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상담보다 드라마가 필요한 순간, 두 번째 작품은 '갯마을 차차차'다.
나는 드라마나 영화를 웬만하면 두 번 이상 보지 않는다. 스토리를 좋아하지만 다시 작품을 볼 때 설레는 그 감정을 재경험 할 수 없기 때문에 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유일하게 3번 이상을 봤던 작품이 '갯마을 차차차'였다. 한 번은 그저 재미있어서, 두 번은 인물들에 공감하며, 세 번째는 나의 삶을 돌아보며 즐겼다.
내가 내담자들에게 '갯마을 차차차'를 추천하는 경우가 몇 가지 있다.
1.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에게
상담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사람들에 대해서 '좋아 아니면 싫어'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구체적으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특정 인물을 좋아하고 싫어하는데 다양한 이유와 그만의 규칙, 신념들이 있지만 결국 그 핵심을 보면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상대의 모습만을 받아들이고 싶다'는 말이다. 우리 안에는 '좋은 나', '나쁜 나', '까칠한 나', 등의 다양한 모습들이 있다. 여기서 더 쪼개면 비열함, 선함, 아름다움, 비겁함, 자신감 등.. 개인에게는 수없이 많은 모습들이 있다. 이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고 특정 인물에 맞춰 맞춤식으로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한 개인의 안에는 좋고 나쁜(주관적으로) 모습이 섞여 있기 때문에 일차원적으로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갯마을 차차차'에는 이런 입체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잊힌 가수 '오윤'의 헤픈 모습 뒤에는 딸을 홀로 키워야 하는 아버지로서의 책임감과 가수로써의 희망을 잃고 싶지 않은 간절함, 잊힌 가수라는 열등감 등이 있었다.
정의롭고 능력 있지만 다소 까칠하고 자신만의 경계를 지키는 치과 의사 '윤혜진'의 뒤에는 자신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행동하고 지키며 살아냈어야만 하는 신념과 그로 인한 행동들이 있었다.
드라마뿐만이 아니다. 실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행동도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을 보면 분명한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순간의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좋고 싫음으로 한 사람을 판단하고 밀어내며, 거부한다. 한 사람의 행동과 말에는 많은 아픔, 규칙, 신념, 사랑받고 싶음 등이 녹아있다. 그래서 행동을 관찰하되,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바라보아야 비로소 상대를 이해할 수 있다.
2. '나'라는 존재를 지키면서 성격을 발달시켜야 하는 이에게
사람들은 흔히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다', '사람은 안 변한다'라고 하지만 심리학의 관점에서 사람의 성격은 분명히 발달한다. 물론 개인의 차이도 존재하고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지는 않지만 말이다.
치과의사 윤혜진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지켜보면 흥미롭다. 작품의 후반부까지도 윤혜진의 신념이나 규칙을 포함한 특유의 '까칠함'은 여전히 살아있다. 여전히 사람과 섞여 들어가는 게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을 경험하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면서 윤혜진의 성격은 조금씩 발달한다.
사람들은 성격이 바뀐다는 것을 자신이 알던 모습과 완전히 바뀌는 것을 떠올리기 쉽다. 이런 경우 정말 극적인 사건을 겪었거나 일시적인 변화로 지속성이 떨어진다. 건강한 성격의 발달은 어떤 '고집'안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정체성을 조금씩 이해하고 수용하며 끊임없이 확장해나가야만 한다. 항상 머릿속에 '그럴 수 있다'라는 말을 반복하면 한 번쯤은 더 돌아볼 수 있다.
이 외에도 '갯마을 차차차'가 주는 메시지들은 너무 많다. 사람에 대한 이해, 따뜻함, 공감, 사랑, 등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싶다면 꼭 추천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