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이란..

아씨시

by 루시

수녀원에 짐을 푼 뒤 저녁시간 전에 마을 구경을 했다. 아씨시는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꼬불꼬불 골목길들, 작은 조약돌들이 깔린 바닥, 나지막하게 지어진 이층 돌집들, 소박한 느낌의 아름다운 성당들, 마치 내가 마법에 걸려 중세시대로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마을의 제일 아래에는 프란체스코의 무덤이 있는 성당(Basilica of San Francescod'Assisi)이 있고, 제일 위쪽에는 그의 설교에 매료되어 여성을 위한 수도 회를 창설했던 클라라의 무덤이 있는 성당(Basilica of San Chiara)이 있었다. 그 외에 두 사람이 어릴 적 세례를 받았던 성당(San Rufino)과 프란체스크가 태어난 장소라고 추정되는 장소에 지은 성당(Chiesa Nuova), 로마시대 때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사원이었던 성모 성당 (Santa Maria sopra Minerva) 등 조그만 마을에 참으로 많은 성당이 있었다. 클라라 성당 앞 광장은 전망이 좋아서 아씨시 마을과 그 주변이 한 눈 안에 들어왔다. 평화로운 아씨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해졌다.


광장 앞 회전목마의 성모자 그림

광장 한 구석에는 회전목마가 있었는데, 회전목마 위쪽 그림도 성모 마리아, 프란체스코 성당 등에 종교적 그림이 그려져 있다.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마을답게 작은 것 하나하나도 섬세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숙소로 머문 수녀원은 조용하고 깔끔했다. 호스텔에서 머물다가 이 곳에 오니 호텔에 머무는 느낌이었다. 식사는 수녀원에서 준비한 저녁을 먹었는데, 작은 파스타가 든 수프, 샐러드, 돌돌 말린 쇠고기 요리가 와인과 함께 나왔다. 이름 모를 음식들이었으나 음식은 정갈하고 맛있었다. 테이블은 한국인들과 외국인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그만큼 한국인에게 유명한 수녀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스페인에서 이냐시오의 길 성지순례를 마친 목사님과 예수회 신부님과 함께 했다. 목사님은 자상하셨고, 신부님은 거침없이 직선적이셨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내가 물었다.

“스페인에서 순례길 순례하고 왔어요. 산티아고 말고 이냐시오의 길이라고 잘 알려지지 않은 길이에요”

“순례길 멋지네요. 저도 사실 이번에 산티아고 순례길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 반대가 심하셔서 포기했는데…” 나는 아쉬운 듯 말을 흐렸고, 이에 신부님께서 물으셨다.

“부모님 말씀 들을 나이는 지나지 않았나요?”

너무 직선적인 신부님의 반응에 나는 순간 당황했다. 그 말이 사실이니까.

“하하 그렇죠. 그래서 제 여행의 화두가 어떻게 하면 부모님의 기대와 제 자신의 바람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 가예요.” 대답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부모님과의 관계가 나에게 큰 숙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목사님께서 온화한 표정으로 나를 보시며 말씀하셨다.

“본인이 행복하게 사는 게 바로 부모님께서 원하시는 것일 거예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마음속에서는 아.. 근데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번 여행의 화두는 ‘나의 행복은 무엇일까’가 되어야 했던 게 아닐까?


두 분의 순례 여행을 재미있게 들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레 다음 날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전 내일 로마로 다시 가요. 수녀원 숙박 가능 날짜가 오늘 밖에 안되어서 일정을 다시 로마-아씨시-로마로 짰거든요. 조금 복잡해도.”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요?”신부님께서 물으셨다.


아.. 또 돌직구. 당황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 대답을 안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신부님의 질문은 내 마음에 남았다. “왜 난 자꾸 복잡하고 힘들게 살까?” 당시에는 나의 욕심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생각해보면 나 자신에게 기대를 하는 건 부모님보다도 나 자신이고, 나는 그것을 말함으로 부모님의 기대치를 높여갔다. 그리고 거기에 못 미치는 나 자신에 대해 나도 실망하고, 부모님도 실망하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말할 때 유난히 힘든 일정처럼 이야기했다는 생각이 든다. 복잡하고 힘들면 그냥 안 하고 쉬운 길을 가면 되는데 하고 싶어서 선택했으면서 힘들다고 불평하고 있었다. 그러니 남들이 보기에 왜 저렇게 힘들고 복잡하게 살까라는 생각이 들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프란체스코 성당 6시 미사에 참석하였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이태리어이지만, 가톨릭의 미사 예식은 세계적으로 언어는 달라도 똑같은 예식을 진행하기 때문에 전혀 문제없이 따라갈 수 있었다. 이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와서 미사에 참석하여 예수를 기억하고, 프란체스코를 기억했다고 생각하니 그 미사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나의 사건은 발생했다가 사라지지만, 그 사건이 발생한 장소는 대부분 그 자리에 계속 남아있다. 기억을 저장하는 공간이라.. 신비롭다.


산 다미노로 가는 길

미사 이후 프란체스코가 예수의 발현을 목격하고 음성을 들은 자리에 세워졌다는 수도원(San Damiano)으로 향했다. 그 수도원은 또한 클라라가 클라라 수도회원들과 머물며 기도하던 곳이기도 하다. 수도원 가는 길은 유난히 새소리가 컸다. 그곳에서는 누구나 새와 함께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가는 길 내내 새소리가 들렸다. 프란체스코가 새와 대화했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 생각했다. 수도원은 작았지만, 아기자기하게 예뻤다. 조그만 예배 보는 곳, 클라라가 머물고 임종했던 방들, 잘 가꿔진 중앙정원 등 기도를 하고 수행을 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신앙이 무엇이길래, 모든 영화를 버리고 이런 작은 공간에서 청빈한 삶을 살며 기도하는 삶을 살았을까? 그 삶이 아마도 그들에게는 행복이 아니었을까?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아씨시로 가면 먼가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씨시로의 여행을 하기 위해 나는 일정을 복잡하게 만들었었고, 갈 때도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아씨시에 도착했다. 내가 그곳에서 본 것은 프란체스코와 클라라가 살았던 그들의 행복한 삶이었고, 그들을 방문하며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이었다. 나도 그 공간에서 행복감을 느꼈지만, 여전히 내게는 질문이 남았다. “나 자신을 계속 행복하게 하는 삶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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