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과 질투를 넘어, 나를 다시 선택하는 법
나는 늘 혼자였다. 정확히 말하면 '여성으로서' 혼자였다. 남성 중심의 조직, 남자 동료들 틈에서 유일한 여자 사원으로 일한다는 것은 표면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실제로는 늘 '보이지 않는 선'과 싸우는 일이었다. 남자 동료들과 나는 같은 팀이었고, 같은 교육을 받았고, 같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들처럼 나도 최선을 다했고, 때로는 더 성실히 일한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래서 '기회'가 주어지는 순간이 오면, 그 기회는 성과와 태도에 따라 정당하게 나눠질 거라고 믿었다.
당시 우리 회사에는 6 시그마 열풍이 불고 있었다. 6 시그마는 일종의 문제 해결 프로세스로 업무의 품질을 개선하고 결함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법이었다. 회사에서는 인력을 그린벨트, 블랙벨트, 마스터블랙벨트의 3단계로 나누어 관리를 하고 있었다. 모든 직원은 그린벨트(6 시그마의 1단계) 교육을 이수하도록 하였고, 그 이후에 지원자와 선택된 자들에게 블랙 벨트, 그리고 회사에서 선출된 사람 몇몇에게만 마스터 블랙벨트를 취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나는 6 시그마 프로세스에 관심이 있었고 블랙벨트까지 획득하였다. 나의 목표는 마스터 블랙 벨트였다. 마스터 블랙 벨트를 획득하면 매달 수당이 생기기도 하고, 진급심사 때 가산점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한편, 그 기회가 이미 다른 동료로 결정이 나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누구도 나에게는 그 과정이나 기준을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동료라고 믿었던 그는 나보다 먼저 기회를 얻었다. 좋은 학벌을 가졌고, 주변과 적당히 잘 지내며 늘 '허허'웃는 성격. 결코 날카롭지도 않았고, 특별히 리더십이 돋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나보다 딱히 더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와 비교하였을 때 왜 그가 더 나은 선택인지에 대해 이해되지 않았었다. 그렇게 설명받지 못한 선택은 나를 더 작게 느끼게 만들었다. 어쩌면 나는 내가 노력하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보이지 않는 기준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불안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넘기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한편에 쌓인 감정은 작은 돌처럼 무겁게 내 자존심을 누르기 시작했다.
'그가 남자이기 때문에 선택한 건가?'
이 생각이 마음을 스쳤을 때, 나는 그 생각을 애써 밀어내려고 했지만, 사실 그 말 외에는 다른 설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놓친 장점이 그에게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윗사람들에게는 '그'라서 더 믿음직스럽게 보였던 걸까? 선택된 그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내 기회를 빼앗아간 사람처럼 느껴졌고, 그와 다시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와 멀어졌고, 스스로의 마음의 벽을 쌓아갔다. 그리고 차츰 그 벽은 그를 넘어서 팀장님과 부서장님까지 확장되었다. 그들의 결정이 나를 외면한 것 같았다. 나는 투명인간이 된 듯했고, '나는 왜 안되는가'라는 생각에 갇혀 점점 조직 속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었다. 사춘기 아이처럼 마음이 삐뚤어졌고,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터놓지 못한 채 혼자서 분노하고, 실망하고, 속으로 울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점점 내 안의 '두 번째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이 감정은 누구를 향한 것일까?'
'그를 미워한다고 나의 상황이 달라지나?'
'내가 원한 건 기회였는데, 사람들을 미워하게 되었네.'
그렇게 나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 순간 억울함을 느꼈고, 하려고 했던 일이 안되자 나 스스로에게 아쉬운 느낌도 들었다. 나는 이러한 감정들을 흘려보내기 위해 애썼다. 카페에 앉아 그날의 상황, 그때의 생각 그리고 나의 억울함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일기장에 써보기도 했다. 그렇게 감정을 꺼내다 보니, 어느 순간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그러면서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시스템 안의 누구일 뿐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그가 기회를 얻은 것이지, 나의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추슬렀다.
그러면서 '기회를 누가 주는가'보다 '기회가 왔을 때 준비되어 있는 나'를 만들어가자고 다짐했다. 그저 기회를 얻지 못한 억울함에 머무르지 않고, 나의 실력과 내 존재감을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 나만의 방식을 찾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그 동료와 예전처럼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에 대한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의 선택을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음을 안다.
관계는 언제나 복잡하고, 경쟁은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내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가'이다. 나는 그 일을 통해 억울함과 질투 속에서 다시 나를 바로 세우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내가 더 단단해지는 디딤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