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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현 Jul 21. 2022

나는 매일 이름을 바꾼다

하고 싶은 이름 다 해볼까?(feat 스타벅스)

처음 내 이름을 말했을 때 상대방의 동공이 흔들리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J을 ㅈ이 아닌 ㅎ으로 발음하는 스페인어의 특징 때문에 나의 한국 이름이 무척 어렵게 느껴졌나 보다. 직설적인 질문을 좋아하지 않고 불편함을 싫어하는 이곳 대다수의 사람들은 내 이름을 다시 물어보는 대신 날 피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같은 일이 몇 번 반복된 이후 나는 부르기 쉬운 이름을 하나 만들었다. 루시아. 친근하게 루시라고 불러줘 하면, 흔하고 편한 이름이었다.


오랫동안 그렇게 ‘루시아, 편하게 루시’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내 이름이 싫어졌다. 동명이었던 헬스장 트레이너 루시가 못생기고 무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루시아라는 이름은 가십걸에 나올 법한 싸가지 없는 일진 이미지라는 친구의 농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실 애초에 아무 의미 없이 생각나는 이름을 골랐기 때문에 애정이 없어서였을까. 어쨌는 나는 루시아 혹은 루시라는 이름에 싫증이 났다 생각해보니 멕시코에서 사는 삶도 싫증이 났을 시점이었다.

스타벅스에 줄을 서 있는 동안 나는 ‘오늘의 이름’을 생각한다. 기분에 따라 유명 배우의 이름을 따기도 하고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을 선택하기도 한다. 매일 이름을 바꾸는 일은 재미있었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는 느낌이랄까. 하루는 제나였다가 또 그다음 날은 훌리아가 되는 느낌. 약간 과장을 보태자면 과거를 리셋하고 다시 새로운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다. 그게 바로 해외여행 혹은 해외살이의 묘미 아닐까 싶어 기분이 좋았다.


“창턱에 놓인 저 제라늄은 이름이 뭐예요?”

“사과 향이 나는 제라늄이란다.”

“저는요, 아무리 제라늄이라고 해도 이름이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그러면 물건도 사람 같잖아요. 그냥 제라늄이라고만 부르면 제라늄도 기분 나쁘지 않을까요? 아주머니도 누가 이름 말고 여자라고만 부르면 싫으실 거잖아요. 이제 이 제라늄을 보니라고 부를래요. 오늘 아침에는 침실 창밖에 있는 벚나무한테도 이름을 붙여줬어요. ‘눈의 여왕’이라고요. 벚나무가 아주 새하얗잖아요. 물론 꽃이 항상 피어 있는 건 아니지만 꽃이 피었다고 상상할 수도 있고요.”

빨강머리 앤


이름이라는 것은 단순히 이름이 뜻하는 의미 그 이상이다. 이름을 지어주는 순간 사물에 생명이 깃들고 평범한 것에서 특별한 것이 된다. 그래서 사랑하는 애완동물에겐 이름이 있지만 잡아먹을 닭이나 소 돼지 같은 가축에겐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다. 시인 김춘수는 시 ‘꽃’에서 이름의 의미를 다시 느끼게 해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내용대로 라면 나는 매일 다른 종류의 꽃이 되는 건가. 생각해보니 나는 이곳과 나의 관계가 진지해지는 것을 피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차곡차곡 나의 과거를 쌓아가고 내 이름과 관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만나고 곧 떠나갈 여행자로 살고 있는 것. 그래서 나는 멕시코에서 사는 내내 공허한 마음이 드는 것 같다. 남은 멕시코 생활 동안 나는 여기서 책임 있는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계속 이름을 바꾸다가 한국의 ‘익숙한, 과거의 나’로 돌아가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오늘은 스타벅스에 가서 진짜 내 이름을 한번 말해볼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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