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성난 사람들'을 보고
대중문화에 불어오는 ‘분노’의 바람
지난 1월 25일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상인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8관왕에 오른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은 현대인의 분노를 그리고 있다. 미국에서 ‘모범적인 소수자’로 살아야 하는 한국계 이민자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질투, 불안, 자기혐오 등의 보편적 감성을 다루었다는 평이다.
희망이 없는 재미교포 핸디맨 대니 (스티브 연). 친척에게 사기를 당한 부모는 고국으로 귀국해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동생 폴은 게임이나 코인 등으로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삶이 엉망인 그에게 쇼핑몰 주차장의 흰색 벤츠가 시비를 걸어온다. 욕설을 날린 채 내달리는 그 차를 쫓아 대니는 광란의 질주를 시작한다.
벤츠를 모는 중국계 미국인 에이미 (엘리 웡)는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부유한 일본계 예술가 남편과 결혼해 어엿한 회사를 일궜다. 하지만 남편과의 소원한 관계가 이어지는 우울한 날이 지속된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시점에 쇼핑몰 주차장에서 낡은 트럭이 앞에서 알짱댄다. 손가락 욕을 날리고 통쾌하게 따돌렸지만 따돌린 것이 아니었다. 분노의 질주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오고 두 사람은 무시무시한 복수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삶을 갉아먹는 싸움을 시작한다.
결국 난폭 운전으로 얽히게 된 두 아시아계 남녀가 복수에 나서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로, 이민자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동시에 고립감과 내재된 분노 등 현대인들의 보편적 감정들을 그려냈다.
‘성난 사람들’의 영문 타이틀은 ‘BEEF’인데, 흔히 알고 있는 ‘소고기’의 의미가 아닌 ‘불평하다’라는 의미가 있고, 속어로는 ‘싸움’을 뜻한다. 시청자들은 “나도 대니, 에이미처럼 화낸 적이 있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이성진 감독은 “‘성난 사람들’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린 것은 배역 안에서 시청자 각자가 자신의 일부를 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본 작품의 이성진 감독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이후 난폭 운전이 늘었다. 코로나19가 악화시킨 것은 고립감과 외로움이고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단절이 현대인의 분노를 폭발시켰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성난 사람들’은 사회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억압이 해결되지 못한 경우 분노하는 개인을 담은 영화이다. 그렇다면 조직에서 일하는 구성원의 분노가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직원들이 분노하는 순간
직장에서 가장 화가 나는 순간으로 '별것 아닌데 트집을 잡을 때'가 47.8%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불합리한 일을 당하고도 바꿀 수 없을 때' 41.6%, '억울하게 혼날 때' 39.5%, '인격모독 발언을 들을 때' 38.6%,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을 때' 37.4%, '야근, 주말근무 등 초과업무를 해야 할 때' 36.5% 등의 순이었다.
가장 화나게 하는 사람은 단연 '상사'가 77.4%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 'CEO 및 임원' 29.4%, '거래처, 협력사' 21.7%, '고객' 15.9%, '동기' 11.5%, '후배' 9.8% 순이었다.
화가 났을 때 표현하는 방식으로는 46.3%가 '참고 표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어 '정색하며 표정을 굳힌다' 37%,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등 말을 안 한다' 18.8%, '욕을 한다' 6.4%, '운다' 3.5%, '소리를 지른다' 3.1% 순이었다.
화나는 순간을 계속 겪으면서 얻은 질병에는 응답자의 50.9%가 ‘만성피로’를 꼽았다. 이어 '두통' 49.2%, '위장장애' 40.7%, '수면장애' 30.5%, '우울증' 27.8%, '피부 트러블' 26.8%, '불안장애' 16.4%, '탈모' 14.8% 등의 순이었다.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는 '수면'이 42.5%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맛있는 음식 섭취' 36.4%, '음주' 33%, '회사 동료와 수다, 뒷담화' 32.5%, '마인드 컨트롤' 28.7%, '취미활동' 27.2%, '쇼핑' 20.4%, '나들이, 여행' 19.7% 등의 순이었다.
