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더블린에서,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더블린 사람들 2018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워홀러, 어학연수 유학생 ; 아일랜드 더블린 한국인 청년 인터뷰 프로젝트
아일랜드 문학가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소설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거나 무시하고 싶거나 부정하고 싶은 우리 마음속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비춰준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게 뭐니?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 속에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리하여 『더블린 사람들』을 읽을 때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이다. 아니, 더블린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스무 살에 읽으면 스무 살의 우리 자신을, 마흔 살에 읽으면 마흔 살의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더블린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반질반질한 거울이니까. 누가 앞에 서든 마음 깊은 골짜기까지 비추는 절대거울이니까.
출처 _ 김경욱 작가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
"지금 여기 더블린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더블린 사람들 2018>의 두 번째 인터뷰이는 무한 긍정 에너지를 뿜는 패션학도 워홀러다. 햇빛을 보기 어려운 우울한 아일랜드 더블린의 겨울 날씨와는 다르게, 어떻게 스스로 빛을 내는 아일랜드 생활을 할 수 있었는지,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9개월 차 은영(24)을 더블린 로컬 카페 카프(Kaph)에서 만나보았다.
은영의 음악 Lcd Soundsystem - Dance Yself Clean
Q.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은영 : 안녕하세요. 18년 올해 국제 나이로 22살 한국 나이로 24살 은영입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왔어요. 대기번호 90번이였어요.
Q. 언제 아일랜드에 오셨나요? 온 지 얼마나 되셨는지?
은영 : 17년 3월 4일에 왔고 9개월 정도 됐어요.
Q. 아일랜드에 오기 전에는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은영 : 패션디자인 전공생이고 쉼 없이 달려왔기 때문에 3학년이 끝나면 휴학을 생각했어요. 항상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어서 무작정 휴학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 여름방학 때부터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했어요. 디자인과이다 보니 과제도 굉장히 많은 와중에 알바도 계속하고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은 다 했던 것 같아요. 성적이 좋아서 받았다기보다는 활동을 많이 하면 받는 그런 활동 위주로 해서 더 바빴죠. 친구들이 현수막이나 팸플릿 같은 것들 만들어 달라 하면 소소하게 용돈 정도 할 수 있는 돈을 받고 만들기도 했고. 그렇게 해서 총 천만 원을 모았어요. 부모님 돈을 받긴 싫었거든요. 돈도 돈이지만, 혼자 힘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간다고 하니 주변에서도 많이 도와줘서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인과응보) 라는 것을 느꼈어요.
Q. 그렇다면 왜 아일랜드 인지?
은영 : 다른 사람들이 안 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대부분 호주, 캐나다는 많이 가시잖아요. 왠지 그쪽은 매력을 못 느꼈어요. 생소하면서도, 영국과도 가깝고, 영어를 쓰는 유럽권인 곳이 아일랜드였어요. 사실 아일랜드를 간다고 하면 어디에 있는지 모르시는 분들도 많더라구요. 지금은 한국인 분들이 많지만, 아이슬란드 아니냐고 물어보시는 분도 꽤 계셨어요. 저도 잘 몰랐으니까요. 그만큼 뻔하지 않은 곳을 찾다 보니 오게 됐어요.
Q. 아일랜드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은영 : 쓸쓸함. 3월에 왔는데 처음 도착한 날 춥고 비가 많이 왔는데 다들 우산을 안 쓰더라고요. 눈치가 보여서 저도 안 썼죠. 택시기사님이 픽업을 오셨는데, 택시 안에서 한마디도 없었고 별로 친절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아 이제 진짜 내가 왔구나' 라는 것을 느꼈어요. 눈뜨고 일어났더니 혼자 버려진 느낌이었죠. 특별히 아일랜드라서 쓸쓸했다고 하기 보다는, 여기 혼자 떨어졌다는 것 때문이죠. 다른나라에 갔어도 처음엔 똑같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Q. 아일랜드에 오기 전 상상했던 모습 어떤가요?
