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홀리데이 그 후 1년, 다시 돌아온 유럽
내게 시차 적응 따위는 없었다. 시차 적응을 위한 시간은 사치다. 유럽에 있는 일분일초가 아까우니까. 내가 이 일분일초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데. 얼마나 그리워했는데.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얼마나 열심히 마음을 쓰고. 얼마나 열심히...
오자마자 짐을 두고 러셀 파크에 누워 지나가는 빨간 버스와 나무와 나무 사이에 보이는 런던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얼마나 열심히 라니, 이런 생각 부질없잖아.”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내가 가장 걱정했던 건. 여행자의 감을 잃는 거였다. 그 감을 잃고, 학교 가는 행인 1, 출근하는 행인 1로 살아갈 것 같아서, 그 감을 잃지 그리고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1년 동안 여행하며 만든 그 감은, 1년 동안 일상을 살며 잃기도 쉬웠다.
5박 6일간의 오색찬란하고 세상의 모든 미친놈들이 함께한 캠핑을 마쳤다. 밤을 새우고 아침 7시에 글라스토에서 코치를 타고 브라이튼으로 넘어갔다. 그리고는 브라이튼에서 런던으로 넘어가는 기차를 탔고, 빅토리아 역에 도착해 잠시 쉬었다. 꿈을 꾼 것만 같았다. 빅토리아 역에는 정장 입은 사람들이 많았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그리고 나는 오색찬란한 바지와 글라스토 후드를 입고 있었다. 이 모든 건 대략 15킬로의 짐과 함께 했다. 역에서 코치를 타고 스탠스 공항으로 넘어갔고, 언제나 그렇듯 연착이 되는 라이언에어를 타고 밤 12시가 되어서야 더블린으로 도착했다. 생각보다 입국심사는 수월했고, 심사하는 언니가 더블린에 왜 왔어?라고 물어봤을 때. 너무 보고 싶어서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여행하러 왔어 라고 답변했다. 터미널 1은 짐 찾으러 가는 통로가 너무 길어서 어떠한 감격스러움과 여운은 둘째였고 너무 힘들었다. 그럼에도 정신은 뚜렷함을 느꼈고,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여 동행친구에게 “할 수 있다.”를 외치며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더블린 첨탑. 그러니까 스파이어에 도착했다.
더블린 숙소의 열쇠를 주시기로 한 분이 연락이 두절되었고, 아무래도 시간이 늦었던지 잠시 잠에 들으셨던 거 같다. 10분이 지났나. 조급해졌다. 나는 이 순간 내가 잃고 싶지 않다던 여행자의 감과 현실의 순응한 나의 감이 싸움을 느꼈다. 나는 이게 여행의 이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여행의 이성을 놔버릴 것 만 같았다. 그냥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작년 엄마와 여행했을 때, 밀라노에서처럼. 아이처럼 말이다. 그럴 때 나는 생각했던 거 같다, 나는 스물다섯이고, 그래도 꽤 여행을 많이 해봤고, 이것 따위에 울지 않겠다며. 그리고 느꼈다. 이번 여행에서도 분명 언젠가 울 순간이 오겠구나. 아이처럼 말이다.
연락이 닿아서 잘 들어왔고, 그분은 연신 미안하다고 하셨다. 예민함이 극도로 올라와있는 상태에서 나는 속으로 미안하면 왜 연락을 안 주셨냐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여행의 이성을 찾으며. 괜찮다고 늦은 시간 제가 미안하다고 했다.
5박 6일의 캠핑을 마치고 처음으로 거울을 제대로 봤다. 탔다. 타서 피부가 벗겨지고, 따갑고,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이번 여행에선 얼마나 크고 많은 지혜를 얻으려고.
1일 7월 19년
새벽 세시
더블린 스토니 베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