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바로 자기 사랑
정리 정돈을 화가 날 정도로 못합니다. 열 살 아이보다 못하면서도 몰랐어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어요.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근육 만드는 운동도 아니고 이리저리 하다 보면 그게 정리지 뭐. 굉장히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쓸고 닦는 것에 하루치 에너지를 다 쓰는 저라서 덕분에 집에 들어오면 먼지 하나 머리카락 하나가 없네 너무 깨끗하잖아 이런 느낌 입니다만 막상 어디든 열어보면 욕이 나옵니다.
물건이란 쓸 때까지 쓰고 버리면 되는 거지 싶었고, 아이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정리가 잘 안 되는 거라 여겼고, 물건이 차고 넘쳐 정리가 어렵다 여기며 이 핑계 저 핑계를 댔고 냉장고 냉동실도 다 먹고 버리면 공간이 생기는 걸 뭘 그걸 굳이 하는 거야 누구한테 보여줄 것도 아닌데 라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왜 수건 건조해서 개어 놓으면 하루도 못 가 샤워한다고 또 쓰잖아요. 이렇게 효용성 떨어지는 일이 세상에 어딨어 싶게 말이죠. 냉장고도 정리하려고 하면 정리 용기 사서 다 닦아야죠 내용물 넣어야죠 그걸 다 먹고 나면 다시 닦고 다시 넣고의 반복. 그냥 사온 그대로 봉지째 넣으면 왜 안되는데 왜 사서 일을 하는 건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뜬금없이 든 생각이 아, 그게 바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구나 였어요.
캠핑을 가려고 하면 준비할 것들부터 가서 해야 할 일도 많고요 올 때 다시 철수해야 되잖아요.
아니 저렇게 고생스러운 일을 대체 왜 하는 거야 저게 어떻게 전 국민이 즐기는 일이 될 수 있는 거야
시원하게 집에서 누워 티브이 보는 것보다 저렇게 힘든 게 더 좋다는 건가 했었는데요.
어렵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 조금은 더 건강한 식단을 만들어 먹는 일, 몇 시간 뒤에 쓸 거지만 예쁘게 개어놓는 수건 정리, 고집스럽게 정리하는 냉장고와 냉동실, 힘들걸 알지만 잠깐의 불멍을 위해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는 일,
이 모든 것이 자기 사랑이었던 거죠.
이걸 귀찮아하고 왜 하는지 모르고 뽐내고 싶어 저러나 라고 생각했으니 자기 사랑이 얼마나 없었다는 얘기겠어요 정말.
크게 한 대 맞은 거 같아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이런 어른이 되었나 싶어 이제라도 좀 바꿔보려고 자기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보니 셀프 칭찬이 있더라고요.
우리는 (어쩌면 저만) 유난히도 단점에 강한 사람들 같아요. 그것이 나든 내 사람들이든 말이죠. 멀리 있는 남들은 죄다 멋지고 최고 같아 보이는데 나 포함 내 주변사람들은 죄다 허당 같고 허점 투성이처럼 보이는 거 말이에요.
그래서 셀프 칭찬 (어쩌면 제일 어려운 일) 이 필요한가 봐요. 정리 정돈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분야를 참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이것부터 시작인 거 같아요. 전업주부가 정리 정돈을 못한다니 직장인이 나는 일을 정말 더럽게 못해 라고 인정하는 것 같지만 말이죠.
내 사람들에게도 애정을 담아 칭찬을 담뿍 쏟아내야 합니다. (입이 안 떨어지겠지만 말이죠.)
그렇지만 나아질 거야 읽고 쓰는 사람이잖아 라고 칭찬하는 거죠. 세상 와닿지 않고 오그라드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아이를 칭찬하듯 쥐어짜서라도 셀프 칭찬을 하는 거죠.
왜 저렇게 사서 고생을 할까의 시선이 아니고 저것은 자기 사랑 그 자체라고 바라보면 근사해 보이고 따라 해 볼까 싶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까요.
정리정돈조차도 자기 사랑이라니 육아하는 엄마로서 어깨가 무겁습니다만 감사한 것은 이렇게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과 제 사랑을 일단 채워야 육아도 할 수 있기에 이기적인 엄마가 되어도 괜찮다는 안도감이 든다는 것이죠.
푹푹 찌는 주말 저녁 근처 맛집 사장님 손을 빌려 끼니를 해결하면서 정리 정돈에 발을 들여 볼 다짐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