은영 : 사전 정보도 그렇게 많이 찾아 온 것도 아니고. 엄청 지루하고 자연만 있을 줄 알았어요. 고요하고. 실제로 와보니 그래요.(웃음) 고요한데, 알고 보면 고요함 안에 정말 다양하고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이 많아요.
Q. 예를 들면요?
은영 : 처음 아일랜드에 와서 어학원을 다닐 때는 브라질, 타이완, 일본에서 온 친구들을 주로 만났어요. 그러다 보니 아일랜드 문화에 대해 깊게 알지 못하니까 아일랜드에 더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현지 카페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아이리쉬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니 정말 재밌는 거예요. 같이 일하는 아이리쉬 친구들이랑 손님들이 서로 정말 친해서 밴드도 만들어서 음악을 하기도 하더라구요. 이 나라의 영역 속에는 굉장히 활발하고 단단한 문화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함부로 깰 수 없는 그런거. 많은 것을 느꼈어요.
Q. 어떤 카페에서 일을 하고 계시나요?
은영 : 더블린 Drury Street 에 있는 ‘카프(Kaph)’라는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로컬 카페 중에서도 인기가 많은 카페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일을 구하시게 되신 건지?
은영 : 신기하고 좋은 인연으로 시작이 되었어요. 제가 남자친구랑 길거리에서 싸우고, 비를 피하려고 가게 밑에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뛰어오면서 계속 저를 쳐다보는 거예요. 기분이 나빴죠. 왜냐하면 그때 당시 제가 인종차별을 하도 당해서 길 가던 사람이랑 싸우기도 할 정도로 예민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저한테 "너 헤어 모델 안해볼래?" 라는 거예요 갑자기. 웃기잖아요. 그래도 재밌을 것 같아서 겁도 없이 따라갔어요.
미용실 앞에 딱 도착했는데, 처음엔 정말 무서웠어요. 근데 내부가 정말 좋았어요. 알고 보니 아일랜드 내에서 꽤 유명한 곳이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이 1차로 안정이 됐는데, 지하로 따라오라는 거예요. 심장이 콩닥콩닥해서 핸드폰을 꼭 쥐고 따라갔죠. 둘러보니 지하실에는 사진 찍는 스튜디오도 있었고, 전문 시설을 잘 갖추고 있었어요. 제대로 된 곳이 맞는다는 것을 확인했죠. 그때부터 헤어디자이너 친구 폴과 인연이 시작이 됐어요. 헤어모델 일을 몇 번 했을 당시에 한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최저시급도 못 받고 그래서 다른 일을 구하고 있다고 신세한탄을 했죠. 그랬더니 폴이 우리 미용실 옆쪽으로 가면 카프라는 카페가 있는데 거기 cv를 내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폴은 카프 친구들이랑 별로 친하지도 않은 것 같아요.(웃음) 그냥 추천을 해준 거죠. 그 당시에는 지금의 매니저가 웃으면서 미안하지만 지금은 안 구한다길래 당황스러웠어요. 직원을 구하길래 폴이 저한테 추천을 해준 줄 알았는데 말이죠.(웃음) 그렇게 다른 곳들을 구하고 있었는데 한 달 뒤에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인 레스토랑 단톡에 “저 이런 사장님이랑 일 못합니다.” 라고 말하고 나왔죠. 너무 행복했어요. 아빠들이 왜 이직서를 품고 다니는지 알게 됐어요.(웃음) 카프 정말 너무너무 재밌어요.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분위기고요.
Q. 구체적으로 어떤 분위기인가요?
은영 : 처음엔 아일랜드의 모든 일터가 이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카프가 특별한 것 같아요. 같이 일하는 Mona라는 친구가 저녁을 초대한 적이 있어요. 3년을 일한 친구인데 자기는 아직도 카프가 너무 좋대요. 저는 처음 알았지만, 본인이 원래 낯을 가리는 성격이래요.(웃음) 그런데 카프 자체가 분위기가 미치지 않고선 안되는 곳 같다는 거예요.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인 거죠. 3년이나 일한 친구도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너무 좋잖아요. 분위기도 정말 좋고요.
