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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좋은그녀 Jul 04. 2023

비 오는 날엔 떡볶이

언제 먹든 그것은 추억

밤부터 내리는 줄 알았는데 비가 오기 시작하네요. 아이도 하교 전인데 말입니다. 혹시 몰라 등교 전 데리러 갈까 하니 양심우산 있으니 걱정 말라더라고요. 그래, 도통 안 꾸미는 에미가 창피했구나. 오히려 좋아. 


활짝 열었던 창문을 닫고 네이버를 보니 비가 제법 온다네요. 하교한 아이 간식 세팅하고 어젯밤 너무 설쳐 낮잠을 자야지 했는데 웬걸요. 비가 오니까 떡볶이가 먹고 싶어 지더라고요. 

아마 쉬었던 요가를 다시 하니 온몸이 달달 떨리면서 밥을 먹어도 배가 고파서 인가 봅니다. 

냉동실에 쟁여두었던 미미네 국물떡볶이를 꺼냅니다. 


제가 주방과 매우 데면데면해서 냉장고 냉동실에 뭘 채워 넣지를 않거든요. 시키면 편하고 맛있는데 쟁여놓으면 해 먹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온 식구가 다 모인 것도 아니고 아이는 매운 음식은 입에도 안대니까 혼자 먹으려고 뭘 시킨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해서 얼마 전 트레이더스 갔다가 미미네를 집어왔어요. 

떡과 어묵과 소스를 다 털어 넣으면 남길 것이 뻔하여 (소식좌는 아닙니다. 밥을 먹었을 뿐입니다.) 반씩만 넣고 대파를 그득하니 넣었더니 냄새가 모락모락 올라오는데 군침이 돌더라고요. 


식탁에 냄비째 놓고 숟가락으로 한참 퍼먹다가 생각이 났어요. 



예전 아파트에서 매일 놀이터에 도장을 찍던 언니가 있었어요. 남편이 카메라 감독이라 해외 출장도 잦고 바쁘다 보니 언니가 아이 둘을 다 케어했는데 이 언니가 얼마나 보통이 아니냐면 분양받아 이사 가면서 대출을 하나도 안 받았어요. 대체 그게 가능한 거냐 물으니 악착같이 모았다는데 몇 년간의 언니 모습이 싹 지나가면서 가능했겠다 싶더라고요. 몇 년째 같은 옷 (심지어 구멍 난)과 같은 신발, 아이들 생일 때는 다이소에서 1,000원짜리 선물, 외식과 배달 심지어 온라인 쇼핑은 완전히 남의 나라 얘기였고 당시에는 '어휴, 아주 부자 되겠다 진짜 살다 살다 이런 사람 처음 본다' 싶었는데 보란 듯이 넓고 좋은 집으로 대출도 없이 이사를 갔어요. 잊지 못할 거예요. 이렇게까지 아껴야 돈 좀 모은다고 할 수 있는 거구나 싶을 정도로 악착이었으니까요. 근데 그 언니가 너무 스트레스받을 때 항상 혼자서 미미네를 끓여 먹는다더라고요. 절대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게 미미네라고. 남편은 바쁘고 아이들 다 재우고 나면 혼자 한 봉지 후루룩 끓여서 맥주 한 캔이랑 먹으면 다시 열심히 살 의지력이 불탄다고요. 


먹어보니 언니말이 맞는 거 같아요. 낮잠을 간절히 원했지만 이렇게 쓰고 있으니까요. 

(이 글은 미미네의 간접광고를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포함하고 싶은 마음만 있습니다.)


멀리 살지도 않는데 서로 이사 가면서 연락이 끊어졌지만 먹다 보니 언니 생각이 나네요. 이렇게나 음식은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독자님들도 냉동실에 금방 끓일 수 있는 떡볶이 밀키트 정도는 하나씩 있으시죠. 비 온다고 기름 냄새나게 하지 마시고 간단하게 떡볶이를 끓이세요. (기름 튄 가스레인지 청소는 싫어요.)


근사하지 않아도 좋으니 어떤 음식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부터 부단히 먹어야 되나요. 

여름이라 다이어트하는 독자님들 많이 계시겠지만 저만의 길을 가겠습니다.

더욱 열심히 맛있는 음식들을 먹어 보겠습니다. 

군침 도는 음식을 보면 제가 생각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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