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의 특별한 경험

성체성혈 축일미사

by 루시


아씨시로 가기 전 간단하게 가까운 세 성당을 방문한 뒤, 나머지 성당들은 아씨시를 다녀온 뒤 방문했다. 아씨시에 갔다 온 뒤에 머문 숙소는 떼르미니 역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그래서 숙소에서 가까운 성모 대성당(Basilicadi Santa Maria degli Angeli e dei Martiri, 천사들과 순교자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으로 향했다.

천사들과 순교자들의 성모 대성당

유적처럼 부서진 듯 보이는 입구와 달리 안은 크고 매우 화려했다. 천사들과 순교자들을 위한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진 성당인지라 대부분의 그림들이 천사, 성모 마리아, 순교자들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 성당에는 중세 때 사용한 자오선이 있었고,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진자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실험을 할 때 썼던 추가 있었다. 성당 내부가 매우 넓어서 갈릴레오가 그 공간을 실험을 위해 사용했다고 한다. 이런 곳을 성지순례 성당으로 했다는 데 의아해했었는데, 다음 날 알고 보니 앞의 성모 성당이라는 이름만 보고 내가 잘못 안 것이었다. 아뿔싸 로마에는 큰 성모 성당이 두 개 있었다.


이어서 성 바오로 대성당(BasilicaPapale San Paolo fuori le Mura)으로 향했다. 로마 시내의 다섯 성당은 아니었지만, 로마 4대 성전 가운데에 하나였기 때문에 가보았다. 그런데, 문을 닫았다. 성당이 6시에 문을 닫아서 들어갈 수 없다니… 허탈했다. 그래 서성 요한 대성당(Basilica di San Giovanni in Laterano)으로 향했다. 성요한 대성당에 이르니 많은 인파가 모여서 행사를 하고 있었다. 물어보니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Santissimo Corpo e Sangue di Cristo) 미사라고 한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미사 전의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재미있을 것 같아 참석하고 보니, 프란체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였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일이 있을 줄이야.


프란체스코 교황은 역대 교황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교황이다. 내가 다시 성당에 나가기로 마음먹은 데에는 그가 교황이 된 것도 한 몫했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교황이 되었을 때, 나는 같이 살던 룸메이트 안나로부터 그 소식을 들었다. 안나는 그가 얼마나 멋진 분이신지, 게다가 가난한 자들의 성인인 프란체스코를 교황의 새 이름으로 사용하기로 했다며 기쁨에 차서 이야기를 했다. 안나의 이야기를 들은 후 나도 그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검색을 통해 알게 된 그의 행적은 놀라웠다. 검소하고 겸손하고 사회 부정의에 저항하시고,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을 가진 예수회 출신의 교황. 솔직히 그런 분께서 교황이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너무 놀랐다. 신이 정말 존재하긴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들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그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석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뻤다.

성모 대성당으로 가는 행렬

미사는 길었지만, 재미있었다. 미국에서 성가대를 할 때 그레고리안 성가를 불렀었는데, 그 경험이 미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레고리안 성가의 악보는 보통의 오선지에 그리는 악보와 달리 네 줄이 그려진 악보로 네우마 악보라고 불린다. 그 악보를 보는 법도 배웠었고, 몇 가지 노래는 이미 여러 번 불러본 적이 있었기에 마음껏 성가를 따라 부르며 미사를 즐길 수 있었다. 미사 이후 성모 대성당 (Basilica di Santa Maria Magiore)까지 걸었다. 도로는 행렬을 위해 통제되었고, 길가의 건물들에는 행사를 기념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촛불의 행렬은 아름다웠고, 그들이 부르는 성가는 로마 시내를 울렸다. 짧은 길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전 로마가 하나가 되어 축제를 치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로마 시내의 큰길을 사람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성가를 부르며 행진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다음 날, 성지 순례에 포함된 성모 성당이 전날 밤 도착했던 그 성모 성당이라는 것을 알았다. 성요한 성당, 성 바오로 성당, 성모 성당은 성당 안을 방문하지 못했으니, 다시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예약된 일정으로 인해 세 성당 모두 방문할 수는 없어 한 성당만 선택했다. 아.. 인생은 역시 선택이었다.


성 바오로 대성당의 프란치스코 교황 초상화

성바오로 성당을 선택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이름에도 나와 있지만, 다른 성당과 달리 바오로 성당은 성 밖에 있어서 좀 먼 편이었다. 바오로는 예수의 제자도 아니었고, 원래는 그리스도교도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다. 그리스도교인들을 핍박하러 다마스쿠스로 향하던 중 그는 ‘바오로 야, 바오로 야 너는 왜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리스도교도로 개종하였다. 그 후 그는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정리하고 선교하는 데에 일생을 바쳤다. 일각에서는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바오로의 그리스도교라 할 정도인데, 그의 노력이 지금의 그리스도교를 있게 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교회 내 위치에 걸맞게 교회는 크고 아름다웠으며, 심지어 정원도 있었다. 역대 교황들의 초상화가 교회한 켠에 그려져 있었는데, 벌서 프란체스코 교황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바오로 성당 방문 후 시간이 남아 성모 성당에도 들렀었다. 역시나 내부는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다. 성모 마리아를 위한 곳이어서 그런 지성당 전체적 분위기가 여성스럽고 고상했다. 기둥의 장식들도, 그림들 도유 독 더 섬세해 보였다. 개신교에서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앙을 이단으로 치부하지만, 그것을 단순하게 이단으로 낙인찍어 지우기에는 그 역사가 참으로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가톨릭의 역사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톨릭을 다시 받아들인 것은 그것이 나의 삶의 일부이며 나의 믿음체계를 구성하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살 때에는 가톨릭 신자이면서 불교를 좋아하고 공부하는 동시에 공존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미국에 머물면서 게 더 이상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는 나처럼 기독교 신자이면서 불교를 공부하는 학생, 학자들이 많다. 하루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 티베트 불교를 공부하는 친구네 집에 갔다가 십자가상과 불상을 함께 둔 그녀의 기도방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신앙은 개인의 영역이며 둘을 함께 믿는 것이 전혀 문제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난 나의 역사의 일부로 가톨릭 문화의 전통을 다시 인정하고 받아들였었다. 만약 나를 이루는 과거를 무시했다면 난 로마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나 자신의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난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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