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로마

스페인광장과 트레비 분수

by 루시
2016-05-25 06.38.45.jpg 베네치아 광장의 통일 이탈리아 건국 기념 건물

대부분의 시간을 바티칸시티 여행에 쏟았지만, 로마에 왔기에 로마 구경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이른 아침 여행이었다. 로마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6시경에 숙소를 나서서 로마 시내로 향했다. 이른 아침의 로마의 풍경은 한낮의 번잡함과 달리 평화롭고 고요했다. 거리는 텅 비었고, 버스는 한산했다. 베네치아 광장 (Piazza Venezia)에 내려 이태리 왕국을 세운 황제의 상과 거대한 계단을 보았다. 건국 기념 기념물답게 웅장하고 아름다웠으나 내 마음을 끌지는 못했다. 그 광장 뒤에 더 멋진 캄파돌리오 광장이 있는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기에 바로 스페인 계단, 트레비 분수로 향했다.


이른 아침 스페인 광장의 공기는 상쾌했다. 오드리 헵번의 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진 스페인 계단이지만, 사실 계단 위의 성당은 프랑스에서 지은 성당이라고 한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미묘한 긴장관계가 건축물의 배치에도 드러나 있었다. 스페인 계단에 올라가고 싶었지만, 이른 아침이라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박물관도 아닌데, 계단이 개장시간이 있다는 데 실망하고 광장을 돌아보았다. 아마도 공사 중이어서 그런 듯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없어서 텅 빈 계단을 오롯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염시태 기념비

스페인 광장 한편에 길게 솟은 기둥 위 성모상이 내 눈에 띄었다. 어머니께서 레지오 마리에(마리아의 군대)라는 교회 모임에서 봉사활동을 하셨기 때문에 나에게는 성모 마리아가 가깝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여행 중에 성모 관련 예술품에 눈이 많이 갔었다. 스페인 광장의 건축물은 무염시태 성모 기념비(Column of Immaculate Conception)였다. 무염시태란 원죄 없이 예수를 잉태하였다는 의미이다. 잘 알려진 대로 그리스도교에서는 인간이 지은 원죄를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임을 당함으로써 대가를 대신 치러 그로 인해 죄의 사함을 받다고 믿는다. 원죄는 근원적 죄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짊어지고 태어나는 죄이다. 최초의 인간 커플 아담과 이브가 신이 금지한 선악과(실제로는 사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금지한 명령을 어긴 아담과 이브는 하느님의 분노를 사서 낙원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 그 후 여성은 출산의 고통, 남성은 일의 고통을 받게 되고, 영원한 삶을 박탈당해 한정된 삶을 살게 되었다.


기념비의 수태고지 부조

분노한 하느님의 용서를 위해 예수가 이 세상에 오게 되는데, 그는 하느님의 성령으로 마리아라는 여성의 몸에 잉태되어 태어났다. 비록 하느님의 성령으로 잉태되었지만 원죄를 가진 어머니로부터 예수가 태어났다면 그의 순수성은 퇴색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신학적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예수의 원죄 없음을 강조하려다 보니 자연히 그 어머니가 원죄를 끊어버린 신성한 존재로 인정하게 되었다. 1854년 교황 비오 9세가 회칙에 무염시태 성모 마리아라는 것을 교의에 확정했고, 스페인 광장의 기념탑은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1857년에 세워진 것이었다. 개신교 신자들은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앙을 폄하하지만, 교리 발전사를 보면 성모 마리아의 신성화는 당시에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할 수 있다.


스페인 광장을 떠나 너무나 가보고 싶었던 트레비 분수로 향했다. 예전 잠실역 지하의 트레비 분수를 보면서 언젠가 로마에 가서 진짜를 보고 싶다 했는데, 야외에 있는 실제 트레비 분수는 훨씬 거대하고 웅장하며 아름답고 시원했다. 조각도 모조품보다 훨씬 생동감이 있었고, 물은 연 하늘색에 맑고 아름다웠으며, 물 떨어지는 소리는 거대한 폭포수의 소리 같았다. 특히 말 조각상은 지금 막 물을 박차고 나오려는 듯 에너지가 넘쳤다. 아름다운 명소에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이 적어서 처음에는 이제는 인기가 없는 곳이 되었나 생각했는데,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 것뿐이었다. 나중에 로마 걷기 투어팀과 함께 왔을 때의 트레비 분수는 시장통이 따로 없었다. 아침에 느꼈던 그 신성함과 고요함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2016-05-25 07.52.58.jpg 트레비 분수의 뛰어나오는 말

빡빡한 일정으로 인해 이른 아침에 잠깐 둘러본 로마 명소들이었지만, 이른 아침이었기에 명소 그 자체의 분위기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관광객이 사라진 아침의 로마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고대의 유적부터 현재까지, 전 시대의 유적들이 조화를 이루며 도시를 멋진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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