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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럽보다 달콤 Aug 11. 2024

파리올림픽 투잡 선수들
겸업의 사회학

2024 파리올림픽을 보고

낮에는 회사원, 밤에는 ‘투잡’ 선수


2024 파리올림픽이 슬로건 ‘함께 나누자 (Made for Sharing)’와 함께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2024 파리 올림픽에는 두 얼굴을 지닌 선수들이 있다. 각자의 일터에서 직업 활동을 하다가 수영장과 육상 트랙, 농구코트를 누비는 ‘투잡러’들이다. 


미국의 수영 국가대표 닉 핑크는 전기 기술자다. 어린 시절부터 핑크의 꿈은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수영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핑크는 올림픽에 도전한 지 10년째인 2021년에야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200m 평영 1위를 차지하며 2020 도쿄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다. 200m 평영 결승에서 2분 7초 93을 기록하며 최종 5위에 올랐다.


핑크는 도쿄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한 이후 자신의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조지아 공과대학 대학원에 진학했고 2022년 졸업해 전기 기술 회사에 취직했다. 핑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회사에서 일하고 근무 외 시간에 수영 훈련을 했다. 이번 2024 파리 올림픽 100m 평영 부문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비로소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꿈을 이뤘다.


직장 내 ‘투잡러’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근로관계 중 겸직’에 대해 살펴보자. 

 


N잡러 역대 최대



본업 외에 다른 일을 추가로 하는 ‘N잡러’(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가 2024년 2분기 67만 명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로 늘었다. 고물가·고금리에 실질소득이 하락하자 본업만으로 생계가 빠듯한 직장인들이 대거 부업에 뛰어든 것이다. 얼어붙은 내수에 하반기 고용 성장세가 둔화할 가능성도 커서 생계 목적의 N잡러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콘텐츠 제작 회사에서 컴퓨터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김과장은 따로 외주를 받아 평일 퇴근 이후나 주말에 잡지 등에 들어갈 그래픽을 그려주고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도 회사에서 받는 월급으로는 살림살이가 빠듯하기 때문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것도 근본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최근 들어선 창업이나 본업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부업에 나서는 이들도 늘고 있다.



부업에 뛰어드는 이들이 늘었지만 본업 이외에 또 다른 일을 더 해서 손에 쥐는 돈은 많지 않다. 2024년 1월 한국노동연구원이 내놓은 ‘복수 일자리 종사자의 현황 및 특징’에 따르면 N잡러의 월평균 총소득은 294만7000원으로 조사됐다. 하나의 일자리만 갖고 있는 사람보다 21만 원 많은 수준이다. 총 근로 시간까지 감안해 N잡러의 시간당 소득을 계산해 보면 1만3000원으로, 단독 일자리 종사자(1만6000원)보다 오히려 더 적었다.


겸업의 원칙



겸업은 근로계약기간 중 회사의 사업과 경쟁 관계에 있는지 여부를 떠나 다른 업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으로 겸업의 금지가 법률상 유효한지 여부가 문제된다. 헌법상 영업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사생활 보호에 관한 권리가 있는 만큼 ‘정해진 근로제공 시간’ 동안에는 겸업의 금지가 유효하지만, ‘근무시간 외’에 대해서는 본질적으로 기업질서를 해하거나 근로제공에 지장을 초래하는 한도에서 금지가 유효하다.


[관련 판례]
인사규정과 같은 취업규칙에서 겸직을 당연면직 사유로 정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에 기한 면직처분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근로자가 겸업을 통해 사용자에 대한 성실의무나 충실의무에 반함으로써 사회통념상 더 이상 근로계약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만 당연 면직시킬 수 있다.
(서울행정법원 2001. 2. 15. 선고 2000구22399 판결)


취업규칙에 겸업금지 규정이 없더라도 겸업으로 인해 근로시간 중 사용자에 대한 근로제공에 있어 성실의무나 충실의무에 반하게 되는 경우에는 근로계약에 다른 부수적인 의무로서의 성실의무 위반으로 정계사유가 된다.


[관련 행정해석]
기업질서는 기업의 존립과 사업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필요 불가결한 것이고 사용자는 기업질서 유지를 위해 노동관계 법령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절한 제재를 할 수 있으므로, 취업규칙 등에 징계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다 하더라도 징계가 가능할 것이고, 근로기준법 제23조에 위반하지 않는 한 당연히 무효라고 보기 어렵다고 사료된다.
(근로개선정책과-2820, 2014. 5. 14.)


겸업 사례별 검토

업무와 관련이 있거나 해당 업무의 전문지식을 활용하여 외부에 강의 혹은 기고를 하고 그에 상응하는 강의료를 받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서 자문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보수를 받는 사례도 보편화된 모습이 되었다.