제일 충격이었던 것은 바쁜 이유가 고정 손님들 때문이에요. 단골손님들의 층이 정말 넓고 많아요. 그 이유가 단 하나의 공통사가 있어요. 음악이예요. 재즈를 좋아하건 락을 좋아하건, 우리는 음악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죠. 이 하나로 다 엮여있어서 손님들이랑 직원들이랑 파티를 하고 술을 마시고 서로의 모든 것을 알고 있어요. 그냥 손님이 아니라 정말 친구예요. 너무 신기해요. 또, 영화 싱스트리트, 원스 감독 존카니가 자주 오는데 그 감독이랑 직원들이랑 거리낌 없이 음악 얘기를 해요.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죠. 아마 사인으로 벽이 도배되어 있을 텐데.(웃음)
그리고 이야기 거리들이 정말 많아요. 아이리쉬가 말이 진짜 많은데, 펍만 가도 알 수 있는 게 술 한 잔 시켜놓고 3-4시간 떠들잖아요. 주말엔 손님이 문 밖까지 서있어요. 그런데 단골손님이 왔거나 혹은 새로운 손님인데 말이 잘 통하면 올 스톱이에요. 뒤에 줄 서 있는 손님 신경 안 쓰고 그릇 닦던 애까지 와서 얘기를 해요. 근데 그렇게 늘어지면 뒤에 있는 손님들이 화를 낼 만도 한데, 다들 한마디씩 거들어요. 낯가림이 별로 없고 오픈 마인드라는 것을 진정으로 느껴져요. 특히 손님들이 반갑게 내 이름을 부를 때.(웃음)
Q. 아일랜드 내의 한식당에서도 일을 했다고 하셨는데, 아이리쉬 로컬 가게와 차이점이 있나요?
은영: 일단 모든 게 다 반대라고 보시면 돼요.(웃음) 분위기를 배제하고 본다면 일단 시급이죠. 똑같이 아일랜드 법이 적용되는 곳에서도 왜 한국인들은 최저를 지키지 않는지 의문이 들어요. 물론 모든 한식당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제가 일했던 곳 A한식당은 그랬어요. 직원을 인간으로서 존중하냐 안 하냐의 차이인 거잖아요. 제가 지금 일하고 있는 곳도 일이 안 힘들다고 말하진 못해요. 손님도 끊임없이 오고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어요. 그래도 시급이 좋아서 일을 했을 것 같아요. 분위기가 좋지 않았더라도요. 아일랜드 최저시급보다 더 받거든요. 한식당에서는 법적 최저보다 못 받았고요.
> 아일랜드의 2018년도 최저 시급은 €9.55로 대략 한화 13000원이다.
그리고 한식당에서는 제가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존중을 받지 못했어요. 신메뉴에 케첩이 함께 나가야 하는 메뉴를 처음 서빙하게 됐는데. 케첩을 들고나가서 식탁에 두고 왔는데 사장이 그릇에 담지 않았다고 나와서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손님들도 다 쳐다보고 너무 창피하고 부끄럽고 서러웠어요. 그때 결심했죠. 제가 아무리 진심으로 일했어도 이렇게 존중 없는 피드백이 오면 어디서 일할 수 있는 원천을 찾겠어요. 정 떼는 건 잘해서, 미련 없이 나왔죠.
지금 일하는 곳은 사장님이 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먼저 솔선수범해요. 또, 사장이든지 매니저든지 같이 별에 별 얘기를 다해요. 그 차이인 것 같아요. 우리를 얼마나 사람으로서 리스펙을 하는지. 그 차이에서 많은 것들이 다른 것 같아요. 단지 일꾼으로서 대하는지 아니면 친구가 될 수 있는지.
Q. 아일랜드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 있다면요?
은영 : 저는 유난 떠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생일을 거의 혼자 보내는 편이에요. 작년에는 혼자 백록담에서 보냈고. 어린 시절에 생일파티 경험도 별로 없고요. 이번에는 생일을 혼자 파리에서 보냈어요. 아침 비행기로 집에 돌아왔는데, 부엌문을 열었더니 저를 아는 모든 친구들이 축하한다며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준 거예요. 서프라이즈 파티라는 게 처음이었어요. 남자친구가 주최를 했더라고요. 처음 느껴본 감정이라 가장 기억에 남아요.
