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포럼
아씨시에서 도착한 후 떼르미니 역에서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가는 길목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동상을 보았다. 교황복을 넓게 펴서 안아주는 모습으로 만들어져 빈 공간에 들어가 위로받게 만들어진 매우 독특한 동상이었다. 비록 로마가 이제는 교황의 정치적 통치를 받지는 않지만, 영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동상이었다.
짐을 풀고 예약했던 워킹 투어에 참여하였다. 워킹투어는 스페인 광장에서 콜로세움까지 가는 것이었는데, 이탈리아 남부 시실리 출신 가이드의 열정적 설명으로 즐겁게 따라다닐 수 있었다. 그는 로마에서 황제가 죽었을 때 신격화하는 의식에서 사용되는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고, 로만 포럼 유적지에서는 디지털 복원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가는 길에 곳곳에서 지역의 수호성인 조각을 볼 수 있었는데,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지금 젊은이들에게는 그러한 조각에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았다.
간단한 워킹 투어를 마친 후 콜로세움으로 들어갔다. 콜로세움은 잘 알려진 대로 넓고 컸다. 그러한 건축물이 고대에 지어졌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기본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는 게 더 놀라웠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이태리인들은 건축물을 종종 재활용한다고 한다. 콜로세움도 재활용 용도로 사용하려 했는데, 한 교황이 그렇게 콜로세움의 자재를 분해해서 가져가는 것을 막았다 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원형경기장으로의 활용은 로마시대 이후 없었고, 상가건물로도 쓰이고, 작은 교회도 그 안에 짓고, 요새로도 쓰이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형은 참 잘 지켰다는 게 자못 신기했다. 콜로세움의 벽에 수 천년의 역사가 스며들어있다 생각하니 벽 하나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살짝 설레었다. 수많은 로마 시민들이 그곳에 와서 다양한 볼거리를 구경하고, 소리 지르고 했던 그 공간, 중세인들이 물건을 사고팔았던 그 공간에 이제는 볼거리 살 거리가 없어도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이제는 콜로세움 그 자체가 볼거리이다.
큰 경기장이 덜렁 있는 콜로세움에 비해로만 포럼은 잔해만 남았지만 더 흥미로왔다. 뼈대만 남은 그 유적은 그 텅 빈 공간만큼이나 넓은 상상의 여지를 남겨주고 있었다. 로마시대의 도심 상가 지역이었던 로마 포럼 유적에는 세 개의 큰 바실리카(공공건물)와 여러 종교적 시설들이 있었다. 바실리카는 지금식으로 말하면 쇼핑몰 같은 곳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쇼핑도 하고 모임도 갖고, 때로는 종교적 의례도 행했다. 종교적 활동은 로마인들에게 일상이었던 것 같다. 공공장소에서 종교의례도 행하고 번화가에 많은 신전과 전설을 지닌 신성한 공간이 있다는 것은 로마인들에게 종교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설명해주고 있다. 로마 시대의 신전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로마 신화 속의 신에게 봉헌된 신전 과신 성화된 죽은 황제에게 바쳐진 신전이다. 로만 포럼에는 쥴리어스 시저의 신전과 다른 황제 부부의 신전의 잔해가 아직 남아있다. 뛰어난 인간을 신으로 모시는 일은 로마나 머나먼 동양의 나라에서나 다를 바 없는 관습이었던 것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참으로 종교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로마 시내 곳곳에 있는 다양한 수호신들의 표식과 많은 성당들을 보면 이는 단지 고대 로마만의 특징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후에도 교황의 통치하에서 많은 성당이 지어졌고, 여전히 이어지는 순례객으로 인해 종교성지로서의 위치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역사적 상황에 따라 숭배의 대상은 달라졌지만 믿음은 로마를 중심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참으로 종교의 힘이란 놀라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