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내일

베네치아로 고고

by 루시

인생이란 예측불허다. 내가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웠어도 나의 실수로, 또는 예기치 못한 외적 요인으로 계획이 어그러지기도 한다. 때론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로마에서 친구 안나가 사는 베로나로 가는 저녁 기차를 예약하고 떼르미니 역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10분 전인데도 열차 시각표에 기차 이름이 뜨지 않아 근처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티부르티나 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라 한다. 로마에 또 다른 역이 있었다니. 플랫폼 입장 시 티켓을 검표했던 역무원에게 확인했을 때에도 이 기차역이 맞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낭패였다. 결국 기차를 놓쳤다. 다음날 다른 친구인 테레사와 베네치아에서 아침에 만나기로 했는데, 난감했다. 자책할 틈도 없었기에 기차표를 알아보았더니, 기차가 딱 두대 남았었다. 막차와 새벽 5시 40분에 도착하는 야간열차. 막차는 너무 비싸서 살 수 없었기에 안 나와 통화를 한 후 두 시간 가량을 줄 서서 어렵사리 야간열차표를 샀다.


여행 계획을 짤 때 야간열차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한 적이 있었으나 겁이 많은지라 포기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발생해서 야간열차 침대칸을 이용해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의 덤벙거림과 실수로 인해 금전적 손해를 보며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라 자책해야 할까? 아니면 나의 무의식적 소망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할까?

자다 깨니 기차가 섰다. 물어보니 베로나란다. 허둥지둥 짐을 챙겨가지고 나왔다. 역사 앞으로 나오니 로마와는 달리 깔끔한 풍경이 펼쳐진다. 저 멀리 안나가 오는 게 보였다. 안나는 이전 룸메이트로 폴란드 출신의 과학자이다. 얼마 전 학위를 마치고 베로나에 있는 외국인 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친다. 친절한 그녀의 배려로 그녀의 집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기로 했다.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먹거리를 챙겨서 안나와 함께 베니스로 향했다. 거기에서 또 다른 친구인 테레사를 만났다. 안나의 친구인 테레사는 베를린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나의 베로나 방문 소식을 듣고 시간을 쪼개서 와 주었다. 안나는 나 보다 한 학기 먼저, 테레사는 2년 먼저 미국을 떠났었다. 우리가 헤어질 때 우리는 만남을 기약할 수 없었다. 그 둘은 유럽 출신이고 나는 아시아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어느 우리가 1-2년 뒤 다른 곳도 아닌 베니스에서 다시 만나리라 꿈도 꾸지 못했었다. 삶이란 오묘하게도 이렇게 인연을 이어준다.




베니스는 이국적 도시 그 자체였다. 그 이국적 느낌이 좁은 골목의 불편함도 비릿한 물 냄새도 잊게 만들어주었다. 기차역을 나오자마자 물길이 앞에 있고, 물 건너편에 교회가 마치 절벽 위에 서 있듯이 물 가 끝에 지어져 있었다. 어디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건축이었다. 현관을 나서면 바로 물인 독특한 건물 구조가 마냥 신기했다. 이곳 사람들은 아마도 어릴 적부터 물과 어우러져 살아서 이 물이 무섭지 않겠지만, 내게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물이 조금 두려웠다.

건물 사이에, 물위에 걸린 빨래들.


베니스는 상당히 복잡했고 예측 불허였다. 지도를 보고 찾기도 쉽지 않았고, 이정표 또한 불분명했다. 이쪽으로 가면 길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가보면, 길이 끊기고 물이었다. 이정표는 오른쪽으로 가라는 건지 왼쪽으로 가라는 건지 양쪽을 모두 표시해 놓기도 했다. 그곳에서는 헤매는 것을 당연시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즐기기가 좋았다. 골목골목이 비슷한 듯 다른 흥미로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무역의 중심지였던 역사 때문인지 명품점들과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 좁은 골목골목에 각양각색의 세계 명품점들이 모여 있다. 그곳에서 우연히 허름한 에스프레소 집을 발견해서 아주 싸고 맛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셨다. 베니스의 비싼 물가 치고 에스프레소가 1유로밖에 안 했는데 진하면서도 깔끔했다. 아마 다시 찾으라 하면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한참을 헤매다가 산 마르코 대성당에 도착했다. 다른 이탈리아 성당과는 달리 이국적인, 이슬람 사원의 둥근 돔과 새하얀 벽을 가지고 있는 아주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마르코 성인의 상징으로 사자 동상이 여기저기 많았는데, 중앙이 하얀색과 대비되는 파란색 바탕 안의 황금 사자는 색의 대비 탓인지 유독 더 힘 있고 강인해 보였다. 내부는 황금빛으로 찬란해서 베네치아의 부유함을 간접적으로 증명해주고 있었다.


우리가 앉았던 물가 옆에 있던 식당

긴 걷기를 마치고, 물가에 앉아 물의 도시를 즐겼다. 이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헤어짐을 갖게 된다. 친구들과 베니스의 알 수 없는 길은 따라가다 산마르코 성당을 찾은 것처럼 또 인연이 되면 어디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만남은 옆의 레스토랑에서 가수가 부르는 오래된 팝송처럼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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