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상담보다 드라마가 필요한 순간, 네 번째 작품은 '사이코지만 괜찮아'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인물을 보면 프로이트의 정신 구조를 인물화 시켜놓은 기분이 든다.
생존 본능과 같은 쾌락을 추구하는 원초적 욕구 '원초아'는 어디로 튈지 모르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여주인공 '고문영'을 닮았다.
규칙과 도덕적 원리에 따라 움직이고 늘 원초아를 감시하며 통제시키려고 하는 '초자아'는 남주인공 '문강태'를 닮았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원초아'는 늘 쾌락을 경험하기 위해 요구하고 '초자아'는 그런 원초아를 제지시키며, '자아'는 중간에서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상담에서는 이러한 역동, 마음들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 과도하게 충동적인 삶을 사는 사람의 끝은 외로울 수밖에 없고 규칙과 신념으로 감정을 억압하며 로봇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정서적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조용히 몸부림친다.
'문강태'는 장애를 가진 형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억압하고 희생하며 살아간다. 아니, '살아내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에게 들어온 규칙과 신념을 앞세우고 형에 대한 죄책감을 갚기 위해 자신의 욕구보다는 형과의 삶에 더 집중한다. 반복되는 일상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사실 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욕망이 숨어있다. 그러던 어느 날 충동적이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고문영을 만나면서 억압하던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게 되고 문강태의 삶은 조금씩 변화한다.
고문영과 엮이면서 새로운 사건들을 만나고 깊숙이 자리 잡은 트라우마가 시작된 장소로 돌아간다. 다시 돌아온 그곳에서 다양한 마음의 고통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엮이면서 마주하지 않았던 자신의 마음을 조금씩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이 드라마를 상담의 관점에서 보면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어느 한 점에 치우쳐 있다. 하지만 한 명도 빠짐없이 치우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사건과 마음의 상처들을 지니고 있다. 다양한 주제가 있지만 결국 이 드라마는 '트라우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를 문강태와 고문영의 삶에서 보여준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모두 마음의 상처 겪는다. 사람은 모두 여리다. 드러내는 방식의 차이가 있을뿐이다. 하지만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은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숨기기 바쁘다. 숨겨진 마음의 상처는 암세포처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라나다, 문득 깨달았을 때 삶을 무너뜨린다.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트라우마를 해결함에 있어서 상처를 인정하고 표현하며, 기댈 수 있는 사람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이 드라마가 애써 외면해 온 당신의 상처와 마주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