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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좋은그녀 Jul 29. 2023

헌혈버스에 오르다.

두 번째입니다.

지난번 아파트 안으로 헌혈버스가 와서 해보니 편하더라고요. 이후에 헌혈의 기회가 두 어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맥주를 마신 상태라 할 수 없었는데 마침 오늘 버스가 왔어요.  

고양이 세수만 마치고 신분증을 들고 헌혈하러 갔습니다. 지난번에 사람이 많았거든요. 기다리고 싶지 않아 서둘렀는데 타이밍 아주 나이스 첫 번째 헌혈자가 되었습니다. 

간단하게 이것저것 체크하고 혈압재고 (120에 80 이거 여전한가요? 뭔지는 모르고 하도 많이 들어서 숫자는 외우고 있는데 놀랍게도 119에 80이었습니다. 건강 무슨 일이야.) 철분수치, 혈액형 확인하고 바로 헌혈을 시작했습니다. 잠이 덜 깼는지 지난번보다 훨씬 일찍 끝난 느낌이었어요. 

버스 안 간이침대에 누워서 음악 들으며 창 밖을 보는데 신선놀음 같고 좋더라고요.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전제로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편하게 누워서 창밖으로 보이는 푸릇한 여름날을 마주하니 하루 시작이 이렇게나 뿌듯할 수가 없더라고요. 


꼭 헌혈 아니어도 눈뜨면 잠깐이라도 뿌듯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많이 마련했고 지켰었는데 완전히 다 무너졌거든요. 

아침에 눈떠서 제일 먼저 뭘 하는지가 하루를 결정한다는데 제법 괜찮은 것들을 하고 있을 때는 별 다른 결과물이 없으니 되는 거야 뭐야 괜히 일찍 일어나게 하려는 계략인가 했는데 몇 달을 방황하다가 오랜만에 아침을 뿌듯함으로 열었더니 다시 연초의 그 마음이 몽글하게 올라오면서 어떻게 하루를 시작하는지가 중요했는데 그걸 놓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쩌면 아침을 놓쳐서 하루를 놓쳤고 그렇게 쌓인 몇 달이 저를 우울증으로 만들었나 싶었습니다. 


일찍 일어나야만 하루를 그럴싸하게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어요. 푹 자고 일어난 그 시간이 각자에게 미라클 모닝 인건데 아무것도 모르는 뱁새는 황새를 따라가려다가 가랑이가 찢어지고 그냥 주저앉아버렸네요. 


4시 30분에 일어날 수 없다고 자책 말고 9시에 일어나더라도 그 시간부터 뿌듯함을 줄 수 있는 장치들을 하나둘씩 해나가야겠습니다. 

5개월 남짓 남은 2023년을 그냥 보낼 수 없으니까요. 


헌혈버스에는 저 포함 8명 있었는데 전부 아저씨였고 혼자 아줌마였어요. 이 또한 뿌듯했고요. 여름에는 혈액이 더 필요하대요. 덕분에 문화상품권 한 장 더 받았습니다. 아이는 신나고 엄마는 뿌듯한 주말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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