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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현 Jul 12. 2022

빨간 신호등이 켜지면 생기는 일

2분마다 한 번씩 일하는 길가의 사람들

태양이 작렬하는 오후 2시의 아스팔트.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지고 차들이 스르륵 멈춘다. 길가에 서 있던 사람들이 나와 창문에 물을 뿌린다. 딱 봐도 한 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한 손으로 물통에 담긴 비눗물을 쫙 뿌리고 다른 한 손에 든 수세미로 재빠르게 창문을 문지른다.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20초. 앞 뒤 창문을 닦고 사이드 미러까지 닦아도 남는 시간이다. 이렇게 닦으면 나는 팁으로 10페소, 600원 정도를 주는데 차에 있는 동전 상황에 따라 100원이 될 때도 있고 천원이 될 때도 있다. 돈이 없을 땐 안 줘도 된다. 그들도 별로 아쉬워하지 않고 2분 뒤 또 다른 빨간 신호등을 기다린다.

빨간 불이 켜지자 바퀴 위에 올라타서 빠르게열심히 닦는 아저씨

하지만 이들의 존재가 반가울 때는 거의 없다. 페트병에 담긴 물은 공원 분수에서, 비누는 공중 화장실에서 가져온 것이 대부분이고 수세미도 낡을 대로 낡은 상태라 내 손으로 만지기는 싫은 비주얼이기 때문이다. 차를 내 몸처럼 아끼는 사람이라면 경악할 만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들을 막을 수는 없다. 빨간 신호등만 켜지면 재빠르게 튀어나와 물 먼저 뿌리고 보기 때문에 속수무책이다. 세차 한지 얼마 안 됐다면 그들의 타깃이 될까 조마조마하기까지 하다.    

빨간 신호등이 켜지자 한 아저씨나 등장해 묘기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이 가장 반기는 사람은 길가의 피에로 아저씨다. 피에로 분장을 하고 빨간 신호등이 켜진 2분간 쇼를 선보이는데 입으로 불을 먹는다. 정말 먹는다. 긴 막대기 끝에 달린 불을 입에 넣고 삼키는데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감탄사를 내지만 보는 나는 웃을 수가 없다. 안쓰러운 마음에 창문 닦는 사람들보다는 더 많은 돈을 쥐어준다. 800원 정도. 그런 안쓰런 마음을 노린 건가 싶다 돈 벌기 정말 힘들다.


대놓고    도와달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대부분 여자나 어린 아이다. 또래의 여자아이가 우리 아이들과 창문을 두고 마주 보며 눈을 맞추거나 돈을 달라고  때는 미묘한 감정이 든다. 포주가 뒤에 숨어 있으니 되도록 주지 말라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의 엄마가  이후엔 아이를 엎고 있는 여자나 어린아이가 손을 내밀면 거절하기가 힘들다. 나는 차에 초콜릿이나 사탕을 채워놓고 이들이 오면 동전  개와 함께 군것질거리를 챙겨 준다.


어린 아이가 빨간 신호등이 켜진 사이에 자동차 창문을 닦고 있다
이 가족은 차가 멈추면 창문 두드리고 종이를 보여줬다. 아기에게 줄 음식 살 수 있게 동전 몇개만 도와달라는 내용이다.
멕시코 시티의 대표적인 부촌이다. 명품이 즐비한 유명 백화점과 대조되는 풍경. 어린아이를 안은 여자가 길가에 앉아 빨간 신호등이 켜지길 기다리고 있다.

이곳의 최저임금은 주급 5000원. 맨몸으로 돈 벌기는 정말 쉽지 않다. 길가를 몇 분만 걸어봐도 빈부격차가 온몸으로 느껴져서 마음이 안 좋다.  가족을 위해 아이를 위해, 하루 먹고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말 그대로 길가로 내몰린 사람들. 나는 이들을 위해 오늘도 동전을 모아놓고 군것질 거리를 챙긴다. 말 그대로 길가의 틈새시간을 노린 이들의 노력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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