기존에는 위의 행위들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간주하여 금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구성원 개인이 각자의 경력과 역량을 개발하고자 하는 시대에서 회사에 부정적인 효과만 발생하는 것이 아닌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금지는 트랜드에 역행한다. 


회사의 영업비밀 등 지적재산권을 침해하거나 그 내용이 회사의 명예나 신용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사생활의 영역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관련 판례] 
구성원이 대학원에 출강해 받은 보수가 그리 많지 않았고, 당시 회사는 토요일 격주휴무제를 실시해 구성원의 대학원 출강이 직무수행에 별다른 지장을 주지 않았으며 대학강의는 연구원들이 수행해야 할 연구활동에 지장을 초래하기 보다는 오히려 도움이 되는 측면이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구성원이 징계 양정의 기준에 면직사유로 정하고 있는 중대한 비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서울행정법원 2001. 2. 15. 선고 2000구22399 판결)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취득하거나 업무와 관련해서 알게 된 전문지식 등을 활용해서 학위나 논문 등을 취득, 게재하는 경우에도 회사의 권리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에서 구성원 개인의 경력이나 역량 개발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 2024 파리올림픽에 출전한 미국의 육상 국가대표 개비 토머스의 사례를 적용해 보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생물학자’로 불리는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신경생물학과 국제 보건을 전공했다. 그는 하버드에 재학 중이던 2018년 전미대학체육협회 실내 200m 신기록을 세웠다. 토머스는 대학 졸업 후에는 텍사스 대학교 헬스 사이언스 센터에서 전염병학 석사를 취득했다. 토머스는 첫 올림픽 출전이었던 2020 도쿄 올림픽에서 400m 계주 은메달, 200m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어린 소녀들, 특히 유색인종 여성들에게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개비 토머스는 이번 파리 올림픽 준비도 자신의 전공을 살린 다른 업무와 병행했다. 자신의 역량을 개발하고자 하루에 3~6시간을 훈련하면서 밤에는 의료 클리닉에서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자원봉사를 병행했다. 영업비밀 등 지적재산권을 침해하거나 그 내용이 회사의 명예나 신용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회사의 브랜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이므로 ‘겸업’을 이유로 금지될 수는 없을 것이다.


2024 파리올림픽에 출전한 3×3 농구 미국 국가대표인 캐니언 베리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원자력 공학 석사 학위를 딴 뒤 방산 기업에 취업했다. 아침에 체력 단련을 한 뒤 회사에 출근해 근무하고 퇴근 후 농구장에 가는 게 그의 일과다. 


그는 “시간 관리를 하는 게 힘들었지만 덕분에 ‘현실 세계’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웠다”라고 말했다. 캐니언 베리 역시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의 역량을 개발한 사례이므로 비난이 아닌 환호를 얻어야 할 대상이다.

 

새로운 접근의 필요




향후 겸업은 ‘뉴노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겸업은 근로자에게는 경제적 이득 추가 수단에 그치지 않고 경력을 개발하고 인격을 실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2024년 4월 신한은행이 내놓은 ‘2024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인들이 부업을 하는 이유는 생활비, 노후 대비 등 경제적인 이유(61.9%)가 가장 컸다. 하지만 ‘창업·이직 준비’ ‘본업 역량 강화’ 등을 이유로 부업을 하고 있는 이들도 36.4%나 됐다.


MZ세대의 경우 창업이나 이직을 준비하려고 부업을 하고 있다는 이들이 34.2%로, X세대와 베이비붐 세대(24.0%)보다 약 10% 많았다. 본인의 커리어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 위해 N잡러로 나서는 직장인도 늘어나는 추세를 방증한다.


인구 감소로 일손이 모자라게 되는 만큼 부업이 노동력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을 경험한 일본에선 지방정부들이 공무원에게 부업을 허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지난 2018년 모델(표준취업규칙을 개정하여 부업, 겸업을 제한하던 내용을 삭제하고부업, 겸업을 허용하는 내용을 새롭게 추가했다정부가 일하는 방식 개혁실행계획에 부업, 겸업 보급 촉진을 내건 데 발맞춘 대응이었다.


개정 전 표준 취업규칙은 근로자가 ‘근무 이외의 시간에 다른 회사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후생성은 이러한 내용을 삭제하고 ‘부업, 겸업’ 장을 신설하여 ‘근로자는 근로시간 이외의 시간에 다른 회사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삽입하였다. 사전보고의무와 제한 범위 규정을 함께 넣어 부분별한 겸업은 방지했다.


아직까지 겸업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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