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면서, 함께 일하는 균형

나를 표현하면서 상대방이 들을 수 있는 방식을 찾기

by 승연

공대를 졸업했고, 대학원 다닐 때에도 남학생이 다수인 곳에서 공부하고 실험하는 것은 익숙했다. 팀플도 희의도 대부분 남학생들과 함께 했기에, 입사하여 남자 동료들과 일하는 것이 낯설거나 어렵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나는 그 환경에 잘 적응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성과로 인정받는 구조, 논리로 설득하는 분위기, 경쟁하면서 협업하는 성장 방식에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었다.

그런데 직장은 조금 달랐다.

함께 일하는 것은 여전히 괜찮았다. 업무는 명확했고, 목표도 분명했고, 협업 방식도 익숙했다. 문제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저 '일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역할과 책임으로 평가받고, 결과로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현실은 달랐다. 많은 사람들은 나를 '함께 일하는 동료'라기보다 '자신들에게 편한 방식으로 이해되는 여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일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면 '야망이 크다'는 말을 들었다. 같은 행동을 하는 남자 동료에게는 '의욕적이다', '리더십이 있다'는 말이 돌아가는데, 나에게는 어딘가 경계의 뉘앙스가 담긴 평가가 따라왔다. 차분하게 의견을 말하면 '쌀쌀맞다' 혹은 '차갑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논리적으로 설명했을 뿐인데, 그 안에 감정이 없다는 이유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평가받는 느낌이었다. 어쩌다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면 '여자들은 좀 예민하지'는 말이 붙었다. 내 감정은 '상황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여자라서 그런 것'으로 단순화되었다.

어느 날 회의 중이었다. 내가 발표를 마치자 한 동료가 웃으며 말했다.

'와, 완전 여장부시네.'

그 자리에 있던 몇몇은 웃었고, 나도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한 말의 내용보다 '어떤 사람처럼 보였는지'가 더 중요해진 것 같았다.

또 어떤 때는 이런 말도 들었다.

'이건 꼼꼼한 여성분이 하면 더 잘할 것 같은데요?'

꼼꼼하다고 칭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담겨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잠깐 멈칫했다. 웃어야 할지, 그냥 넘어가야 할지, 아니면 뭐라도 말해야 할지 정하기가 어려웠다. 결국은 대부분 웃으며 넘겼다. 괜히 분위기를 깨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쌓일수록 나는 조금씩 위축되기 시작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내가 너무 나섰나?"

"조금 더 조심해야 하나?"

이런 생각들이 마음속에 쌓여갔다.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직원'으로서의 평가가 흐려지는 것 같았다. '여자라는 프레임'으로 먼저 해석되는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 진심과 노력은 가볍게 소비되거나 때로는 왜곡되기도 했다. 그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점점 조심스러워졌다. 의견을 내기 전에 한 번 더 망설이게 되었고,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눌러 담게 되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생겼다. 겉으로는 함께 일하고 있지만, 어딘가 분리된 느낌이 들었고,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섞이지 못한 채 혼자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억울함에 작은 반발심도 자라났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왜 자꾸 소외되는 기분이 들지?'

한편, 그 감정이 커질수록 결국 내가 더 힘들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애써 태연한 척했다.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일을 고민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 애쓰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인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남자 동료들과 불필요한 벽을 쌓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들과 계속 일해야 했다. 그렇다면 피하기보다, 더 나은 방식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거리두기'라기 보단 '균형 잡기'를 선택하려고 노력했다.

일은 같이 하지만 관계에서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나의 감정선과 기준을 지키고자 했다.

쉽지 않았다.

'너무 감정적으로 보이면 어쩌지?'

'괜히 분위기 깨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쓸데없이 예민한 사람으로 찍히는 건 아닐까?'

이런 고민들이 계속 따라왔다. 그래서일까, 한동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선택을 하기도 했다. 불편한 농담이 나와도 웃어넘기고, 내 의견이 가볍게 묻혀도 그냥 넘어갔다. 그런 내 모습이 겉으로는 평안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마음속에는 계속 무언가가 쌓여갔다. 그리고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더군다나 조직 내에서 나의 입지도 나 스스로도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방식을 바꾸어 보기로 했다.

내 감정을 드러내되, 상대가 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는 시도를 했다.

예를 들어,

무례한 농담이 나왔을 때는 억지로 웃지 않고 '그런 얘기가 저는 조금 불편하네요.'라고 말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어색했고, 목소리도 작아 상대방에게 들리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래도 한 번, 두 번 반복했다. 또 업무 중에 "여장부네"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웃으며 "제가 일을 잘하는 걸로 이해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가볍지만 분명하게 나의 기준을 전달하고 싶었다. 어색하고 타이밍도 서툴렀다. 하지만 그런 작은 시도들이 쌓이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내가 생각보다 분명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나 역시 나를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무엇보다 크게 바뀐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나는 더 이상 '맞춰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준을 가진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더불어, 존중은 누군가가 나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내 감정을 가볍게 여기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대한다. 하지만 내가 내 기준을 존중하기 시작하면 상대도 그 경계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존중은 단순한 관계의 편안함을 넘어서 협업의 질을 바꾸는 힘이 된다. 성별을 넘어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 연결되는 순간이 온다.

내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불편한 감정을 무시하지 마.

그 감정은 괜한 것이 아니라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을 알려주는 신호야.

그리고 나를 지키는 일은 결코 관계를 깨는 행동이 아니야.

오히려 관계를 시작하는 가장 솔직한 방식이지.'


우리는 모두 좋은 동료가 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나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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