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건조기가 안 열린다.
3년 전 이사 오면서 구입한 워시타워.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1도 생각을 못했는데 어제 오후 건조시간 17분이 남았길래 전원을 껐다.
17분쯤 (20분 미만) 덜 돌려도 괜찮다는 생각에 늘 이렇게 해왔다.
전원버튼을 누르고 건조기 문을 열려는데 '어, 안 열리네. 뭐지?'
다시 버튼을 눌러봤는데 '어라, 그래도 안되네.' K-국룰인 전원 껐다 켜기 코드 뺐다 꽂기 다 했는데도 절대 절대 안 열린다.
일단 급한 건 저녁이니까 저녁부터 차리고 퇴근한 남편에게 SOS를 청했다.
한참을 씨름하더니 "안 되겠는데. 기사님 불러야겠다."
그렇게 AS접수를 했고 지금 기사님이 와 계시는데 문을 못 여신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고객님, 솔직히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문을 부숴야 될지도 모르겠어요."
.........
"제가 뭘 많이 잘못했나요? 도와주세요 기사님 아니 다음부터는 절대 미리 열지 않을게요."
기사님은 웃으시며 그런 게 아니라 하셨고 무조건 고쳐드릴 테니 걱정마라셨지만 괜히 17분도 못 기다려서 이 사달이 났나 싶고 전자제품은 복불복이라더니 뽑기 운이 없었나 싶고 조금 더 전문적인 기사님이 오셨으면 고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게 속이 타 들어갈 때쯤
"고객님, 열렸습니다."
"우와 우와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고급스러운 어휘로의 감탄은 언제쯤 할 수 있을까.)
"저도 감사해요. 일이 커지면 저도 힘들거든요."
기계니까 얼마든지 고장 날 수 있고 누구 잘못도 아니고 기사님의 전문성도 이유가 될 수 없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내 탓과 남 탓과 기계 탓까지 3단 콤보를 날리고 있었다.
(기사님의 전문성 운운했다는 건 혼날 일.)
이렇게 한번 또 깨닫고 불평했던 나 자신의 민낯을 확인하고 반성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보냈다.
건조기 기사회생 한 비용 : 48,500
건조기에게.
많이 힘들었니. 하루 푹 쉬고 나니 괜찮니.
종일 써대는 주인 만나 고생이 많구나.
하지만 너의 단짝 세탁기는 열일하고 있잖니.
이 여름에 멈추다니 괘씸하지만 안쓰러워서 한 번은 봐줄게.
앞으로 더욱 가열차게 일해보자.
그리고 세탁기한테 너도 쉬고 싶으면 날 따라 해 보라는 당치 않은 조언은 거두렴.
하루는 쉴 수 있겠지만 그 이후엔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반짝반짝 먼지 앉지 않게 닦아는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