또, 가장 좋았던 기억은 헤어디자이너 폴이 카페로 찾아와서 갑자기 런던에 가자는거예요. 헤어쇼에 출전하게 되었는데 저한테서 얻은 영감으로 작업을 선보일거라고. 마다할게 이유가 없어서 흔쾌히 수락했어요. 폴이라면 멋진 일자리까지 만들어준 특별한 인연이니, 항상 행운이 함께한다는걸 믿어 의심치 않았거든요. 같이 갔던 런던 여행은 정말 좋았어요. 살면서 런던 칠성급 호텔에 머물 기회가 얼마나 되겠어요. 그때 폴과 함께 갔던 타이 레스토랑의 사장은 제가 진짜 모델인줄 알고 뛰어나와서, 같이 사진도 찍고 식사도 대접해줬어요. 아직도 서로 잘 연락하며 지내는 중이고요. 지금 생각해봐도 말이 안되는 드라마같은 일들이 저한테 일어나고 있는거예요. 단지 제가 그 길거리에서 폴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요. 폴에게 참 고마워요.
누구나 주변 모든 것은 우연과 행운으로 가득 차 있어요. 다만 그건 잡는 사람의 몫 인거죠. 움직이지 않으면 다 놓쳐요. 이건 사실 제가 좋아하는 책의 한 구절인데요, 그러니 비가 온다고 멈출때까지 기다릴게 아니라 빗속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즐기는게 우리가 할 일이겠죠.
Q. 남자친구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어느나라 사람인가요?
은영 : 클럽이요.(웃음) 한국에서는 클럽을 자주 가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한국에서 저는 비주류거든요. 별로 인기가 있는 타입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여기 오니까 쌍꺼풀 없는 전형적인 동양인 얼굴이 통하는 거예요.(웃음) 그 맛에 다니기 시작했죠. 그리고 아일랜드는 전형적인 클럽이라기보다 펍에서 음악이 나오는 그런 분위기가 좋았기도 했고요. 갑자기 어떤 남자애가 제 팔을 딱 잡더니 '너 너무 예쁘다' 이러는 거예요.(웃음) 별로 마음에 들지도 않았고, 그 당시에 되게 많이 들었던 터라 “나도 알아” 하고 헤어졌어요. 그 다음 주 월요일에 학원에서 반을 바꿨는데 그 남자애가 있는 거예요. 그때부터 시작이 됐죠. 만난 지는 9개월 됐고 브라질 친구고요. 정말 워홀 와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다하고 가는 것 같아요.(웃음)
Q. 국제 연애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요?
은영 : 우선 엄마가 아직도 모르세요.(웃음) 항상 이 친구랑 함께 있는 사진을 보내니까, 걱정 시켜드리고 싶지 않아서 게이라고 했거든요. (아일랜드는 헌법에서 허용하는 동성애를 합법화한 최초의 나라다.) 서로 문화 차이가 있을 때 그것을 말하면 벽에다 말하는 거 같아요. 국제 커플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이해를 할 수 있는 도구가 없는 거죠. 예전에는 엄청 싸웠는데, 이제는 무마하고 마음이 덜 아플 수 있는 이유가, 이해가 안 되니까 그냥 다름을 인정을 하기로 했어요. 이게 정말 힘들었거든요. 한국에 있을 때도, 문제가 생기면 더 크게 만드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별다른 해결책이 없는 거 알고 우리 힘으로 이겨내지 못하는 거면 힘 빼지 말자고 했어요. 둘 다 영어가 모국어만큼 유창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소통에 문제도 있고요. 근데 정말 사랑으로 극복하는 거예요. 오히려 영어를 써서 좋은 장점이 있어요. 꾸밈이 없거든요. 미사여구를 몰라서 못해요.(웃음) 정말 다이렉트로 솔직할 수밖에 없어요. 서로의 본 모습을 사랑해주는 거죠. 좋아요. 영어가 많이 늘기도 했고요.
