ 그 말이 보편적인 말이지만. 뼈가 있는 말인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것은 하지만 꼭 해야 하는 것은 꼭 하는 삶을 사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버스킹도 자주 했지만 매일 영어공부를 꼭 했거든요. 그래서 저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요.








항상 어른들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와있는지, 얼마나 와있는지 알려주시기 보다는 미래에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그냥 아무나 되고 싶은데 말이다. 지금에 충실하자. 젊은 우리의 오늘은 다시 오지 않으니까. 하고 싶은게 있는데, 막연한 ‘도전’ 같다고 느껴진다면. 너무 늦은 것 같다고 생각된다면. 그 무게를 조금 내려보는게 어떨까? 그냥 해보자. 생각은 나중에하자. 언제나 그렇듯 속도 보단 방향이고, 가고자 하는 믿음만 있으면 못가는 곳은 없으니까. 지금, 여기 더블린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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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터뷰, 글 : 채영(Lu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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