위의 설문조사 결과에는 업무에 치이고 상사·동료와의 인간관계로 분노가 쌓이지만,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남 몰래 혼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조직 구성원의 애잔한 모습이 투영된다.
직원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
조직생활을 하다보면 사소한 일에 충동적으로 화내는 직원들을 주변에서 볼 수 있다. 부하직원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화내는 상사, 기회가 날 때마다 동료와 상사를 험담하는 직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을 정신의학과에서는 ‘분노조절 장애’로 진단한다고 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2015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52%가 분노조절이 안되는 상태이고, 치료가 필요한 충동조절 장애 고위험군은 10명 중 1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충동적으로 화를 내는 사람이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경민 이머징 대표는 ‘분노의 언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회문화적 환경’을 원인의 하나로 꼽았다.
분노는 한 개인으로서 성장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이런 공격성을 개인이 어떻게 인식하고 외부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우리 사회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화를 억누르길 요구하면서 화 자체를 존재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한국사회의 이중적인 문화를 문제로 꼽고 있다. 성과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면 부하를 심하게 다그쳐서라도 일이 되게 해야 한다는 잘못된 ‘성과절대주의’가 그 예이다. 자신보다 약한 존재 앞에서 갑질하는 이들의 내면에는 화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증거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행태는 아래의 사례와 같은 '직장 내 괴롭힘'의 모습으로 귀결된다.
(사례1) 물리적 위협, 신체 폭행, 종이 등 물건 던지기, 얼차려 등
회식 자리에서 직장상사가 소주병을 거꾸로 쥐어 잡고 피해자를 가격하려고 위협하고, 고객들 앞에서도 피해자의 목을 짓누르는 신체적 폭력을 가하기도 함.
직장동료가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피해자에게 종이를 던지며 모욕을 주는 행위를 가하기도 하고, 차렷 자세로 인사를 반복적으로 시키는 등 지속적인 괴롭힘을 가함.
(사례2) 신체 폭행, 급여삭감 지시 등 위협
요식업에 취업해 사장에게 일을 배우던 중 사장은 피해자의 배우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주먹으로 흉부나 팔 부분을 폭행하고 숨이 넘어가 정도로 목을 조르기도 함.
조직 차원의 분노예방 방법
이경민 이머징 대표는 조직 차원의 분노예방을 위해 아래의 방안을 제안한다.
첫째, 분노 조절에 문제가 있는 직원을 파악하고, 조치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춘다. 최근 대기업뿐만 아니라 업무상 스트레스가 높은 개발자들이 근무하는 게임사, 온라인 포털 등에서 ‘직원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직원들의 일상 속 고민 해결을 위한 그룹 클래스를 시행 중이다. 자녀 양육을 중심으로 직무 스트레스 관리, 직장 내 갈등 관리 등의 주제로 맞춤형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HD현대는 심리상담을 통해 임직원들의 ‘마음건강’을 관리해주기 위해 ‘HD현대 마인드카페’를 개설했다. 직장 내 갈등, 가정, 육아 등의 상담도 꾸준히 늘고 있다.
대우건설은 심층적 심리상담을 통한 임직원의 정신건강 안정과 건강한 기업문화 구축을 위해 본사 직원 뿐만 아니라 해외 근무자 대상의 '온라인 마음 ON케어 심리 상담'을 통해 비대면 화상 상담과 전문가 솔루션을 제공한다. 상담사가 직접 서울·경기 현장을 방문해 임직원들의 심리 상담을 진행하는 '찾아가는 심리상담실'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둘째, 문제 구성원 대상 원칙을 세워야 한다. 분노조절의 문제를 반복적으로 보이는 구성원 대상으로 징계 등 명확한 인사원칙을 세워야 건전한 조직문화를 구축할 수 있다.
셋째, 직원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존재감의 표현이나 리더십의 형태로 분노를 받아들이는 직원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구축하여 분노가 조직에 미치는 악영향을 교육을 통해 학습시키고 부정적 감정을 건설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