Q. 아일랜드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요?
은영 : 사람들이 많이 올 때 와서 집 구할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또, 그때는 처음이고 잘 모르고 혼자 떨어진 느낌이니까. 그리고 한국에서는 제가 잘 얘기하고 긍정적으로 잘하면 일이 잘 풀렸거든요. 그런데 뷰잉해서 집이 안 구해질 때, 아무리 내가 100%로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해도 안되는 것이 있다는 게 자괴감이 심했어요. 예를 들면 제가 외국인이랑 같이 사려고 외국인이랑 뷰잉을 해서 잘 안되면 제 영어 탓을 할 수 있는데, 한국인이랑 얘기를 하고 분위기도 좋았는데 잘 안되면 온전히 그건 그냥 저를 탓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무슨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고. 사실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하고 저랑 그냥 안 맞는 건데, 거기서 오는 자괴감이 가장 힘들었고 그 다음에는 굳이 꼽자면 한국인 레스토랑에서 일한 거 그리고 인종차별 외에는 딱히 없어요.(웃음)
Q. 인종차별을 이겨내는 방법이 있다면요?
은영 : 아 할 말 많죠. 그 무섭다는 틴에이저랑도 정말 많이 싸웠고요. 몸도 부딪히면서 싸웠어요. 그런 거 절대 못 넘어가요. 첫 집에 이사를 갔을 때, 같이 살던 언니가 '인종차별은 가만히 있는 우리 몫도 있는 거야' 라고 하시는 거예요. 뭐라고 하면 걔네도 더 심하게 못한다고 하시는 거예요. 이게 정말 위험하지만, 처음이 어렵지 나중에 가니까 괜찮더라고요. 밤늦게 술을 마시고 집을 가고 있는데 새벽에 위험 하잖아요. 뒤에서 누가 오면서 칭챙총 칭챙총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취기도 있었고 용기가 생기니까 한국말로 엄청 욕을 하면서 어디 나라 사람이냐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랬더니 당황을 하더니 자기는 그냥 인사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도망가더라고요. 이게 태도에 변화인 건지 처음에 기가 죽어서 유난히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많이 들었던 건지 모르겠는데. 그 이후로는 다 받아치니까 이제 안 건들더라고요. 자신감인 것 같아요. 고개 숙이고 다니면 오히려 10대들이 더 재밌어하면서 괴롭히는데. 이제 와서 보니까 자신감 있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Q. 아일랜드에서 나만의 장소가 있다면?
은영 : 카프죠. 제 아일랜드의 80%는 카프예요. 또 다른 곳이 있다면, Powerscourt에 있는 le petit Parisien 파이집이요. 여기가 건물 맨 윗층에 위치 해 있거든요. 천장이 다 유리로 되어있어서 채광이 정말 예뻐요. 비가 오면 오는대로, 해가 비추면 비추는대로 참 다른 공간에 와있다는 느낌을 주는 장소예요. 그래서 고민이 있거나 혼자 있고 싶을때 자주 들려요. 한가로이 앉아서 레몬 파이랑 아메리카노 한잔 마시고 나면 생각이 정리되면서 세상이 좀 낭만스럽게 보인달까?(웃음)
Q. 아일랜드에 오기 전과 후 스스로가 변한 점이 있다면요?
은영 : 보이는 것이 변했다 말하긴 힘들지만. 내면에서 무언가가 확실히 변했어요. (웃음) 아일랜드에 오기전에는 여유가 없는 사람이었고, 저를 채찍질하면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었는데 조금 더 여유로워졌죠. 하루쯤 즐기는 것에 죄책감을 안 느끼고요. 예전에는 옷을 살 때도 spa나 보세는 쳐다 보지도 않았어요. 차라리 안입고 말지 하고요. 명품을 고집해서가 아니라 오래가지 않는 것는 안 본다 이런 느낌이죠. 그만큼 즉흥적이고 한정적인 게 싫었어요. 고리타분했죠. 좋은 것을 따져서 샀는데, 이제는 예쁘고 지금 만족할 수 있으면 좋지 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모든 것에 밑거름이 되는 건 경제적으로 풍족해서 그런 것 같아요. 한국에서 용돈도 안 받고 생활력 강하게 살았거든요. 알바를 하는데도 여유가 없고 그러다 보니, 예를 들면 밥 먹을 바엔 경험에 투자하고 그런 편이라 배고픈 나날이였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일주일만 일을 해도 밥 먹고, 옷 사고, 심지어 여행도 갈 수 있는 모든 게 순조로운 곳이죠. 근무시간도 한국보다 적은데 시급은 2배 차이가 나니까요. 그래서 여유가 생겼어요. 정말 떠나고 싶지 않게 해요.
