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액 맞았을 뿐인데… 멕시코에서 겪은 의료사고
(*상처 사진이 혐오스러울 수 있어요 원치 않으신 분은 패스해주세요)
멕시코에 사는 동안 항상 조심했다. 강도를 당하지 않을까 다치지 않을까 사기를 당하지 않을까. 그런데 한국인에게 당할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발단은 쫄면이었다 배가 살살 아프더니 식은땀이 나고 설사가 멈추지 않았다. 집에서 버티다가 한인 클리닉으로 향했다. 멕시티에서 유일하게 한국인 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이었다. 의사는 친절했다. 말 안 통하는 외국에서 모국어로 살뜰하게 아픈 곳을 물어봐주는 구세주. 살모넬라 식중독이었고 수액을 맞고 한숨 자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일상을 되찾는데 수개월이 걸리게 될 줄은 그땐 정말 몰랐다
처음 주사 바늘을 찌른 곳은 오른손 엄지 손가락 바로 밑 혈관(왜 그곳이었을까..) 주사를 찌르지 마자 아파서 다른 곳에 옮겨 맞았다. 그런데 잘못 찔렀던 엄지손가락 밑 부분이 파랗게 멍들더니 부풀어 올랐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멍은 빠지지 않았고 급기야 엄지손가락 끝에 감각이 사라졌다 피부는 차갑고 고통은 심했다. 의사는 주사 바늘이 신경을 건드렸다고 했다. 이건 흔히 있는 일이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불안해하는 나를 안심시켰다. 한국을 가야겠다는 나를 진정시켰다. 며칠만 더 기다리면 된다고 진통제를 처방해주며 자신 있게 말했다. 나는 그때 그 자신감을 의심했어야 했다…
그렇게 한 달을 버텼다. 고통은 더 심해졌고 나도 더 심각해졌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현지 큰 병원 유명 의사를 수소문해서 찾아갔다. 심각해진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손가락을 절단해야 할 수도 있겠네요 당장 입원합시다”
청천벽력. ct결과 혈관이 손상됐단다. 손가락 끝까지 피가 통하지 않는 상황. 동상 걸린 것과 같은데 골든타임을 놓쳐 피부가 괴사 되었단다. 멍이 아니라 피부가 죽어가는 과정이었던 거다. 당장 제일 빠른 비행기표를 끊었고 4시간 후에 나 홀로 비행기에 올랐다. 어린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눈물을 꾹 삼키면서.
아산병원에 일주일 꼬박 입원해서 혈관확장제를 링거로 맞았다. 다행히 수술을 면했다. 아직 젊고 혈관이 튼튼해서 결과가 좋았다. 한인 의사는 미안하다고 비행기표 값을 부쳐줬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손가락을 자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의사를 비난할 마음도 그땐 싹 사라졌다. 양심적이라고 생각했던 그 의사를 저주하게 될 줄 그땐 정말 몰랐다….
한 달 동안의 치료가 끝나고 멕시코에 돌아왔다. 아이들과 그렇게 오래도록 떨어져 있던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눈물 나는 이산가족 상봉을 마치고 며칠 뒤 나는 한인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그분은 내가 알고 있던 그 젠틀한 구세주가 아니었다. 180도 바뀐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비행기 값을 보내준 걸 후회한다”
“돈 한 푼 보상해줄 수 없고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진행해라”
“굳이 한국에 갔어야 했는지 그 부분을 다퉈야 할 것”
“나는 멕시코 의사니 멕시코 법을 따라라”
알아보니 소송은 3년 이상 걸리고 외국인이 의료소송을 진행하는 건 쉽지 않았다. 피해자인 우리가 오히려 낮은 자세로 합의를 부탁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차가웠다. 수소문해보니 이런 크고 작은 의료사고는 많았고 그때마다 까다로운 절차로 많은 피해자들이 포기해왔다. 의사의 태도는 축적된 경험에서 나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는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동안 들인 병원비나 정신적 피해보상을 받겠다는 생각은 포기했다. 남은 임기를 채우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주재원이지만 ‘당연히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의사에게 목소리라도 한번 내 볼 의향이다. 외국에서 아프면 서럽다. 더군다나 억울하게 아프면 더 서럽다. 그게 바로 믿었던 한국인 때문이라면 더 더 서럽다. 내 오른쪽 엄지 손가락은 아직 아이들 머리도 못 묶어주고 뚜껑도 못 따고 글씨도 못 쓰면서 5개월째 천천히 낫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