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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채영 Jan 19. 2018

아일랜드에 눈이 왔어요.

눈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

17.1.18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197일째


What's the story?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을 했다. 이제는 제법 칼질이 익숙하다. 아이리쉬 호텔 레스토랑에서 쉐프 어시스턴트로 워킹을 한지 어느덧 6개월 차. 이렇게나 오래 할지 몰랐지. 어딜가나 일이 고되도, 같이 일하는 사람이 좋으면 떠나기 어려운 법이다. 같이 일하는 쉐프는 스티븐이라는 아이리쉬다. 누가봐도 아이리쉬 이름. 그는 원래 IT계열회사에서 일을 하던 박사였다. 10년동안한 공부에 진절머리가 났다는 그는 포토그래퍼를 자처해 10년동안 세계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또 10년동안 찍었던 사진을 뒤로 한 채, 쉐프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언젠가 이런 과정이 아이리쉬들에게 일반적인것인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와 나는 스무살 차이가 나지만, 사진과 음악이라는 공통점으로 대화의 주제가 끊이질 않는다. 물론 아이리쉬들이 말이 많아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뭐 이유가 어쨌든 우리는 단순한 비지니스관계가 아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우리가 함께 일할 때, 저녁 7시가 되면 항상 듣는 라디오 채널이 있다. 요일별로 음악의 장르가 다른데, 취향이 비슷한 우리는 좋은 노래가 나오면 음악앱으로 찾아보며 정보를 공유할 정도다. 그리고 아무리 친구라 해도 스무살이 많으시니 내게 많은 음악적 지식을 공유해주신다. 정말 내가 꿈꿨던 아일랜드의 워킹홀리데이 생활 아닌가.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좋은 노래가 나오고 창밖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물론 손에는 치킨윙을 만들기 위해 생닭과 칼을 쥐고 있었지만, 나는 행복했다. 좋은 음악을 듣는 다는 것. 그리고 눈이 내린다는 것이 내게는 어떤 의미길래 이렇게나 행복한 걸까.



7시간의 고된 일을 마치고 나오니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오늘 하루를 수고했다고 위로해주는 듯이. 아주 새하얗고, 맑은 눈이였다. 아일랜드에 눈이 쌓인다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 지구가 걱정되지만, 그 잠시 동안은 지구보다는 내가 먼저였다. 미안 지구야.



눈 쌓인 더블린이라니! 감격스러워서 집앞에 있는 누군가의 차에 선물을 드리고 왔다. 아침이면 다 녹아버릴지도 모르겠다만. 눈이 나를 위로 해줬듯이 집으로 가는 길에 누군가가 나의 메시지를 보고 위로를 받았으면 했다. 눈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나의 홈스테이 집으로 돌아오니, 홈대디와 홈맘이 오늘 하루 일과를 여쭤보신다. 일은 어땠어? 힘들었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반갑게 맞이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아주 행복한 일이다. 유학생에게는 특히나. 스티븐에게 배운 아이리쉬 표현을 하나 써본다. 아이리쉬들과 친해지는 방법은 다른게 없다. 그 나라의 문화에 조금 더 관심을 보이는 것. 아이리쉬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이 속담이나 사자성어를 말하면 좋아하니까. 같은 맥락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지금 이 순간들을 돌아보면 너무나 생경할 것 같다고. 소중한 시간들. 소중해서 평생 가지고 싶은데, 모래처럼 꽉 쥐려할 수록 더 놓치기 쉽고, 놓아주려할 때 내 손에 가득 담겨있는 지금 이 순간들. 눈오는 더블린은 너무나 예뻤고. 나누는 음악 이야기들은 너무나 소중했고. 반갑게 맞이해주는 인사들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그렇게 올 것 같지 않았던 돌아갈 시간이 다가옴에 문득 슬퍼진 오늘이였다.





함박눈이 오는 더블린에서.

오늘도 행복해 마지않는

럭키의 아일랜드 워홀 라이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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