사실 지금도 여유를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아이러니한게 이제는 여유를 가지라고 채찍질해요.(웃음) 그래도 많이 발전한 편이죠. 전에는 뭐라도 해야 되는 사람이었는데, 여기서는 쉴 수 있을 때 쉬자 주의니까. 먹는 거에 이렇게 돈을 많이 써본 날이 없어요. 이제는 뒤도 안 돌아보고 사요. 안 아까워요. 외식도 많이 했고요. 돈 생기면 비행기 티켓 사고 여행 가고 그러니까요.
Q. 여행은 어디 다녀오셨나요?
은영 : 파리 3번, 런던 2번, 암스테르담, 맨체스터, 최근에 바르셀로나 갔다 왔고 앞으로는 모로코랑 아이슬란드를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예요.
Q. 갔던 나라를 자주 가셨네요.
은영 : 네 그렇죠. 이제는 파리를 가면 당황하지 않고 어디가 어딘지 알아서 돌아다닐 수 있어요. 제가 안정성을 이렇게나 추구하는지 몰랐어요. 언제나 에너지를 쏟더라도 새로운 곳을 가는 타입인 줄 알았는데, 진득하게 하는 게 매력이 있더라고요. 이게 나이를 먹어가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웃음)
전에는 제 안의 별이 미치게 빛을 내야 만족스러웠는데, 지금은 적당한 별이 꾸준히 존재하는 것에 만족해요. 한편으로는 그 빛을 잃을까 봐 두려움이 있긴 해요. 하지만 한국에 가면 어쩔 수 없이 빛을 내야 하는 상황들이 많아질 거예요. 예를 들면 귀국하면 이제 졸업패션쇼 작품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이건 열정이 없으면 안되거든요. 뭐 지금은 현재를 즐기며 만족하고 있습니다. 또, 패션을 공부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얽매이고 싶지 않았어요. 패션이 좋아요, 그런데 꼭 패션 쪽에서만 영감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어떻게 보면 지금 커피 만드는 게 재밌어져서 한국에 돌아가서 카페를 할 수도 있는 거고 아무도 모르는 거죠.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다 받으려고 노력하지만, 굳이 좋은 것만을 쫓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아요.
Q. 패션 전공생으로서 아일랜드 패션은 어떤가요?
은영 : 아일랜드 패션 정말 재밌어요. 획일화되어 있지 않아요. 물론 틴에이저들은 어딜 가나 획일화되어 있지만. 적어도 저희 카페에 오는 손님들은 참 재밌어요. 약간 '나 미쳐보여? 니가 뭔데 판단해?' 이런 느낌. 그래서 굳이 제가 학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아도 보기만 해도 공부가 되는 거죠. 한국은 다른 사람이 입는 것을 똑같이 따라 하면서 그것에 자신을 맞추잖아요. 근데 여기는 그게 아니에요. 저희 가게 옆에 아이리쉬 디자이너들 편집숍들이 많아요. 저 옷을 저 가격에 누가 사나 싶은데 다음날 보면 누가 입고 다녀요. 그게 대수가 아닌 거죠. 자기가 좋은 거에 자기 돈 쓰는 거니까요. 아무도 뭐라안해요.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체리티 샵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유럽 사람들이 빈티지를 많이 입잖아요. 그래서 스타일도 독특하고, 그 빈티지가 우리가 생각하는 잘 되어있는 빈티지 숍이 아니라 체리티 샵이에요. 사람들이 영국 놀러 가서 빈티지 옷 사고선 비싸다고 하잖아요. 당연히 비싸죠. 그것도 어쨌든 떼오는 거잖아요. 한국에서도 광장시장 가면 비싼데, 동묘나 아름다운가게 가면 정말 싸요. 여기도 똑같아요. 한국으로 치면 아름다운가게 같은 거죠. 여기 체리티 샵 정말 많잖아요. 정말 옷들 좋은 것들 많아요. 같이 일하는 스티브라는 힙한 친구가 있는데 필름 카메라 좋아하고 LP 판 듣고, 아날로그 감성을 갖고 있는 친구죠. 걔가 가지고 있는 것들 대부분은 다 체리티 샵에서 건져온대요. 심지어 카메라도 10개 정도가 있는데 거기서 다 샀다는 거예요.
