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이네> 따라 간 바깔라르 여행기
몇 달 전부터 멕시코 교민들 커뮤니티에서 이야기가 솔솔 나오기 시작했다. BTS가 멕시코에 왔다고. 심지어 아직 이곳에 머물며 촬영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이 소문의 실상은 tvN에서 촬영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서진이네’였다. 출연 장소는 철저히 비밀인 듯했고, 과연 그런 촬영이 비밀유지가 될까? 했던 의심과 우려가 무색하게 정확한 촬영지를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이 넓은 멕시코 땅, 그는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적어도 내 주위에선 모두 궁금해했지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깐꾼 주변이다, 코수멜 섬이다, 코로나 이전에 촬영지를 물색하러 제작팀이 다녀갔다더라 등의 카더라가 퍼졌다. 촬영이 막바지에 다다를 때쯤, 바로 바깔라르라는 것이 밝혀졌다! 바깔라르라니!! 내가 오래전부터 가려고 찜해 놓았던 바로 그 바깔라르 말이다.
출연자는 BTS의 뷔뿐만 아니라 이서진, 박서준, 정유미, 최우식도 있었다. 아, 몇 달 전 휴가 때 바깔라르 여행을 감행했어야 했는데… 그래서 우연히 그들을 마주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서진이네>의 출연자들은 말 그대로 내 최애 연예인들이었고 난 이전 방송했던 <윤식당>을 한 회도 빠짐없이 시청했던 애청자였다. 지나간 일은 후회해 봤자 소용없었다. 어쨌든 내가 모든 것을 알았을 땐 이미 촬영팀은 철수한 후였다. 다만 프로그램 제작진은 모두 철수했지만 바깔라르를 향한 나의 마음은 좀처럼 철수되지 않았다. 더 유명해지기 전에 더 붐비기 전에 다녀와야 한다는 합리화가 더 해져 나는 항공권을 끊고 바깔라르 호텔을 예약했다. 급 휴가다!
멕시코 시티에서 바깔라르를 가는 방법은 생각보다 쉽고 간단하다. 굳이 깐꾼 공항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체투말(Chetumal) 공항으로 바로 가는 직항을 이용하면 된다. 항공권도 저렴하고 1시간 50분 밖에 걸리지 않아서 주말을 이용해 다녀오기에도 무리가 없다. 다만 호텔을 예약하는데 고민이 많았는데 작은 동네여서 그런지 규모가 큰 호텔 체인은 없고 까사(집) 정도의 작은 숙소가 전부였다. 여행을 계획할 때 숙소의 컨디션을 가장 중요시하는 나였지만 어쩔 수 없이 적당한 숙소를 예약했다. 다만 아이들이 잘 놀 수 있도록 호수가 바로 앞에 있는 곳을 예약했다.
그리고 다시 <서진이네>. 의도하지 않았지만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촬영한 한 흔적을 발견했다. 근처에 있던 멕시칸 청년은 기웃거리는 나를 보자 신이 나서, 이곳이 화장실이고 이곳이 부엌이라며 설명까지 해줬다. 그들이랑 찍은 사진도 걸어놨는데 구경해 볼래? 하기에 그건 괜찮다고 거절할 정도 ㅎㅎ
나와 남편은 그 동네를 걸으며 제작진은 왜 이 숙소를 선정했을지, 출연자들은 어떤 식당을 갔을지 상상하며 웃었다. 그 시간을 되돌아보니, 무료한 외국 생활에서 이런 이벤트로 설렘을 준 <서진이네>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으로서 묘한 자부심도 들어서 그곳에 사는 현지인에게 괜히 “BTS 여기 온 거 알아?” 라며 떠보기도 했다. (물어보는 사람마다 모두 촬영팀을 알았다. 내가 아는 사람이 보트투어를 해줬고 등등.. 역시 작은 동네…)
사실, 바깔라르 여행을 프로그램 <서진이네>로 시작하긴 했지만 3박 4일 동안 지내면서 프로그램이나 연예인에 대한 생각은 점점 줄어들고 이곳 자체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4일 내내 동양인을 한 사람도 마주치지 않았을 만큼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고 유럽인, 미국이들이 주로 와서 자유롭게 호숫가에 앉아 책을 읽거나 수영을 하면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보트투어를 하다가 만난 프랑스인은 20일의 휴가 중 10일을 이곳에서 보낸다고 했다. (이상하게 유독 프랑스인들이 많이 보였다. 이유를 아시는 분 알려주세요) 아직 개발이 많이 되지 않아 숙소도 교통도 불편하지만 그래서 더욱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자연 그대로 때 묻지 않은 이곳 오히려 좋아!
물의 높낮이에 따라 7가지의 물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바깔라르 호수는 깊지 않고 맑고 시원했다.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호수를 보며 멍 때리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나도 호수를 바라보며 앉아서 책을 읽다가 더워지면 풍덩 물에 들어갔다. 아이들도 신나게 놀아서 피부를 까맣게 태우고 돌아왔다. <서진이네>가 곧 첫 방송을 한다던데, 방송을 보며 바깔라르에서 보낸 우리 가족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을 것 같아 벌써부터 행복해진다. 멕시코의 숨겨진 보석 같은 이곳이 카메라를 통해 어떻게 표현됐을지 기대된다 두근두근!
<서진이네> 인기를 이 글의 조회수로 실감했다. 내친김에 바깔라르 여행을 갈 분들을 위해 맛집을 정리해봤다
https://brunch.co.kr/@lucyhyun/73