체리티 샵 가잖아요? 힙스터 천국이에요. 제가 한국에서 아름다운 가게에서도 일을 했었는데 다 아주머니 분들이고, 위치도 아파트 단지 내고 물건도 별로 없고. 그런데 여기는 정말 천국이 따로 없어요. 한창 빠져있었을 때, 하나에 3유로 5유로? 하는데 20유로까지 썼어요(웃음) 아직도 정말 잘 입고 다녀요. 그게 정말 빈티지인 거죠. 런던 갔을 때도 체리 티숍 많더라고요. 괜찮은 물건들도 많고. 꿀 팁이죠. 남방이나, 겨울옷 특이한거 호피 퍼 자켓 이런 거. 그런데 그만큼 잘 봐야 해요.
그래도 좋은 빈티지 샵 하나 추천해드리자면 Smith field 에 있는 Dublin Vintage Factory가 있어요. 여기는 빈티지 샵인데 키로당 팔아요. 얼만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요 좋은 바지 하나에 6유로 주고 신나게 샀던 기억이 나요. 조만간 겨울 모자 사러 한번 갈 예정이에요. 좋은거 건졌으면 좋겠어요.(웃음)
Q. 앞으로 아일랜드 생활을 어떻게 할 건지. 계획이 있다면요?
은영 : 2달 정도 남았는데, 인터뷰를 진행하시는 채영 님에게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정말 흥미롭고 보통 사람들이 생각만 하지 안 하잖아요. 귀찮으니까. 저도 올 때 돌아갈 때 내 사진집을 만들어야지 책 하나 소장해야지 목표가 있었는데 무산이 됐죠. 돌아가기 전에 저도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이랑 사진 한 장씩 찍고 싶어요. 마음에 깊이 남을 것 같아요. 어디 여행을 갔을 때, 먹었던 음식 장소도 좋지만 그 당시를 만들었던 사람들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요. 삶은 조각보처럼 그 조각 하나하나가 없으면 내 삶도 없는 것 같아요. 아침에 how are you? 한 번 했었던 사람도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제가 다시 아일랜드에 돌아올 수는 있지만, 그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제가 평생 소장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소유욕이 있어서 사진을 한 번씩 찍고 싶어요. 그리고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죠. 한국에서 졸전을 할 준비를 하고, 요즘엔 참 좋아요. 불안함도 없고요.
Q. 현재 꿈꾸고 있는 일이 있는지.
은영 : 일의 시작은 한국에서 하고, 다시 유럽 국가로 나와서 살고 싶어요. 그리고 좀 더 대수롭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집착하지 않고 무소유하면서 정신을 가꾸면서 살고 싶어요. 무슨 절에 들어갈 것 같네요.(웃음) 아일랜드에서 살면서 느낀 거예요.
Q. 꿈을 위해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혹은 계획이 있다면?
은영 : 없어요. 다시 말하면 현재에 조금 더 집중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물론 장기적인 목표는 있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막연히 쫓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Q. 아일랜드에 곧 올 사람들을 위해 혹은 여행자들을 위하여 아일랜드 팁이 있다면?
은영 : 아일랜드에 머물러 오시는 분들께는 아이리쉬 친구를 만드세요. 어떻게든. 그리고 한국인들과의 관계에 연연하지 마세요. 그들하고만 다녔다가는 놓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제 전 과거처럼요. 제가 정말 아일랜드에 왔다고 느낀 순간이 있는데, 같이 일하는 친구들의 친구들이 밴드를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 중 한 명이 단골인데, 공연이 있다고 해서 다 같이 갔어요. 그때 정말 좋았어요. 밴드 팀들이 다 회사원 아니면 본 직업이 있는데, 삶의 균형이 있는 거죠. 우리나라랑 다르죠. 일하는 거에 모든 것을 쏟아서 그런 에너지가 없잖아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투자할 수 있는 에너지. 그런데 사실 이것도 일이 일찍 끝나서 가능한 거죠. 5시, 6시면 끝나니까요. 일터에 몸을 잠시 담갔다가 다시 자신으로 돌아오는 느낌이에요. 전혀 찌들지 않아요. 그리고 그 음악 퀄리티도 좋아요.
여행자분들을 위해서는 더블린도 좋지만, 근교를 가시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저도 많이 가진 않았지만(웃음) 브레이, 호스나 골웨이나 골웨이도 진짜 좋았어요. 헤어디자이너 폴한테도 어디가 좋냐고 물어보니까 코크가 좋대요. 어디를 가든 관광지가 있고, 진짜 사람들 사는 곳이 있잖아요. 아버지가 거기서 살고 계셔서 자주 가는데, 너무 좋다고 그러더라고요. 아일랜드 작은 만큼 근교를 많이 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Q. 외국인 친구들이랑 친해지는 방법?
은영 : 좀 벗어던져도 될 것 같아요. 일반화는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예의를 갖추고 자신을 조금 감추 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안 그래도 돼요. 여기서는 벗어던지는 게 기본인 거죠. 한국에서 그렇게 하면 물론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이왕 왔는데, 조금 자기를 내려놓고 일어나서 흔들면 이제 '야 너 재밌네? 와서 같이 놀자' 하는 거죠(웃음)
Q. 외국인 친구들에게 조심해야 할 행동이 있다면요 ?
은영 : 나이 묻는 거 그리고 너무 부끄러워하는 거. 조심하라기 보다 안 그래도 되는 거죠. 제가 어디 가서 샤이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도 여기서 일하는 친구한테 너는 좀 샤이하니까라고 하더라고요(웃음) 너무 예의 차리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요. 예를 들면 너 이거 먹을래? 하면 아니야 괜찮아가 습관이잖아요. 그게 여기서는 거절이 상처고 배려가 아닌 거죠. 그래! 고마워 하고 받는다고 그 친구들이 배고플게 아니거든요.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긍정적으로 !
Q. 본인에게 아일랜드란? 5글자로
은영 : 여유가 넘쳐. 혹은 급하지 않아. 아이리쉬 타임이 있으니까요.
Q. 10년 뒤 이 글을 볼 당신에게 한 마디 하자면
은영 : 아직도 33이네 은영아, 너무 젊다. 시간은 지날 땐 느리고 지나고 보면 빠르다. 33살의 네가 지금 영국에 살고 있는 것도, 다 오늘이 있어서야(웃음) 10년 전에 내가 선택을 잘 해놓은 거기 때문에 영국에서 살 수 있는 거야. 지나가는 기회를 잡으렴!
Q. 인터뷰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은영 : 정리가 되는 느낌이에요. 더 얘기 하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아요. 제 얘기를 하고 아무 말도 안 하고 귀담아 들어주시니까 재밌네요.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더블린의 겨울은 어둡고 캄캄한 우울한 계절인줄만 알았다. 그런데, 아주 당연하게도 겨울의 햇빛은 아침에 있었다. 많은 빛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당연한 것들을 우리의 기준으로 놓치고 있던 것이 아닐까. 아일랜드에 왔다면, 이곳의 시간에 살자. 마음의 시차를 줄여보자.
지금, 여기 더블린 사람 처럼.
사진, 인터뷰, 글 : 채영(Lu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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